광복회. 한국 시민의식 역량의 소진 혹은 퇴보에 대하여
한국인의 민주주의 의식이 타국에게 모범이 된다는 데 이견은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 후발 국가였던 한국이, 전지구적인 극우화와 반민주주의의 물결에 직면하고 있는 나라들이 반드시 참고해야 하는 모델 국가가 된 것이며, 앞으로 민주주의라는 가치관과 체제의 향방이 어떻게 될지 알려면 세계 각국 모두가 한국을 주목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어떻게 할까?’ 민주주의 선진국이든 후발국이든, 현재 정치적 혼란과 위기를 맞이한 나라의 국민들은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거라고 해도 이제는 무리가 아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광인 취급 받았을 테다.
하지만 동시에, 여전히 많은 한국의 유권자들이 내란을 일으킨 세력을, 혹은 그들을 배출하고 옹호하기에 바쁜 세력을 지지하고 서울 길거리에서 반중 시위를 벌이며 미국에서 사망한 극우 논객을 추모하는 집회를 연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만들어내고 퍼뜨리는 온갖 허위 정보, 가짜뉴스, 혐오 표현들은 정치 저관여층이나 무관심층뿐만 아니라 내란에 반대하고 탄핵에 찬성했으며 부정선거론을 일절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 특히 30대 이하의 청년층이 이에 매우 취약하다는 점은 꾸준히 확인되고 있으며 ‘청년 극우화’라는 명제를 입증하는 듯한 현상이 반복적으로 목격되고 있다. 더욱이 청소년 심지어 상당수 초등학생까지도 극우 인터넷 커뮤니티 및 유튜버 발 혐오 표현을 우려스러운 수준으로 쓰고 있으며 이에 교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고 전해진다.
이 간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생각외로 적잖은 사람이 한국에서의 두 차례의 탄핵과 평화적 정권교체에 기고만장하여 한국이 원래부터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착근시키고 공고화할 것이냐를 수십 년 고민했던 나라라는 것을 잊은 듯하다. 민주화 이후, 한국은 결코 순탄하지 않은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위한 여정을 지나면서 여러 차례 고비와 부침을 겪었다. 그 고비와 부침과 모든 갈등이 한꺼번에 터져버린 것이 12/3 불법계엄 내란 사태다.
즉 내란 사태는 많은 상흔을 남겼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내란이 진압되고 민주진영으로 정권교체가 됐다고 해서 종결된 것은 없다. 프리덤하우스 등의 국제기구가 자유롭고 민주적인 국가로 분류한 나라들 다수가 민주주의의 공고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한국은 당연히 예외일 리 없다. 헌법학자이자 정치학자인 신디 스캐치에 따르면 공통적인 이유는 민주주의의 원칙과 공동체적 가치관이 시장 중심 경쟁과 이윤 추구의 관행에 밀려나는 문제가 임계점에 달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주체적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삶의 지침은 법 해석의 전권을 쥔 극소수 엘리트에게 위임되었고 많은 사람이 그러한 절대적인 권위에 기꺼이 스스로를 예속시키고 있다. 이러한 탓에 오늘날 민주사회에서 ‘시민’은 ‘준법 시민’으로 축소돼버린다. 이러한 가운데 극우세력이 국가기관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선동을 일삼고 심지어 엘리트 집단 자신들이 그 불신을 증폭한 탓에, 준법이라는 시민성의 최후의 보루마저 무너뜨리는 사람이 발생하는 것이 세계적 극우화 물결의 핵심 중 하나다.
한국YMCA전국연맹이 지난 3월 전국 청소년 39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민주시민의식 설문조사 결과, ‘민주시민 의식’이라는 개념을 잘 알고 있다는 응답이 34.2%, 들어봤지만 정확히는 모른다는 응답이 53.8%, 처음 들어본다는 응답이 12.1%인 것으로 나타났다.[1] 즉 한국의 청소년들에게서 민주시민 의식의 결핍이 확인된다. 실제로 한국의 사회·도덕 교과서를, 시민의식 및 독립적·비판적 사고와 판단 능력의 함양이라는 목적을 기준으로 설정하고 프랑스와 독일의 교과서와 비교했을 때 프랑스·독일 교과서가 90점이라면 한국 교과서는 15점에 불과하다는 분석결과가 있다.
한국의 민주시민 의식이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다가 내란으로 말미암아 갑자기 이러한 후퇴가 발생했으리라 상상하기는 어렵다. 즉 내란 사태 훨씬 이전부터 “오랜 시간 동안 훼손돼 온 것은 정신적 영토”[2]였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내란 사태를 포함하여 윤석열의 통치는 그 자체로 한국인의 시민의식에 회복하기 힘든 손상을 입혔지만, 그 손상, 퇴행에는 어느 세력이 집권했느냐, 어느 세력이 어떤 정치 공작을 펼쳤느냐와 같은 정치적 요인만 있는 게 아니다. 그 핵심에는 인지적인 요인이 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민의힘과 그 전신들, 보수를 참칭해오던 세력이 집권할 때면 항상 국가 권력을 통해 정신적 영토의 침탈을 시도해왔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목격되어왔다. 국정 교과서와 같은 노골적인 정부 정책이든, 뉴라이트 등의 보수단체와의 협력이든 일베와 같은 극우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한 물밑에서의 지원이든 국정원 등 정보기관을 동원한 음습한 공작이든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담론을 왜곡하고 많은 사람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오염시키는 시도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오늘날 상당수 한국인의 민주주의 의식이 우려스러울 만큼 위태롭고 진보주의적 의제와 사회적 약자 일체가 그 자체로 조롱과 혐오의 대상이 되는 문화가 위험한 수준으로 팽배해진 것은 “단지 몇몇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오랫동안 기획되고 방조된 공작”, “‘국가 차원의 장기 심리전 프로젝트’이자 ‘자국민을 향한 정치 공작’”[3]이 누적된 산물이다.
위에서 ‘집권할 때면’이라고 했지만, 더 정확하게는 두 차례 연속으로 보수세력이 집권에 실패했을 때부터 위와 같은 공작이 다방면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보수세력이 계속해서 정권을 이어 나갔으면 공작의 필요성도 실감하지 못했을 테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 당선 뒤 17대 총선에서 탄핵 역풍으로 한나라당이 크게 패하자 전례가 없었던 보수진영의 위기 상황에 위기감을 느낀 보수세력은, 특히 과거 운동권, 사회주의 및 친북 운동을 하다가 90년대 이래 전향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보수세력 내부로부터 대대적인 반성과 학술 운동이 진행됐다.
일단 황희두 이사가 밝혔듯이 20여년 전 당시 한나라당은 노무현의 ‘인터넷 대통령’으로서의 지위와 서사에 천착하여 온라인 공간을 새로운 정치적 전장으로 인식하기 시작하고, 온라인에서의 ‘전사’를 양성하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국정원, 군 정보기관과 함께 정보전 및 인지전으로서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과 댓글난을 물량으로 장악하여 보수적 메시지의 인터넷 이용자에의 노출 정도를 높였고, 특히 2009년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이 세력은 심리전의 일환이자 핵심으로 노무현이라는 상징의 훼손과 그가 표상하는 일체의 가치, 세계관을 오염시키는 데 엄청난 집요함을 노정했다. 이 공작은 20년 가까이 이어져, 노무현을 생전에 본 적도 없는 삼척동자들조차 그에 관련한 조롱 및 혐오 표현과 이미지를 거리낌 없이 쓰는 데 이르렀다. 한 개인에 대한 조롱이 전부가 아니다. 여기에는 노무현이라는 인물이 상징하는 바에 대한 총체적인 먹칠, 오염이 핵심으로 있다. 민주주의와 탈권위, 그리고 ‘정의가 승리한다’라는 믿음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만들고 그 자리에 뉴라이트의 역사관과 가치관의 근본 인식, ‘승리한 것이 정의다’라는 믿음을 주입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었다.[4]
뉴라이트는 주지하듯 과거 사회주의 혹은 NL파였다가 우파로 전향한 사람들이 새로운 보수를 표방한 단체이자 이념이다. 이들의 문제의식은 기존의 보수세력이 냉전 종식 및 민주화 이후 변화하는 세계와 대중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점으로, 이념적으로 뒤처지고 부패했으며 군사독재의 잔당으로서 권위주의적인 색채가 대중의 부정적인 인식을 낳는다고 진단했다. 즉 더 이상 한국에서 군부독재의 억압적 통치로는 권력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권력을 되찾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중의 호의에 기반한 충성심, 다시 말해 헤게모니를 확보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뉴라이트는 자신들을 새롭고 합리적이고 온건한 보수라고 정의하며 과거의 꽉 막힌 반공주의와 권위주의를 극복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강조하는 ‘시장 보수’를 표방하고 나섰다. 낡은 반공 이데올로기 대신 새로운 깃발을 내걸고 보수의 현대화를 시도했다.
그 핵심으로 역사 수정주의, 현대사 재해석이 있다. 뉴라이트의 현대사 재해석 혹은 역사 왜곡은 수많은 사람이 ‘뉴라이트’ 하면 곧장 떠올리는 것이며 가장 격렬한 논쟁을 일으킨 것으로, 대중 사이에서 뉴라이트라는 집단에 대한 일체의 비호감을 야기한 결정적인 사안이다. 대중으로부터 구우파보다 더 호감을 사는 헤게모니 재탈환을 위해 벌인 일이 오히려 국민적인 분노와 격한 반발을 사는 일이라는 점이 일견 논리적이지 않아 보인다. 1948년 건국절 주장, 식민지 근대화론,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격하하고, 독도 관련해서는 일본이 소유권을 주장할 근거가 있다고 한 일이 있고, 가장 많은 사람으로부터 큰 공분을 사는 것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축소, 왜곡하고 자발적 매춘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집요하게 이승만을 미화하고 4.19 혁명은 ‘학생운동’으로 격하하며, 5.16 군사쿠데타는 혁명으로 규정하며 박정희의 독재를 정당화했다. 더불어 박정희가 만주국 장교로 복무한 것에 대해서는 다만 군인이 되고자 하는 꿈을 실현하기 위한 일로 변호했다. 뉴라이트는 박정희를 포함하여 친일파 인사들에게 면죄부를 줬고, 독재정권을 옹호하며 민주화 운동을 반란 혹은 폭동으로 폄하했다. 일부는 북한 개입설도 제기했다. 일제 강점기에 관련해서는 몇가지 주요한 프레임 전환으로써 일제 강점기에 대한 역사인식을 바꾸고자 했다. ‘저항’을 테러로, ‘수탈’을 ‘수출’로, ‘성노예’를 ‘매춘부’로, ‘민족주의’를 ‘종족주의’로 용어를 바꾸고, 유기적 인과관계를 직접적 인과관계로 단순화했다.[5] 복잡계로 얽힌 사건들의 관계를 원인에서 결과라는 직선적, 선형적인 것으로, 역사적 사건들을 작용과 반작용으로 일대일로 대응하는 물리적인 것과 다르지 않은 관계로 축소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프레임 전환, 특히 역사적 사건들의 관계를 단순화하는 것은 뉴라이트 고유의 역사관 및 방법론으로서 지극히 속류적으로 왜곡한 실증주의 역사학으로 합리화되며, 그것의 전형적인 인식 방법이다. 이것은 특히 사회적 참사(주로 보수정권에서 일어난)를 대하는 보수진영의 인식에서 쉽게 목격된다. 예컨대 세월호 참사를, 진보진영에서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규제를 대폭 완화한 것과 박근혜 정부의 재난 관리 능력 및 의지의 부재가 부른 인재로 봤다면, 보수진영에서는 단순히 선박회사의 부도덕과 선장의 무능으로 책임을 돌리는 식이다. 이태원 참사에 관한 시선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진보진영에서는 참사의 원인이 용산구청장의 무능, 대통령실 이전으로 인한 경찰행정력의 엉뚱한 배치, 정부의 안전관리 실패 등에 얽혀 있다고 보지만 보수진영에서는 단순히 많은 인파가 몰린 탓, 많은 사람이 조심하지 않은 탓, 골목이 좁은 탓으로 축소한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근거와 자료만으로 역사를 100% 실증할 수 있다는 착각 혹은 호도로써 하나의 사건에는 단기적이고 즉각적인 인과 외에 국면적이고 장기지속적이며 구조적인 요인들이 얽혀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단기적이고 직접적인 요인만이 ‘팩트’로 인정되고 그 이상의 층위에서 간접적으로 연루된 장기적 요인들은 ‘팩트’가 아닌 ‘뇌피셜’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된다. 이것이 뉴라이트식 사이비 실증주의에 다름 아니며 바로 이것이 오늘날 한국에서 매우 심각한 역정보 공작과 선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뉴라이트의 역사 왜곡의 정치적 동기는 한국 보수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더욱이 두 차례 연속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더 이상 반공 이데올로기나 레드콤플렉스의 권위주의에 기대서는 권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으로, 보수 헤게모니 재구성을 위한 보수의 리브랜딩을 진행했다. 무엇보다 정당성 강화에 천착했다. 이들의 역사관은 앞서 말한 것처럼 ‘승리한 것이 정의다’에 근간을 두는데 여기에 시장주의가 얹혀졌다. 이것은 보수정당의 뿌리를, 우승열패의 신화에서 불가피하고 합당한 것으로 포장하는 동시에 ‘시장’과 ‘자유’의 강조로써 북한의 경직된 체제와 대조한다. 민주당 세력의 ‘친북’ 이미지를 대조적으로 부각시키고 자신들의 ‘친일’ 이미지와 뿌리를 ‘자유’로 희석한 것이다.
이러한 작업의 핵심에 식민지 근대화론이 있다. 일본의 지배가 한국의 근대적 성장에 기여했다는 주장의 근거로는, 일제가 한반도에 건설한 철도망과 항만시설이 훗날 산업화의 기반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일제가 근대적 토지 소유제와 세제를 도입하여 경제 발전 기반을 마련했다는 주장을 한다. 이러한 주장들은 다만 몇 가지 역사적 사료들과 통계를 근거로 삼는다. 하지만 이들은 실증적인 것 뒤에 있는 맥락이나 국면, 의도 등을 전혀 고려치 않고 완전히 무시한다. 철도와 항만은 일제의 전쟁경제의 일부였으며 조선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식민 수탈 구조를 효율화하기 위한 것이었고, 중국 침략의 경로를 뚫기 위함이었다. 또한 식민지로서 조선의 외면상 ‘발전’은 종속적인 형태의 그것이었고 구조적 불평등 속의 발전이었다.[6] 또한 식민지 근대화론은 조선총독부의 부정확한 통계 기록을 무비판적으로 인용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잘못 해석한다는 문제가 있으며 신뢰도에 심각한 문제를 남긴다.
이러한 속류적 사이비 실증주의의 폐해를 가장 심각하게 노정하는 것이 종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뉴라이트는 일본군 위안부 제도가 조선의 기생제도의 연장선에 있었다고 말하며, 위안부를 ‘고수익 고위험의 자발적 매춘업’이라고 규정했다. 또한 ‘강제성’의 정의를 매우 협소하게 하여 납치와 강간 등의 직접적인 행위만 강제성으로 인정하고 공권력에 의한 동원이나 구조적 강제는 외면했다. 그 대신 여자를 공급한 민간업자나 딸을 팔아넘긴 부모에게 모든 책임을 돌렸다. 무엇보다, 뉴라이트는 일본군이 여성들을 직접적으로 강제 연행 했다는 점을 명시한 공식 문서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을 핵심 근거로 삼는다. 국가가 조직적으로 전쟁 범죄를 저지르는데 스스로 유죄 기록을 남길 이유가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뉴라이트는 실증적 자료의 부재를 곧 역사의 부재로 바로 연결해버린다. 일을 전부 직접 겪었던 피해자들의 살아있는 증언은 역사적 사료로 일절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1번 명제에는 어느 자동기계에 관한 이야기가 쓰여 있다. 이 기계에는 튀르키예풍 옷차림을 하고 물담배를 물고 있는 남자의 상반신 인형이 놓여 있고, 그 앞에는 체스판이 설치돼 있다. 이 기계는 누구를 상대하든 상관없이 체스 게임에서 무조건 승리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즉 체스를 자동으로 두는 인공지능 체스 고수 기계인 셈이다. 그러나 이것을 사실 인공지능을 갖춘 기계가 아니라, 기계 속에 비어있는 공간에 체스를 매우 잘 두는 난쟁이가 숨어서 인형을 끈으로 조종하여 체스를 두게끔 설계된 것이었다.
벤야민은 이 자동기계 인형을 “사람들이 ‘역사적 유물론’이라고 부르는 것”에 비유했다. 즉 역사적 유물론에 대한 속류적 이해를 겨냥한 것이다. ‘기계적 유물론’이 그것으로, 일정한 사회적 조건이 객관적으로 갖춰지기만 하면 역사가 자동적으로 사회주의의 필연적 승리로 나아가리라 믿는 제2-3차 인터내셔널의 이데올로그들이 주창했던 기계적 역사관의 역사 법칙이다. 이 ‘역사 법칙’은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의 최종 위기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공산주의 판본) 또는 사회를 점차 전화시킬 개혁(사회민주주의 판본)으로 귀결된다.”[7]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자동기계 자체만으로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 벤야민에 따르면 역사적 유물론이라는 자동기계 안에 숨은 난쟁이는 신학이다. 신학이 자동기계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어야만 기계는 승리할 수 있다.
맑스-레닌주의를 신봉하던 과거 운동권 인사들은 한국의 자본주의의 모순이 한계에 달해 결국 폭발함과 동시에 민중이 대규모로 봉기하여 승리를 쟁취해 사회주의 혁명이 이뤄지는 구원적 순간이 도래하리라는 믿음을 고수했다. 그러한 기대를 가지고 1980년대부터 지금 한국 사회가 바로 그 자본주의 단계에 도달했느냐, 도달하고 있느냐, 아직 자본주의가 아니냐를 두고 열띤 논쟁을 벌였으며, 제반 영역에서 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소련이 해체되고 ‘이데올로기의 종언’이 선언되면서 이들 상당수는 이제껏 경주했던 노력들이 전부 허사였음을 절감했다. 특히 ‘승리’만을 바라보며 종마처럼 내달렸던 사람들에게 들이닥친 패배감과 좌절감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을 테다. 따라서 그들은 ‘승리한 역사’의 편에 서고자 이른바 전향을 단행하며 이전까지 투쟁해왔던 모든 것, 신념, 가치, 유산을 전부 내던져버리고 부정했다. 그리고 이전까지 맹렬히 맞서 싸워왔던 대상에 대한 열렬한 신봉자가 되었다. 다만 여전히 버리지 않고 관성처럼 유지한 것은 맑스주의자로서 고수하고 있었던 역사적 유물론의 속류적 이해다. 우파로 전향해서 뉴라이트로 자신을 리브랜딩한 이들은 기계적 역사관의 역사 법칙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것은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다.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9번 명제에서 벤야민은 파울 클레의 그림 ‘새로운 천사’의 해석을 통해 그의 고유한 역사관을 제시한다.
“파울 클레가 그린 ‘새로운 천사’라는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의 천사는 마치 자기가 응시하고 있는 어떤 것으로부터 금방이라도 멀어지려고 하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그 천사는 눈을 크게 뜨고 있고, 입은 벌어져 있으며 또 날개는 펼쳐져 있다. 역사의 천사도 바로 이렇게 보일 것임이 틀림없다. 우리들 앞에서 일련의 사건들이 전개되고 있는 바로 그곳에서 그는, 잔해 위에 또 잔해를 쉼 없이 쌓이게 하고 또 이 잔해를 우리들 발 앞에 내팽개치는 단 하나의 파국만을 본다. 천사는 머물고 싶어 하고 죽은 자들을 불러일으키고 또 산산이 부서진 것을 모아서 다시 결합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천국에서 폭풍이 불어오고 있고 이 폭풍은 그의 날개를 꼼짝달싹 못하게 할 정도로 세차게 불어오기 때문에 천사는 날개를 접을 수도 없다. 이 폭풍은, 그가 등을 돌리고 있는 미래 쪽을 향하여 간단없이 그를 떠밀고 있으며, 반면 그의 앞에 쌓이는 잔해의 더미는 하늘까지 치솟고 있다. 우리가 진보라고 일컫는 것은 바로 이러한 폭풍을 두고 하는 말이다.”[8]
이 명제는 ‘진보하는 역사’라는 역사관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역사를, 인류가 달성한 성과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진보의 연쇄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쌓아 올려진 역사의 단층들은 객관적이고 실체가 있는 사료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것들을 살펴봄으로써 지나온 역사를 완전에 가깝게 실증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벤야민이 강하게 비판하는 역사주의 학파의 역사관이다. 뉴라이트 식 사이비 실증주의가 이것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주의는 과거를 ‘있는 그대로(wie es eigentlich gewesen)’ 재현하는 것을 지향한다. 벤야민에 따르면 이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이러한 시각은 역사를 다만 ‘사실’들의 집합으로 전락시키며, 왜 어떤 것은 ‘사실’로 인정되며 어떤 것은 ‘사실’로 인정되지 않는지에 대해 사유하지 못하게 만든다. 또한 엄밀히 다른 ‘사실’과 ‘진실’의 구별을 애초부터 없는 것처럼 만든다. 실증주의 역사학은 자연과학을 모방하여 “인과기제로서 객체의 고유한 구조와 속성을 밝혀내어 원인과 결과 사이의 필연적 관계를 해명하는 활동”(이기홍, 2019, 158-159쪽)을 지향하지만 인과기제와 법칙이라는 것도 인간의 주관이 만들어낸 것, 즉 사유 속에서 재구성한 것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다시 말해 실증주의 역사학자들이 과거를 ‘있는 그대로’ 재현한다고 하며 늘어놓은 ‘사실’들의 집합은 사람이 주관적으로 선별하고 걸러내고 다듬은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흔한, 속류적 이해 중 하나가 역사를 하나하나의 성과와 발전이 축적되어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벤야민이 클레의 그림에서 본 ‘역사의 천사’가 보는 것은 파국이다. 역사적 발전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실제로는 파괴와 폭력으로 인한 단절들의 차이 있는 반복이다. 실증주의 역사학자들은 이것들을 소위 ‘팩트’로 납작하게 만들어 켜켜이 쌓아올릴 뿐이다. 역사의 천사는 이렇게 일련의 팩트들로 구성된 역사, ‘진보’의 연쇄로 구성된 역사 앞에서 ‘잔해 위에 또 잔해가 쉼 없이 쌓인’ 파국을 보며, 그 옆에 내팽개쳐진 잔해들을 본다. 어떤 잔해는 역사의 일부로 취급조차 안 하고, 어떤 잔해는 역사를 구성하는 자들에 의해 그들의 입맛에 맞게 재단되고 압축돼서 역사의 단층의 일부에 불과한 것이 돼버린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의 대부분은 무시되고 내팽개쳐지지만 그중 극히 일부 증언은 뉴라이트의 의도에 맞게 왜곡되어 활용되는 식으로 말이다. 역사의 천사는 이러한 버려지고 부서진 것들을 다시 모아서 재조립하여 과거의 파국을 치유하고 구제(구원)하고자 하지만 ‘진보’라고 불리는 폭풍이 불어오는 탓에 역사의 천사는 옴짝달싹 못 하게 되고, 잔해들은 날아가버리고 흩어져버린다.
뉴라이트 역사 인식은 바로 이러한 ‘진보의 폭풍’ 앞에 온몸을 내던져버린 것과 같다. 그들이 말하는 식민지 근대화가 바로 폭풍의 다른 이름이다. 역사의 천사가 ‘파국’으로 본 것은 역사적 발전이자 진보다. 역사의 천사가 안타까운 시선으로 ‘잔해’로 본 것은 역사적 진보를 위한 불가피한 부수적 피해에 불과하며 그들의 시선에는 보이지도 않는다. 객관적 통계와 사료만을 중시하는 뉴라이트의 분석은 일체의 잔해를, 성장을 표상하는 수치로 환원하거나 아예 통계에서 배제함으로써 파국을 보이지 않게 하고 역사의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역사적 진보라는 폭풍의 굉음에 완전히 묻히게 만든다.
벤야민이 1번 명제에서 튀르키예풍 복장을 한 체스 자동기계에 빗대어 말한 ‘승리’는 그가 글을 쓰던 당시 임박했던 가장 심각한 위협인 파시즘의 물결에 맞선 싸움에서의 승리였다. 말하자면 뉴라이트 세력은 좌파 진영에 있었을 때부터, 영혼 없는 자동기계를 열심히 돌리기만 하다가 파시즘에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전향 후 그 영혼 없는 자동기계를 더 맹렬히 폭주기관차처럼 돌림으로써 파시즘의 승리를 의도적으로 가속화하고 있다.
또한 벤야민의 <인식비판적 서론>의 비판을 적용하면 뉴라이트의 방법론은 진리로부터 심각하게 멀어진다. 벤야민의 논지의 핵심은 사실과 진리(혹은 진실)가 존재하는 양상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에 있다. 사실은 인식되는 대상으로 서 있다. 그에 반해 진리는 인식의 대상이 아니다. 진리는 ‘무언가에 대한’ 진리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하며 스스로 자신을 드러낸다. “진리는 모든 의식의 지향성, 즉 의식적 사유가 특정한 문제나 사태를 개념적으로 파악하고 주장하는 차원을 근본적으로 넘어서 있다.”[9] 그가 보기에 실증적 학문에서 사실의 인식은 체계적인 완결성을 목표로 하며 그 완결성을 완성된 진리의 모습으로 상정하지만 그것은 오류다. 사실들을 아무리 많이 백과사전적으로 축적해서 포괄하고 종합해봐야 그렇게 구성한 완결성은 진리와는 전혀 다른, 그저 사실의 집합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진리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인가? 정확히는 벤야민에 따르면 진리는 닿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불시에 갑자기 자신을 현시하는데 바로 그 순간을 붙들어야 한다. 진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은 성좌라는 형상을 통해서다. 밤하늘의 별들이 그것만으로는 개별적인 점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생각지도 못한 그림을 만들어내는, 별자리라는 유의미한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여기서 별에 해당하는 것이 사실이다. 즉 개별의 사실들은 그 자체로는 고립된 파편에 불과하며, 이것들을 모아서 압축해봐야 의미 없는 덩어리가 될 뿐이다. 진리는 사실들의 특정한 방식의 연결과 배열에 따라 어느 순간 스스로 드러낸다. 따라서 역사학자를 포함하여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과제는 파편 혹은 잔해라고도 할 수 있는 사실들을 성좌로서 재배열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일련의 매끄러운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파편의 우연한 배치가 별안간 전혀 새로운 의미를 드러내는 몽타주 기법과 유사하다. 그리고 그 배치의 연결, 이음새를 일시적이나마 응고시키는 접착제가 바로 벤야민이 1번 명제에서 자동기계(역사적 유물론)에 활력을 불어넣는다고 한 난쟁이(신학)에 대응한다. 이것은 말 그대로의 신학을 포함하여 어떤 신념, 공감과 연민, 열정 등 주관적 영역에 속하는 것들이 해당된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진리, 진실이라는 것이 철저히 주관적인 것이라는 점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진리 혹은 진실이 아닌 것’부터 말하자면,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은 그것을 객관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으로,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이견을 가질 수 없는 실체로서 어딘가에 존재하며 그것이 발견되기까지 수동적으로 기다리고 있는 어떤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속류 실증주의의 전형적인 오류다. 진실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만들어내고 구성해내고 길어 올려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진실이 상대주의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자기만의 진실이 있고, 개개의 진실들이 전부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사람들이 같은 인간으로서 앞에 놓여 있는 대상을 인식하는 데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진실의 구성요소가 되는 사실들 만큼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대동소이하게 감각되는데,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배치하고 맥락화하느냐에 따라서 진실이 드러나기도 하고 드러나지 않기도 한다. 즉 동일한 사실들을 본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누군가는 진실을 포착하는 반면 누군가는 진실을 완전히 놓치고, 단순히 열거된 사실들의 단면만을 보고 진실이라고 착각하거나, 다른 누군가가 임의로 연결한 그림을 보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착각한다. 이렇게 봤을 때 진리, 진실이란 발견 혹은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 투쟁의 대상이라는 점이 명확해진다.
인간의 인식과 진리의 관계는 다음과 같은 예를 통해 어느 정도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카니자의 삼각형’이라는 유명한 착시 사례가 있다.
우리는 이 그림에서 삼각형을 본다. 그러나 실제로 거기에 삼각형은 없다. 실제로 있는 것은 같이 한 곳을 바라보며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팩맨 그림뿐이다. 빈 공간에서 삼각형을 보게 되는 이유는 머릿속에 꼭짓점이 세 개면 삼각형이 된다는 지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한 사람이 무언가를 인지할 때,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감각 자극을 있는 그대로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주관을 통해 그것을 해석한다. 인간의 신체 외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무언가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를 인간이 능동적으로 재해석하고 재구성해서 다시 그려낸 것이 그의 눈에 보이는 그림이라는 것이다. 카니자의 삼각형에서 팩맨은 인식된 사실에 대응하고, 거기에 없지만 포착되는 삼각형은 진리, 진실에 대응한다.
뉴라이트가 한국인의 정신적 영토에 퍼뜨린 사이비 실증주의 세계관에서 삼각형은 ‘팩트’가 아닌 ‘뇌피셜’로 기각된다. 누구에게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것이 의문에 부쳐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미국의 철학자 리 매킨타이어(Lee McIntyre)는 [누가 진실을 전복하려 하는가]라는 책에서 가짜뉴스와 음모론을 포함한 탈진실 시대의 정보 공작을 ‘역정보(disinformation)’라는 더 넓은 개념으로 범주화한다. 그에 따르면 역정보의 핵심은 진실을 은폐하거나 없앨 수 없으면 개소리로 둘러싸고 거짓을 쏟아내 많은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는 데 있다. 그렇게 사기가 꺾이면 진실을 파악하는 것을 포기하게 되며, 이러한 형국이 지속되면 거짓말을 믿지 않는 사람들마저 결국에는 진실이라 일컬어지는 모든 것이 당파성에 종속된 것이라는 불신과 적대감을 가지게 된다고 매킨타이어는 말한다. 따라서 이러한 공작을 ‘disinformation’라고 명명한 것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본래 냉전기 첩보전의 정보 교란을 일컫는 말로 쓰였지만, ‘dis’라는 접두사가 무언가를 부정, 반대하거나 해체함을 의미한다는 것을 상기하면 도대체 뭐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극도의 사회적 혼란과 좌절마저 초래하는 교란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더없이 탁월하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왔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만 정상적인 소통이 가능한 상식들을 해체한다는 점에서 ‘dis’라는 접두사 만큼 적절한 것이 없다.
역정보는 가짜뉴스를 포함하지만 가짜뉴스의 동의어는 아니다. 역정보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는 삼각형을 세 개의 팩맨으로 해체하는 것이다. 모든 맥락과 전사前事는 소거한 채 사실관계만 나열하는 식으로 공세를 퍼붓고, 맥락을 설명하려고 하면 ‘팩트로 반박하라’라는 식으로 무시한다. 둘째는 특정 정치 세력을 공격하려는 의도나 시스템 자체를 공격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서로 전혀 무관한 사실들을 필연적인 것처럼 연결하여 엉뚱한 그림을 그려서 진실이라고 호도하는 것이다. 음모론이 후자의 방법을 취한다. 이제는 여기서 더 나아가, 모두가 공히 볼 수 있는 팩맨 그림마저 해체하고 부정하려 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무미건조한 팩트마저 부정하거나, 당파성의 산물이라는 의심을 하는 사람이 늘기 시작했다.
역정보로 인한 과학 부정과 역사 부정이 현실에 대한 부정으로 나아가는 인지능력의 저하 및 인지의 편향의 출발점에는 이른바 ‘바이든 날리면’ 사건이 있다. 전 국민에게 듣기평가 시험을 치르게 한 이 희대의 사건은 생생하게 들리는 육성마저 당파성, 지지하는 정당, 이념에 따라 해석에 열린 무언가로 바꿔버렸다. 뉴스토마토가 미디어토마토에 의뢰해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윤석열의 문제의 발언에서 ‘바이든’을 들었다고 한 응답이 58.7%, ‘날리면’으로 들었다고 한 응답이 29.0%, ‘모름’은 12.4%로 집계되었다.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65.0%가 ‘날리면’으로 들었다고 응답했다. 대통령과 정부 및 여당은 언론을 압박하며 현실마저 자기 마음대로 조작한 것이며, 일부 무시 못 할 규모의 대중은 그 농간에 기꺼이 놀아났다. 객관적인 것을 눈앞에(혹은 귀 앞에) 두고 그것을 A로 인식하냐 B로 인식하냐에 따라 그 사람의 정치적 성향을 유추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앞서 강조한 것처럼 진실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며, 사실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공통된 인지 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즉 사실의 층위에서만큼은 거의 모든 사람이 같은 것을 보고 듣는다는 것을 전제한다. 성장한 문화권에 따라, 교육의 여하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인간으로서 타고난 생태적 조건, 그리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가지는 공유된 인지 체계는 의사소통의 최소 조건이며 이것이 있어야만 기초적인 사실 판별이 가능하다. 이것은 일종의 게임의 규칙과 같으며, 진실을 둘러싼 투쟁은 게임의 규칙을 따르면서 경합하는 과정이다. 역정보는 이러한 규칙을 붕괴시키며, 최종적으로 의사소통의 최소 조건을 붕괴시킨다. 역정보로 인해 진실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극으로 치닫는 형편에서 사람들은 똑같은 것을 보고 들으면서도 서로 전혀 다른 것을 보고 듣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언론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형편에서 다수 언론은 항상 쉬운 길을 택한다. 가짜뉴스나 음모론, 극언 등을 말하는 정치인이나 유명인을 단순히 인용 보도만 한다거나, 그가 하는 이야기를 더 들어보겠다는 이유로 방송에 출연시키거나 하는 것은 의도 및 취지와는 무관하게 매킨타이어에 따르면 ‘진실 도살자’ 혹은 적어도 ‘방관자’다. 더불어서 편파적이라는 혐의를 피하기 위해, ‘양쪽 진영’의 입장을 기계적으로 양분하여 보도하는 것 역시 진실 도살에 일조한다. ‘바이든’을 ‘날리면’으로 들은 사람과 그러지 않은 사람, 부정선거 음모론, 선관위에서 중국인 간첩 99명이 체포되었다는 보도를 믿은 사람과 그러지 않은 사람을 균형 있게 다루는 것은 최악의 방법이며, 양 진영이 마치 해석이나 선택, 신념의 문제인 것처럼 만든다. 다시 말해, 그러한 음모론이나 가짜뉴스를 믿지 않는 것 또한 어떤 편향의 결과라는 점을 시사한다. 그로써 추가로 전달되는 암시는 진실이 양쪽 의견 사이 중간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실이 어딘가에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안일하게 믿고 있는 동안 진실은 점점 더 갈수록 빠르게 극우로 기울게 된다.
[1]
[2] 황희두, <사이버 내란>, 16쪽.
[3] 황희두, <사이버 내란>, 17쪽.
[4] 황희두, <사이버 내란>, 42쪽.
[5] https://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1175059.html
[6] https://blog.naver.com/wjrm45/221849207009
[7] 미카엘 뢰비, <발터 벤야민: 화재경보>, 57쪽.
[8] 발터 벤야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9] 하선규, 벤야민의 역사철학적 이념론과 예술철학, <발터 벤야민 모더니티와 도시>, 3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