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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과 팬덤을 보도하는 종편방송의 악질적 프레임

 이른바 보수언론 특히 종편방송의 시사프로그램에서 악의적 프레임으로써 여론을 왜곡하고 담론을 오염시키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수많은 사람이 지적했고 비판했다. 이번 이재명 살인미수 정치테러 관련해서도 예외 없이 서로 전혀 무관한 것들을 상관있는 것처럼 엮어내거나, 필연적인 관계가 있는 요인들을 무관한 것으로 해체하는 프레임으로써 인위적으로 특정인과 정당에 대한 적대감을 유도하고 있다. 거짓, 가짜뉴스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가짜뉴스가 아니기 때문에 더 대처하기가 까다롭다.

 

MBN에서 뉴스와이드라는 정치시사프로그램이 있다. 저녁식사 때 틀어놓기 딱 좋아서 10여년 전부터 즐겨보던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제목이 무색하게 종합 뉴스는 아니고 99%는 여야 정치를 다룬다. 2:2 혹은 2:3 비율로 여야 성향의 평론가나 변호사, 정당인 패널이 출연해서 사안마다 한 마디씩 논평한다. 다루는 사안이 많은데 시간은 한정되어서 정말 한두 마디만 할 수 있어서 토론도 딱히 되지 않는다. 제작진으로서도 '뉴스'라는 제목이 어색했는지 아주 잠시 동안 '정치와이드'로 제목을 바꿨다가 다시 뉴스와이드로 돌아왔다. 백운기 앵커가 진행할 때 제일 볼 만했는, 정권교체 되자마자 알 수 없는 이유로 현재 이상훈 앵커로 교체되었다. 과거 송지헌 앵커처럼 대놓고 편파진행을 하는 것 같진 않지만 은근히 신경을 긁는 부분이 있다.

 

지난 4일에 방송한 이재명 피습 관련 보도에서 음모론을 비판적으로 논평하는 꼭지가 있었는데 여기서 보여진 프레임이 굉장히 교묘하면서도 악질적이었다. 일단 양쪽 진영에서 제기된 '음모론'을 하나씩 소개한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균형이나마 잡고자 애쓴 표시는 있다. 그러나 악의적으로 사실관계와 영상에 보이는 모든 것을 부정해가며 온갖 저주와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사람과, 단순한 의혹 제기와 음모론 사이의 문턱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사람을 동일한 정도로 위험한 음모론자로 엮는 것은 매우 문제적이다. 1월 4일 방송분의 한 장면을 보겠다.

 

MBN뉴스와이드 2024년1월4일 방송 화면 캡처


일단 만번 양보해서 '의혹 제기와 음모론 사이 문턱에 서 있는'이라고 표현했지만 김어준의 발언을 음모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제일 중요한 것은 ""를 쓴 것부터가 오류다. 김어준은 방송에서 저런 발언을 하지 않았다. '한 개인이 어느날 갑자기 마음을 독하게 먹은 것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지 않냐', '1년 전에 민주당에 입당했다면 그때부터 계획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라는 취지의 발언은 했다. '배후세력은 누구다'라고 말했으면 음모론이라고 하겠지만 이번 발언까지 음모론이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내가 정말로 지적하고 싶었던 것은 김어준이 음모론적 발언을 했냐 안 했냐가 아니다. 앞서 한 분이 지적한 것처럼 (https://alook.so/posts/lat1E75)"사람이 죽을 뻔한 걸 걱정하는 사람과 죽었으면 좋겠다는 사람을 '쌤쌤'으로" 만들어서 문제라는 것도 아니다. 설사 그가 진정으로 악질적인 음모론을 설파했다고 하더라도 저 캡처화면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일견 양쪽 균형을 맞춘 것 같지만, 왼쪽의 자작극이 의심된다는 음모론에는 주체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 현재 한국사회 담론에서 '온라인 커뮤니티'라는 말보다 두루뭉술한 말을 찾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 어느 것도 지칭하지 않는다. 자작극이 의심스럽다는 이야기를 하고 수술이 쇼라고 주장한 우파 인사를 찾기가 어려웠나? 이봉규와 진성호다. 각각 구독자 80, 180만의 대형 유튜버며, 진성호는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한 차례 한 사람이다. 김어준보다 체급이 높으면 높았지 결코 낮은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한쪽은 온라인 여론이라며 모호하게 소개하면서 심각성의 정도를 희석하고 다른 한쪽은 특정인을 '음모론의 진원지'로 밝히면서 '민주진영 발 음모론'에 실체를 부여하는 악질적인 프레임이다.

 

A: 배후세력이 있다던데?

B: 누가 그래?

A: 김어준이 그러던데.

 

A: 자작극이라던데?

B: 누가 그래?

A: 인터넷에서 그러던데.

 

두 대화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의 차이가 와닿기를 바란다.

 

뉴스와이드는 약간은 다르지만 비슷한 전적이 있다. 소위 '정치팬덤의 만행'을 보도할 때다.

 

MBN뉴스와이드 2023년8월28일 방송 화면 캡처

친민주당 팬덤의 만행 두 건, 친정부 팬덤의 만행 한 건을 보도하는데 2:1의 불균형을 지적하려는 것은 아니다. 앞의 두 사례의 주체는 민주당 강성 팬덤 이른바 '개딸'이라고 호명함으로써 일부의 호전성, 극단성의 인상을 민주당 지지층 전체에 씌운다. 반면 자우림 김윤아에게 가해진 악플 테러의 주체는 '한 극우 성향 유튜버'라고 특정한다.

 

MBN뉴스와이드 2023년8월28일 방송 화면 캡처

팬덤 담론에 대해서 늘 갖고 있는 불만이 이것이다. 친민주당 팬덤은 노사모, 문파에서 개딸까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 친국민의힘이나 친정부 팬덤은 이름이 없다. 오히려 팬덤이 없는 것처럼 이야기되는 분위기다. '팬덤 정치의 폐해' 따위를 보도하는 것을 보면 대부분 민주당 지지층의 행위와 연결돼 있다. 가뭄에 콩나듯 볼 수 있는, 보수진영 지지층의 문제적 행태를 지적하는 보도에서는 팬덤이라는 말은 좀처럼 거론되지 않는다. 대신 일베나 펨코 등 특정 사이트를 지시하거나 위에서처럼 어느 유튜버라고 특정한다. 국민의힘 지지층과 팬덤의 만행을 분리하는 프레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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