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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23일 월요일

사회 비판적 다큐멘터리와 사회 변동의 관계 : <경계도시2>, <두 개의 문>, <다이빙벨>을 중심으로 II. 본론 1. 텍스트와 콘텍스트의 상호작용의 복잡성

II. 본론

  1. 텍스트와 콘텍스트의 상호작용의 복잡성


  앞서 밝혔듯이 본 논문의 연구방법의 주요 논거틀은 벤야민이 정리한 인식과 진리의 관계에 의거한다. “인식은 캐물을 수 있지만 진리는 그렇지 않다개념이 오성(悟性)의 자발성에서 나오는 반면, 이념들은 관찰에 주어져 있다. 이념들은 앞서 주어져 있는 무엇이다.”[1] 텍스트들이 인식효과로서 사실들을 보여주면서 진리의 어느 층위에 다가가는가, 그리고 어떤 한계가 있는가가 주요 쟁점이 될 것이다. 이 작업을 위해 선행연구들에서 간과되었던, 사건사적 분석층위와 구조사적 분석층위가 변증법적으로 결합된 문제틀을 취해야 할 것이며 다큐멘터리 텍스트 자체와 그것을 둘러싼 콘텍스트를 공시적으로, 통시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텍스트와 콘텍스트의 관계 분석 서술의 논리에는 시모어 채트먼의 이론을 참고할 것이다. 개별 작품들에 대한 논의로 들어가서는 빌 니콜스와 들뢰즈/옐름슬레브의 작업을 참고하여 텍스트의 표현 양식을 분석해 텍스트에서의 실재의 굴절 정도를 알아보고자 한다.

  시모어 채트먼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의 화용론적 프레임<실제작가내포작가서술자진술(사건/이야기/존재) 피화자내포독자실제독자>[2]을 모델로, 콘텍스트(1)에 다큐멘터리 장르, 콘텍스트(2)에 당시의 역사적 상황, 텍스트(1)에 영화가 다루는 실제 사건, 텍스트(2)에 표현양식을 대입하여 C(2)C(1)T(2)T(1)의 순으로 개별작품 분석 논리의 틀을 잡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T(1)C(2)를 묶어 역사적 상황 속에서 개별 사건들의 위치와 그 관계들을 규명하고 C(1)T(2)를 묶어 장르 분석과 표현면 분석을 병행한다면 본 논문의 서술 구조를 다음과 같이 시각화할 수 있을 것이다.[3]



  편의상 작품 분석 논리의 틀을 C(2)C(1)T(2)T(1)이라 표기했지만 이것이 선형적인 서술 순서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작가가 현실적 맥락에서 사건을 대하는 견지가 어떠한지를 밝혀내는 연구와 텍스트가 실제 어떤 독자를 호명하는지, 그리고 그 효과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연구방법은 비선형적인 지그재그 구조를 띨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하 콘텍스트(2)는 역사적 콘텍스트, 콘텍스트(1)은 장르적 콘텍스트라 부르기로 한다.

  본 논문은 텍스트(1)이 내용 층위, 텍스트(2)가 표현 층위에 해당한다는 가정 하에 내용의 소재/형식/기능과 표현의 소재/형식/기능의 여섯 개 틀에 맞춰 작품을 분석재해석하는 것을 개별 작품 비평의 방법으로 삼고자 한다. 벤야민이 인식비판적 서문에서 인식과 진리를 구별한 것에 입각하여, 내용면 분석과 표현면 분석을 아우르는 비평이 이루어진다면 쇼트들 간의 관계(몽타주)를 넘어 관계들 간의 관계 즉 텍스트(1)(2)의 조응관계를 독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하 텍스트(2)는 표현면, 텍스트(1)은 내용면이라 부르기로 한다.

  앞서 영화예술이 지성과 감성의 변증법을 시청각화한 예술 형태라고 한 바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상술은 본고의 범위를 초과하지만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영화는 내용이 시청각적으로 표현된 것으로, 전자는 지성으로 독해되며 후자는 감성으로 지각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조형예술의 경우, 텍스트 자체만으로 그것의 내용을 독해하는 것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 영화는 내용적 소재들을 표현적 소재들로써 엄격한 시공간적 연속성의 제약 없이 영상화되기 때문에 내용면과 표현면은 동등한 위상을 갖는다. 들뢰즈/옐름슬레브의 기호학 범주에 따라 영화의 제작 공정을 다음과 같은 도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4]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예술의 속류적 이해에서는 종종 전자는 내용미학, 후자는 형식미학에 연결되어 양자가 서로 단절적이거나 대립적인 범주인 것으로 간주되게 된다. 하지만 영화 제작 공정을 이렇게 내용에 표현 형식을 부여하는 절차로서 통합적으로 이해한다면 로버트 스탬이 브레히트적 영화를 <리얼리즘적 모더니즘>이라 명명한 것이 정당화된다.[5] 통상적으로 스토리와 내러티브의 이해가 중요한 상업 극영화 혹은 그것에 담긴 사회적 메시지의 관철이 중요한 다큐멘터리 영화의 분석과 비평은 주로 내용면에 천착하며 표현면 분석의 중요성은 간과되는 경향이 있고 예술영화의 경우는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표현을 배제한 맹목, 내용을 배제한 공허는 앞서 말한 영화의 특수성을 살릴 수 없다. 영화 텍스트를 내용면과 표현면 층위로 해체/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한 까닭은 영화 역시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장치로서 감독과 제작진의 의식적/무의식적인 이데올로기를 통해 실재가 왜곡/굴절되어 나타나며 그것의 정도와 논리를 드러내는 것이 바로 비평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것이 다루는 소재/이야기 말고도 그것이 재현되는 표현 양식에 있어서도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다. 내용면이 표현면으로 화하는 일종의 번역과정에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축소, 누락되거나 추가, 확대되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며 어떠한 논리가 그러한 현상의 기저에서 작동하는지를 밝혀내야 한다. 이 작업을 위해 내용면 분석은 시퀀스 분석으로써 메인플롯과 서브플롯을 변별하여 제기된 문제, 해결된 문제, 미해결된 문제들을 가려내어 역사적 콘텍스트에서의 문제틀과 연결해 성좌를 그려보고자 한다. 그리고 표현면 분석에서는 들뢰즈의 시네마1의 운동-이미지 유형들을 참고하여 이미지와 편집의 형식들을 분별해 장르적 콘텍스트와의 상응관계를 탐구한다.

  역사적 콘텍스트와 텍스트 간의 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한국 정치경제의 통시적 변천사의 특정 위치에 텍스트를 정위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문화과학 편집위원회의 세대의 정치학과 한국현대사의 재해석에서 <한국 정치경제문화사의 중층적 주기들>[6]을 참조할 것이다. 한국사회의 독특한 점은 체제의 전환이 단절적이지 않고 체제가 이행함에 따라 과거의 산물이 몇 겹으로 누적되어 내속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탓에 텍스트가 다루는 사건과 그것이 문제화하는 체제의 산물은 시기적으로 서로 반드시 붙어 있을 필요는 없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가능하다. 따라서 <경계도시2>의 문제틀은 전후 반공 이데올로기를 싹트게 한 53체제에 조응하고 <두 개의 문>은 실물팽창 주기에서 금융팽창 주기로 넘어가는 97체제와 신자유주의의 폭력적 수탈이 전면화되는 08체제에 조응하며, <다이빙벨>97-08체제가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하는 국면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텍스트라고 상정할 것이다.

  또한 텍스트의 배후에 있는 실제작가가 어떠한 방식으로 그의 이데올로기를 작품에 투영하였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도 역사적 콘텍스트에 대한 작업이 필요하다. 작품의 제작시기를 공시적으로 통찰하여, 제작 로케이션 안팎에서 정치경제적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는지를 탐구해야만 내용의 재료들이 어떠한 사회적 약호들을 통해 걸러지는지, 그 걸러지는 과정에 어떤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지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전달체로서 작품은 수신자와 송신자라는 두 개의 진영을 전제로 한다.” 콘텍스트 분석은 실질적 수용자, 즉 실제독자가 어떠한 사회적 약호 안에서 작품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지를 알아내는 데에도 유용할 것이다.

  콘텍스트(1) 즉 허구적 맥락의 분석은 곧 장르분석의 동의어라고 봐도 좋으며 따라서 허구적 맥락은 장르적 콘텍스트로 일컬을 수 있다. 작품의 유형에 따라 내포작가와 내포독자의 성질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빌 니콜스는 촬영 대상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작자, 대상, 관객이라는 삼자 간의 관계성 안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 삼자 간의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원형적인 공식은 다음과 같다.


당신에게 그들에 대해 이야기한다(I speak about them to you).”[7]

  니콜스는 같은 책에서 다큐멘터리의 하위 장르처럼 기능하는 재현 양식을 여섯 가지로 구분했다. 시적 양식, 설명적 양식, 참여적 양식, 관찰자적 양식, 성찰적 양식, 수행적 양식이 그것이다.[8] 반드시 한 작품이 하나의 양식만을 취하는 것은 아니고 둘 이상의 양식을 정도에 따라 취하는 것도 가능하다. 어떤 작품이 특정한 양식을 따른다고 해서 구성의 모든 면이 결정되거나 강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I)와 당신(You)와 그들(Them)의 자리를 대체하는 명사와 이야기하는(speak about) 방식과 장르적 특성은 대응해야 한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실제 작가가 어떠한 입장에서(내포 작가) 어떤 관객층(내포 독자)을 대상으로 하였는지를 밝히는 데 필요한 작업이 장르 분석이다. 개별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화자의 성격과 이야기하는 방식, 소구하는 관객을 따져봄으로써 텍스트의 재현 양식을 분별해야 텍스트가 콘텍스트와 맺는 관계를 알아낼 수 있다.

  이상 텍스트의 내용면과 표현면의 분석 방법, 역사적 콘텍스트와 장르적 콘텍스트의 분석 방법을 개괄했으며 이 분석으로 도출시킨 결과로서의 단자들을 연결해 변증법적 성좌를 그리는 것이 벤야민적 비평, 진실로의 접근을 위한 방법이 되겠다. 벤야민이 말한, 진리를 드러내는 이념으로서의 성좌라는 것이 그의 글만으로는 지나치게 함축적이고 비유적으로만 설명이 돼 있는 탓에 실체를 잡기가 굉장히 어렵다. 인식과 진리는 결코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며 인식 효과들의 무질서한 흐름 안에서 진리 효과의 질서가 스스로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혼돈 속의 질서부분들의 합보다 큰 전체를 골자로 하는 복잡계 과학의 논의를 빌어 정지상태의 변증법의 규명을 개괄할 수 있다. 심광현은 이를 스튜어트 카우프만의 상전이 실험으로 명료히 설명한다.[9] 단추들 수백 개를 흩뜨려 놓고 두 개를 무작위로 선택해 실로 둘을 묶는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하나의 단추가 여러 개의 단추에 중복돼서 연결된다. 중복으로 연결된 단추가 또 다른 중복으로 연결된 단추와 연결되면 단번에 큰 덩어리가 된다. 이러한 과정이 더 많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실 대 단추의 비율이 0.5를 넘길 때 갑자기 거대한 덩어리가 형성된다. 중요한 것은 이 개개의 부분들이 반드시 힘을 잃지 않고 임계점을 지나기까지 나름의 부단한 섭동을 유지해야만 창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내용면의 요소들이 개별 쇼트들로 화하고 그 쇼트들이 관계들(몽타주)을 이루어 하나의 전체적인 이야기가 완성되는 영화의 메커니즘과 흡사하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 텍스트들에 대하여 확인하고자 하는 건 비단 인식(개념)들로 해체되어 있는 요소들을 얼마나 잘 규합해서 진리(이념)를 성좌적으로 보여줬는지의 여부만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작품이 단지 그것이 다루는 사건의 사실관계들을 열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경험 이전의 어떤 힘으로서 그것의 본질을 각인하는 힘으로 존속하는 진리[10]에 얼마나 다가가느냐를 알아내는 일이다




각주
[1] 최성만김유동 옮김(발터 벤야민), 독일 비애극의 원천, (파주: 한길사, 2015), 39-40.
[2] 한용환 옮김(시모어 채트먼),이야기와 담론, (서울: 푸른사상, 2006), 307.
[3] 심광현, 5강 운동-이미지와 내러티브의 인지생태학적 종합: 영화적 스토리텔링의 구조와 작용 분석”, 영상이론과 예술사 <서사분석세미나1> 강의록, 2017, 34.
[4] 같은 글, 16.
[5] 오세필·구종상 옮김(로버트 스탬), 자기 반영의 영화와 문학, (서울: 한나래, 1998), 51.
[6] 심광현, “세대의 정치학과 한국현대사의 재해석”, 문화과학, (서울: 문화과학사, 2010), 62, 62.
[7] 이선화 옮김(빌 니콜스), 다큐멘터리 입문, (파주: 한울아카데미, 2005), 45.
[8] 같은 책, 167-168.
[9] 심광현, “정지상태의 변증법과 신체화된 미메시스의 미학과 정치”, 2013
[10] 최성만김유동 옮김(발터 벤야민), 독일 비애극의 원천, (파주한길사, 2015), 48쪽.

2020년 3월 21일 토요일

사회 비판적 다큐멘터리와 사회 변동의 관계 : <경계도시2>, <두 개의 문>, <다이빙벨>을 중심으로 I. 서론 3. 서술방법

I. 서론

  3. 서술방법


  송두율 사건을 다룬 <경계도시2>, 용산참사를 다룬 <두 개의 문>, 그리고 세월호참사의 현장에서 정부의 직무유기를 보여준 <다이빙벨>을 차례로 분석하면 한국 사회의 상부구조가 단계적으로 무너지고 토대의 모순이 증폭되는 것이 가시화되는 과정을 보여줄 것이라는 것이 본고의 개별 작품 분석의 가설이다. 즉 본 논문의 서술 순서는 비판적 다큐멘터리와 사회 변동의 관계를 보여줄 것이라는 말이다. 알튀세르의 관점에 의거하여 한국의 자본주의 사회구성체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Idealogical State Apparatus, ISA), 억압적 국가 장치(Repressive State Apparatus, RSA)와 하부구조인 토대로 구성되어 있다는 전제 아래, 체제들이 누적됨에 따라 강화되었던 헤게모니에 균열을 가한 굵직한 사건들을 텍스트들이 어떻게 재현하는가가 본론의 주 내용이 되겠다. <경계도시2>에서 목도되는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의 균열, <두 개의 문>에서 나타나는, 이데올로기의 균열에 따른 억압적 국가장치의 폭력과 헤게모니의 균열, <다이빙벨>에서 암시되는 토대의 균열의 과정을 풀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균열: 한국에서 반공 이데올로기는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의 중추를 이룬다. 송두율 사건과 국가보안법 논쟁은 해방세대에서 지금의 촛불세대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아비투스의 실체를 드러냈다.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찬반논쟁과 반공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투쟁 안에서도 암약하던 레드콤플렉스가 그것이다.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서 민주화의 과정에 있어서 맹점에 위치해 있던 레드콤플렉스를 직시한다는 것은 한국 정치경제의 상부구조의 일부분에 균열을 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데올로기가 발생시킨 효과로서 레드콤플렉스가 이데올로기를 더욱 강고하게 만드는 되먹임 고리가 노출된 것이다.

  균열: 한국은 6월민주항쟁을 거치면서 군부독재에 의한 억압적 착취 구조는 더 이상 유지되기가 어렵게 되었으며 세계화의 압력이 더해 자본시장의 개방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개방화 조치와 재벌 권력이 만나 최악의 결합이 이루어졌고 초국적 자본의 유입과 더불어 신자유주의적 수탈 구조로의 전환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10년 뒤 발생한 미국발 금융위기와 보수정권으로의 교체를 통한 신자유주의 경찰국가의 출범은 폭력수탈의 전면화를 특징으로 한다. 2008년 촛불시위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깨졌음을 알리는 징후이며 이에 이명박 정부는 공권력을 동반한 폭력으로 대응했다. 전까지는 심층에서 은폐된 채 이루어지던 신자유주의적 수탈이 국가폭력에 의해 표층으로 가시화된 사건이 용산참사다. ISA의 균열에 따른 RSA의 폭력의 전면화와 헤게모니의 균열이 복잡하게 얽히는 구조가 다름 아닌 용산참사로 표현된 것이다.

  균열: 신자유주의의 모순이 극대화되어 토대가 내부로부터 붕괴되기에 이르고 통치의 합리성은 완전히 해체되어 국가는 사익집단과 다름 없게 된 것이 박근혜 정부 때의 일이다. 이데올로기적 장치는 가장 기초적인 기능조차 작동을 멈추고 안전장치는 기득권의 안전만을 위해 돌아가는 와중에 세월호참사가 발생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세월호참사를 TV뉴스를 통해 처음 접했고 대통령은 행방이 묘연했으며 재난 컨트롤타워로서 정부는 전혀 기능하지 못했다. <다이빙벨>에서 이종인 알파팀 대표가 다이빙벨이 들어가면 지금껏 정부에서 한 일이 공갈이라는 게 드러나기 때문에 해경에서 투입을 막았다고 말한 것은 결코 근거 없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세월호 청문회와 최순실 청문회를 통해 드러났다.

  이상 <경계도시2><두 개의 문><다이빙벨>의 사건의 역사적 맥락을 거칠게 요약했다. 본 논문은 단지 텍스트가 콘텍스트를 충실히 반영하고 보여줬는지의 여부에만 초점을 두지는 않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텍스트가 관객으로 하여금 콘텍스트의 다층적 층위를 어떻게 구조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하느냐이다. 이것을 중심으로 세 편의 다큐멘터리를 논의함과 동시에 사건과 맥락, 텍스트와 콘텍스트, 행위와 구조의 변증법을 이루는 서술로써 예술과 사회 변동의 복잡한 상호작용 관계를 밝히고자 한다.

사회 비판적 다큐멘터리와 사회 변동의 관계 : <경계도시2>, <두 개의 문>, <다이빙벨>을 중심으로 I. 서론 2. 선행연구 검토

I.  서론

  2. 선행연구 검토

  <경계도시2>에 관한 비평과 리뷰들은 대부분 송두율 교수의 경계인으로서의 사색을 보여주는 영화의 시선과 그를 둘러싼 한국 사회 구조에 대한 반성에 천착한다. 그러나 이는 감독이 이 영화를 촬영한 의도, 감독이 관객을 향해 던지려 한 메시지를 동어반복하는 것에 그친다. <경계도시2>의 문제틀에는 여러 가지의 쟁점들이 중첩되어 있다. 국가보안법 비판과 감독 자신이 고백한 레드콤플렉스라는 표면 효과의 심층을 보기 위해 레드콤플렉스를 세분화해 볼 필요가 있다. 북한 및 종북세력을 대하는 시선과 공산주의 일반을 대하는 시선을 의식과 무의식의 층위로 나누는 것이 선행되어야 송두율을 둘러싼 문제들에 대하여 영화가 취하는 문제틀을 제대로 드러내고 비판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정성일은 이 영화는 오로지 남한에서만 보여질 것이며 단 한 걸음만 바깥에 나가도 이 다큐멘터리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1]라고 했지만 이는 성급한 판단이며 레드콤플렉스라는 문제를 다만 한반도의 남북 간 갈등의 문제만으로 인식한 탓이다. 한국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미국 역시 매카시즘의 내상을 입은 바 있으며 영어권에서 commie라는 단어가 여전히 비하의 의미로 쓰이고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이동연이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2]에서 그는 <두 개의 문>이 제작되는 과정에서 봉착할 수밖에 없었던 태생적 제약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날 것 그대로의 자료들을 재배치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하여 사건의 진실의 층위에 다가갈 수 있게 했다고 했다. 그는 결론 부분에서 남일당 건물의 두 개의 문을 넘어선 제3의 문을 열어야 한다고 했는데, 도식적으로 말해 허구의 문이 경찰측, 현실의 문이 피해자와 변호인측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가해자/피해자의 이분법을 넘어선 또 다른 층위의 진실이 있음을 지적한 것은 옳았지만 글의 제목이 "사라진 3000쪽의 기록, '3의 문'을 열어라"라는 것을 상기하면 결국 용산참사의 본질이 과잉진압이냐 아니냐의 프레임으로 되돌아간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박진 용산철거민사망사건진상조사단원이 밝혔듯이 과잉진압이라는 것이 과잉진압이라는 언어로 표현될 수 없다.”

  강정석은 벤야민의 비상사태와 아감벤의 호모사케르 개념을 언급함으로써 이동연의 글이 갖는 한계를 보완했다.

결국 용산 참사는 예외 상태가 폭력을 매개로 하여 가시적으로 드러난 사건이며, 따라서 그 상황에 철거민들과 경찰들은 서로 비식별역에 빠지며 부지불식간에 호모 사케르의 형상을 나타내게 되었다. 여기에는 가해자/피해자라는 프레임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사건 자체에 대한 국가적 폭력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3]

  헤게모니는 자발적 동의로 이루어진 지배이다. 동의가 깨진다는 것은 헤게모니의 붕괴를 의미한다. 그리고 남는 것은 폭력뿐이다. 부동산과 금융 등의 투기자본의 신화는 깨어지기 시작한 지 오래지만 이것을 근간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유지를 위해 폭력이 행사된다. 용산참사가 비상사태였을 수밖에 없는 까닭은 용산참사가 876공화국체제 이후 헤게모니의 붕괴를 보여준 최초의 사건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경찰특공대가 아무런 안전 조치도 없이 사지로 몰아넣어지게 된 비상식적인 공권력 작동의 배후에 어떤 정치적인 긴박함이 있던 것은 아닐까
  보수언론에서 쓰여진 원색적인 비난으로만 가득 한 리뷰들은 차치하고 <다이빙벨>, 이른바 진영논리에 함몰되지 않고 과감하게 비판한 글로는 대표적으로 성상민이 미디어스에 기고한 글이 있다. 눈먼 자들의 국가에서 박민규는 세월호를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4]이라고 정의했는데, 성상민은 사고사건을 혼동한다

"이렇게 제작진들이 스스로 다큐멘터리를 사상누각의 형국으로 몰아넣는 순간 영화의 모든 부분은 결국 제 틀을 갖추지 못하고 내부에서 와장창 무너진다…… 왜 찢어진 호스가 어떤 식으로 찢어졌는지 전문가에 소견을 듣거나 검사를 하지 않고, 쾌속정이 부딛친 것이 어떻게 부딛친 것인지 당시 바지선에 탑승하고 있던 다른 사람이나 해경 측의 해명은 담아내지 않는 것인가?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들이 하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인터뷰나 검사는 하지 않는다."[5]

  <다이빙벨>이 단지 사고의 측면에서, 이종인 씨의 다이빙벨이라면 조난자들 구출 작업이 수월했겠으나 뭔지 모를 이유로 정부 측에서 비협조적이었으며 적대적이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만 급급한 영화에 지나지 않는다면 성상민의 지적이 옳다. 하지만 <다이빙벨>사건의 측면에서 볼 때, 우리는 거대한 정치경제적 붕괴를 목도할 수 있을 것이다.
  선행연구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한계를 진단해보건대 텍스트들에 대한 분석수준이 사건사적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판단된다. 사건사적 분석층위는 구조사적분석층위에 반대되는 것으로 페르낭 브로델의 역사관과 시간 개념을 참고한다. 브로델에게 시간은 단일하고 선형적인 시간이 아니라 다수의 층위에서 중첩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초단기에서 초장기지속의 스펙트럼 안에서 역사학이 중시해야 하는 시간대는 그 중간에 해당하는 콩종크튀르(conjoncture)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이를테면 박민규가 세월호 참사를 사고가 아닌 사건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했는데, 여기서 말한 사건사적 수준이란 문제를 사고의 측면에 한하여 분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건사적수준에서 더욱 추상화된 것이 구조사적수준인데, 이것을 바로 사건의 측면에서 문제를 보는 것과 연결하기에는 위험이 따른다. 오히려 사건사적 편향이나 구조사적 편향을 경계하며 양극의 층위를 변증법적으로 통합하는 관점이 사건의 측면에 가까우며 바로 콩종크튀르의 층위가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른바 행위와 구조의 변증법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이러한 연구방법의 전회는 최근의 과학철학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있는데, 구조의 지속성과 규칙성에 변화를 가하는 우연성과 불확실성, 사건성에 함께 주목하는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선행연구들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발터 벤야민이 독일 비애극의 원천인식비판적 서론에서 사건과 구조의 변증법에 도달하기 위한 매개적 방법으로서, 사실 인식을 넘어선 진리에의 통찰을 강조한 것에 의거하여 텍스트들을 분석하고자 한다.



각주

[1] 정성일, “[전문가칼럼] 정성일의 영화순정 고백담 두 번째 이야기 2”, 2011.01.11. http://news.maxmovie.com/82886
[2] 이동연, “사라진 3000쪽의 기록, ‘3의 문을 열어라”, 2012.06.18.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39028
[3] 강정석, “실제사건을 다룬 영화의 현실 효과에 대한 단상”, 문화과학, (서울: 문화과학사, 2012), 71, 203.
[4] 박민규 외, 눈먼 자들의 국가, (파주: 문학동네, 2014), 56.
[5] 성상민, “주장이 근거 되는 순환 논증 빠진, 문제적 다큐 다이빙벨’”, 2014.10.17. http://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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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20일 금요일

사회 비판적 다큐멘터리와 사회 변동의 관계 : <경계도시2>, <두 개의 문>, <다이빙벨>을 중심으로 I.서론 1.연구 취지 및 연구 대상

학사졸업논문이다. 이게 벌써 삼년 전이다. 학사논문 치고 이만하면 꽤 잘 썼다고 생각한다. 깔깔. 앞으로 한 절씩 올리겠다.


사회 비판적 다큐멘터리와 사회 변동의 관계 : <경계도시2>, <두 개의 문>, <다이빙벨>을 중심으로

I. 서론
1. 연구 취지 및 연구 대상
2. 선행연구 검토
3. 서술방법
II. 본론
1. 텍스트와 콘텍스트의 상호작용의 복잡성
2. <경계도시2>와 레드콤플렉스
1) 내용의 시퀀스 분석
2) 표현의 스타일 분석
3) 내용과 표현의 관계 분석
4) 역사적 콘텍스트와 텍스트의 관계
5) 장르적 콘텍스트와 텍스트의 관계
6) 소결
3. <두 개의 문>과 신자유주의 경찰국가
1) 내용의 시퀀스 분석
2) 표현의 스타일 분석
3) 내용과 표현의 관계 분석
4) 역사적 콘텍스트와 텍스트의 관계
5) 장르적 콘텍스트와 텍스트의 관계
6) 소결
4. <다이빙벨>과 파국
1) 내용의 시퀀스 분석
2) 표현의 스타일 분석
3) 내용과 표현의 관계 분석
4) 역사적 콘텍스트와 텍스트의 관계
5) 장르적 콘텍스트와 텍스트의 관계
6) 소결
5. 종합평가
1) 텍스트와 체제
2) 텍스트의 소재
3) 텍스트의 스타일
4) 텍스트와 콘텍스트의 변증법적 성좌
III. 결론 성과와 한계
 


I. 서론
 
1. 연구 취지 및 연구 대상

  예술은 사회 변혁에 어느 정도 기여하는가? ‘사회에 변혁을 가져오는 예술이라는 기치는 이제는 낡은 상투어로서 그 효력이 다 한 것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강하지만 그 질문을 섣불리 무의미한 것으로 기각해서는 안 된다. 요즘과 같은 시기만큼 예술은 그 자체로 자족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생활//세계의 갱신과 변화를 위한 수단”(고봉준, 2017)이라는 주장이 특히 공명하는 때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의해야 할 것은 앞 인용문의 수단이라는 말을 사전적 의미의 수단, 즉 도구로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이 예술의 정치화를 말한 것은 예술을 정치에 이용한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말 그대로 예술이 곧 정치가 을 가리킨다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국가적으로, 지구적으로 사회가 급격히 요동치는 시기에 우리는 퇴보 혹은 진보의 양 갈래로 갈라지는 분기점에 놓여 있다. 퇴보의 가능성을 진보의 가능성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진보적 문화정치로서 예술의 힘에 대한 고찰을 재개해야 한다. 소위 진보적 예술 활동이란 회화, 음악, 연극, 영화 등 형태와 장르를 불문하지만 본고는 다큐멘터리 영화에 한정해서 논의를 전개할 것이다. 다큐멘터리 영화야말로 지성과 감성의 변증법을 시청각화한 예술 형태로서 사회 변혁을 위한 진보적 문화정치에 더욱 적합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그 이유는 연구방법에서 후술될 것이다.

  과거에도 사회적 변동의 시기가 있었고 급변의 시기에 예술의 역할을 고민한 사람들이 있었다. 386 세대를 예로 들자면 그들이 대학생이던 시절, 한국의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비판적 운동을 펼치면서 당시 명실상부한 가장 진보적인 세대로 성장했다. 하지만 기성세대로 진입하고 그 중 상당수가 뉴라이트로 정치세력화하거나 한국 경제의 본격적 신자유주의화를 이끌게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본 논문은, 당시에도 여러 가지 진보적인 비판적 다큐멘터리들이 다수 제작되었음에도 그러한 현상이 빚어지게 된 이유에는 주체양식의 변화, 랑시에르 식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성과 감성의 재분배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탓이 크다는 전제를 출발점으로 삼을 것이다.

  맑스는 역사는 한번은 비극으로, 다음엔 소극으로 반복된다는 말을 했다. 1848년 프랑스 혁명 직후 루이 보나파르트가 집권하게 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맑스는 당시 프랑스의 소농민들이 보나파르트에게 지지를 보낸 까닭을 계급 조직화의 결여로 진단했다. 문제는 그 조건으로서 이해관계의 공명과 연대인데 일찌감치 지배계급에의 동일시로 고착된 인민 대중의 인식과 감성의 구조에 변혁이 가해지지 않는다면 계급 연대는 요원한 일이다. 세계의 변혁과 변혁하는 주체로서 인간은 불가분하며 맑스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포이어바흐 테제 3번에서 이미 드러낸 바 있다.(심광현, 2014)환경의 변화와 교육에 관한 유물론적 교의는 환경이 인간들에 의해 변화되며 교육자 자신도 교육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있다환경의 변화와 인간활동의 변화 혹은 자기 변화와의 일치는 오직 혁명적 실천으로서만 파악될 수 있고 합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Marx & Engels, 1932/2009) 이러한 환경과 자기의 동시적인 변화를 생산양식과 주체양식의 변증법이라 일컫는다면 다음과 같은 도식화가 가능하다.(심광현, 2011)


 
고착화된 생산양식
변화된 생산양식
고착화된 주체양식
(1)적응
(3)퇴화
변화된 주체양식
(2)순응
(4)진화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어느 시기건 최소 3세대를 포함하며 각 세대에 조응하는 특징적인 문화, 삶의 방식들이 공존한다고 했는데 이것을 감정구조라 정의했다. 윌리엄스의 세 가지 감정구조를 잔여적인/지배적인/도래하는 것으로 요약하여 표에 연결해보면 잔여적인 것은 (3)에 해당하고 지배적인 것은 환경의 요동 여부에 따라 (1)이 될 수도 있고 (3)이 될 수도 있다. 도래하는 것은 (2) 혹은 (4)가 될 것이다. 즉 새로이 도래하는 감정구조가 반드시 지배적인 것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는 까닭에, 요동하는 환경 속에서 변화된 생산양식과 상응관계를 맺지 못하는 잔여적인/지배적인 감정구조가 다시금 체계에 퇴화를 가져오는 상황도 가능한 것이다. 맑스는 자본의 서문에서 또다시 이러한 현상을 경고했다. “현대의 고난과 아울러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수많은 고난이 우리를 억누르고 있다. 우리는 살아있는 것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죽은 것에 의해서도 고통을 받고 있다. 죽은 것이 살아있는 사람을 괴롭히고 있다!”(Marx, 1867/2010) 작금의 한국사회가 이를 정확히 예증한다. 우리는 여전히 성장 신화, 산업화박정희 신화의 괴롭힘을 받고 있지 않은가?

  새로운 주체양식의 헤게모니 쟁투에 있어서 중요한 개념으로 문제틀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알튀세르가 맑스의 철학을 하나의 과학으로 정립하고자 한 시도에서 그의 인식론적 단절을 논하면서 고안한 개념으로 문제틀problematic은 간단히 말하면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게 하는 사고의 프레임이라 할 수 있다. 알튀세르가 말한 과학의 존재 조건으로서 문제틀은 다음의 문장으로 설명 가능하다. “과학은 한정된 이론적 구조 내에 그 지형에 근거해서, 그리고 절대적·한정적 조건을 가능하게 하는 문제틀(인용자 수정)에 근거해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뿐”(Althusser, 1967/1991)이다. Problematic의 다른 번역어로서 문제의식과 문제설정이 있지만 사유의 전제가 되는 프레임으로서 의미를 살리고자 문제틀이라는 번역어를 취하기로 한다.

  진보의 발목을 붙잡는 신화를 해체하고 새로운 주체양식을 도래시키는 데 필요한 영화예술의 과제를 논하기에 앞서, 과거에 제작된 진보적 비판적 다큐멘터리들의 성과와 한계를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논의의 엄밀함과 풍부함을 위해 최대한 많은 수의 다큐멘터리들을 살펴보는 것이 맞겠지만 시간과 역량이 허락하지 않는 탓에 시기적으로는 2000년대 이후의 것에 한정하고, 정치적 현안들을 직간접적으로 다룬 것에 한정해서 세 편의 다큐멘터리, <경계도시2><두 개의 문> 그리고 <다이빙벨>을 차례로 다루고자 한다. 비교적 현재와 가까운 시기에 제작된 작품을 분석한다면 어떤 문제들이 해소되고, 해소되지 않은 채 잔존지속되며 추가되었는지에 대하여 현재적인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서술방법에서 자세히 후술하겠지만 <경계도시2><두 개의 문><다이빙벨>이 연구 대상으로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까닭은 한국의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와 정치적 상부구조가 차례로 무너지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본 논문의 목적은 세 편의 비판적 다큐멘터리가 정치경제 구조의 변동과의 관계 안에서 단순한 사실관계들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어떻게 문제의 해결을 위한 진실의 층위에 다가가는지를 고찰하고, 실제 사건을 제시하는 문제틀이 관객으로 하여금 이데올로기를 볼 수 있게 만드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알튀세르가 말하듯 예술의 특수성이란 현실을 암시하고 있는 어떤 것을 우리로 하여금 보게 하는 것’, ‘느끼게 하는 것’, ‘지각하게 하는 것’”(Althusser, 1968/1995)이기 때문이다. 그로써 그 성과와 한계를 명료히 하여 공을 계승하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향후의 비판적 다큐멘터리의 과제를 밝히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변혁을 가져오는 예술 형태로서 영화예술의 효용, 그리고 그 잠재력을 현실화하는 데 필요한 비평의 중요성이 규명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참고문헌
고봉준, “미학주의를 위한 변명”, 21세기문학, (서울: 21세기문학, 2017) 통권76.
심광현, 맑스와 마음의 정치학, (서울: 문화과학사, 2014), 59.
박재희 옮김(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I, (파주: 청년사, 2009), 190.
심광현, 1강 세계체계의 축적 순환과 사유의 반복과 차이”, 영상이론과 예술사 <영상이론의 철학적 계보학> 강의록, 2011, 1쪽을 참고함.
김수행 옮김(칼 마르크스), 자본론I(), (서울: 비봉출판사, 2010), 5.
김진엽 옮김(루이 알튀세르), 자본론을 읽는다, (서울: 두레, 1991), 29.
이진수 옮김(루이 알튀세르), 레닌과 철학, (서울: 백의, 1995), 226.

자기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하느니 차라리 나라가 망하기를 더 원하는 사람들 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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