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29일 일요일

지난번 지구적 위기는 세계를 바꾸지 못했지만 이번 위기는 가능할지도

이른바 탈구의 계기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까지 갖고 있었던 사고 체계, 문제틀로는 현재 맞닥뜨린 문제를 제대로 사고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탈구라고 한다고 한다.
내가 3년 전부터 말하고 다니던 게 있는데 한국사회가 최하점을 찍고 반등하고 있다면 서구사회는 정점을 찍고 내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탄핵과 민주당 집권에 감개무량해서 오바한 감도 없지 않지만 지금 서구를 보고 멀쩡하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미국과 서유럽 중심부 국가들 모두 싸잡아도 별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아무리 저 밑에 있더라도 천천히 새로운 합의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비해 기존의 합의들이 하나둘씩 깨지는 과정에 훨씬 더한 혼란이 불가피하게 따른다고 생각한다.
하나둘씩 깨지는 기존의 합의들 중 하나는 자유주의이다. 코로나바이러스의 한국 모델은 서구 국가들이 따라 하기 아주 어려울 것이다. 국가가 공무원들을 대대적으로 동원할 헤게모니가 없고 노동력 갈아 넣기 문화는 말할 것도 없고 확진자 동선을 낱낱이 밝히는 데 대해 상당한 저항이 예상된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들 죽어 가는데 사생활이니 인권이니 따위가 중요하냐는 반응들이 하나둘씩 나오리라는 것도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제조업의 해외 아웃소싱에 대한 문제제기도 인민들 사이에서 안 나올 수가 없겠고 국가의 권한이 더 커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인권이 밥 먹여줍니까? 야만으로만 치부하고 넘길 발언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The last global crisis didn't change the world. But this one could. by William Davies. <The Guardian> 2020.3.24 번역

위기crisis는 결정, 판단을 뜻하는 희랍어 ‘krisis’에서 나왔다. 여기서 비평가critic(판단하는 사람), 치명적critical이라는 말도 나온 것이다. 위기는 좋게 혹은 나쁘게 종결될 수 있지만 핵심은 그 결과가 근본적으로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위기를 겪는다는 것은 그 어떤 가능세계로든 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우리가 처한 위기의 심각성은 그 종결 시기와 방법의 극단적인 불확실성으로 가늠된다. 임페리얼 칼리지의 연구자들(그들의 보고서는 영국 정부의 비교적 느긋한 대응을 뒤늦게나마 변화시켰다)에 따르면 강제된 사회적 거리두기를 거둬들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마 내년 여름까지는 기다려야 할 백신개발이다. 그 긴 공백 기간 동안 발생할 만한 문제들을 최소화할 정책을 상상하기는 어려운 일이며 실행하기는 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제 우리가 거대한 지구적 불황, 노동시장 붕괴와 소비의 증발을 맞이할 것은 불가피하다. 2008년 가을에 정부를 움직인 것은 은행 체계를 정부가 지원하지 않는 이상 ATM에서 현금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공포였다. 이제 밝혀진 것은 사람들이 집에서 나오기를 멈추면 돈의 순환도 멈춘다는 것이다. 영세 사업체들은 직원들을 무서운 속도로 해고하고 있는데 반면 미국 아마존은 10만 명의 추가적인 채용 공고를 올렸다.(붕괴되는 세계의 몇 안 되는 지속물은 거대 플랫폼의 끈질긴 성장이며 결코 좋은 현상이라 할 수 없다.)
 
위기를 사고하는 현재 우리의 상상력을 구조 잡은 시대는 70년대이며, 역사적 균열이 어떻게 경제와 사회를 새로운 길로 추동하는지를 잘 드러낸다. 이 시기는 고정 환율, 자본 통제와 임금 정책 등을 위시한 전후post war 체계의 붕괴로 특징지어진다. 당시 전후 체계는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야기한 것으로 여겨졌다. 위기는 레이건과 대처의 신우익의 부상을 위한 제 조건을 만들어냈으며 신우익들은 세금 감면, 이율 대폭 인상, 노동조합 분쇄라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1970년대의 위기는 이데올로기의 광범한 전환을 야기하였고 이러한 전환은 좌파들에게도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몰고 왔다. 이때 위기는 자본주의의 케인즈주의 모델에 내재적인 모순(생산성 향상보다 빠른 임금상승, 이윤율 하락)으로 인한 것이었고 주도적인 사업 스타일의 철저한 개편이 요구되었다. 경직된 중공업 대신 그때그때의 소비자 요구에 기민하게 맞출 수 있는 유연한 생산체제에 투자하는 것이다.
 
1970년대 위기는 공간적인 측면도 중요하다. 자본은 북부 잉글랜드와 중서부 미국의 산업 본거지를 버리고 (국가의 도움을 받아)런던과 뉴욕과 같은 글로벌 도시의 금융 사업 지구로 옮겼다.
 
대처 집권 이후 4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좌파들은 다시 한 번 이데올로기적 전환이 역으로 발생하기를 바라며 1970년대의 그것과 같은 또 다른 전환적 계기를 초조하게 기다려왔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상당한 격변과 고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08년의 지구적 금융위기는 정책 기조의 근본적 전환을 유발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정부의 은행 구제 이후 대처주의적 자유시장주의 세계관은 영국과 유로존에서 더 지배적이 되었다. 2016년의 정치적 변동은 현상태를 겨냥했지만 일관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두 위기는 모두 현재 우한에서 시작된 위기에 비하면 그 전조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일찌감치 2020년의 위기와 그 여파가 1970년대의 그것과 다를 것임을 알 수 있다. 첫째로, 전염 경로가 지구적 자본주의(출장, 여행, 무역)의 경로를 따르고 있지만 전염의 근본 원인은 경제 외적이다. 전염병으로 인한 재앙은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의문에 붙이지 않는 지구적 자본주의의 아주 기본적인 속성에 기인한다. 바로 노동 시장에의 의존과 높은 수준의 국제적 접속성이다. 이 속성들은 고정 환율과 단체교섭이 케인즈주의의 핵심인 것과 같이 어떤 특정한 경제 체제 패러다임의 속성인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의 속성인 것이다.
 
둘째로, 이번 위기에서 공간의 문제는 자본주의의 일반적 위기의 그것과 다른 양상을 갖는다. 슈퍼리치들이 대피하는 벙커나 섬은 차치하고 이번 판데믹은 경제지리학을 막론하고 무차별적이다. 판데믹을 계기로 지식-기반 노동이 온라인으로 이뤄질 수 있음이 명백해지면서 도시 중심부의 가치가 절하되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상이한 시기, 상이한 장소로부터 퍼져왔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주간 가장 문제적이었던 것은 인간 행동의 보편성, 우려와 공포였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보급은 전례 없는 글로벌 대중을 만들어냈다. 9.11와 같은 사태는 전세계의 노키아 휴대폰이 진동하며 당장 TV를 켜라는 지시를 함으로써 글로벌 대중의 출현을 암시했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는 나와 무관한 다른 장소에서 일어나는 스펙터클이 아니다. 사태는 당신의 창밖에서 지금 당장 일어나고 있으며 그러한 점에서, 모든 순간 경험들이 캡쳐되고 공유되는 유비쿼터스 소셜 미디어의 시대와 완벽히 들어맞는다.
 
이러한 공통된 경험의 강렬함은 현재 위기를 불황보다 전쟁에 가까운 것으로 느끼게 만드는 음산한 이유 중 하나이다. 종국에 가서는 정부의 정책입안자들은 몇 명이 죽었는지에 따라서 평가될 것이다. 그 심판이 가능하기 전까지, 의료 시스템에 과부하가 오고, 살 수 있었던 사람들이 죽어감에 따라 근대 문명의 표면 아래에 도사리고 있던 공포가 짧게나마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즉각적인, 몸으로 느껴지는 필멸의 위협은 이 시기를 2008년이나 1970년대보다 차라리 우리가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상징적인 위기의 시기와 비슷하다고 느끼게 만든다. 바로 1945년이다. 생사가 걸린 문제들은 극단적인 정책적 전환을 야기하며 이것은 어떤 경제적 지표도 해낼 수 없는 것이다. 리시 수낙(영국 재무장관)이 깜짝 발표한 대로 사업체들이 노동자들을 계속 고용한 채로 둔다면 정부에서 임금의 80%까지 지원하겠다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생각조차 할 수 없던 조치들이 갑자기 가능해지게 되는 것이며 이 가능성의 사고틀은 결코 쉽게 이전의 상태로 돌이킬 수 없다.
 
이를 자본주의의 위기로 사고하기보다는, 새로운 경제적, 지적 활동이 가능한 전혀 다른 세계를 도래케 하는 사건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1755, 리스본은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75,000명이 사망하는 재앙을 겪었다. 경제는 파괴되었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재건하여 자체적으로 생산자를 양성할 수 있었다. 대 영국 수출에의 의존을 낮춘 덕에 리스본의 경제는 회복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진은 또한 지대한 철학적 영향력을, 특히 볼테르와 칸트에게 발휘했다. 특히 칸트는 초창기 국제 뉴스 미디어를 통해 유포되던 지진 관련한 정보들을 강박적으로 수집하여 어떤 일이 발생하였는지에 관한 기초 수준의 지진학적 이론을 생산해냈다. 프랑스 혁명의 전조가 된 리스본 지진은 모든 인류에 영향력을 행사한 사건으로 간주되었다. 그 어마어마한 파괴력은 신학을 근본부터 흔들었고 과학적 사고의 권위를 격상시켰다. 칸트가 그의 후기 저작에서 결론 내리듯 신이 인류에게 어떤 계획을 갖고 있었다면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세속적 이성의 실천을 토대로 세계시민사회를 경유하여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자율성을 갖게끔 만들려 한 것이다.
 
2020년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는 몇 년, 수십 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진정으로 지구적인 위기로서, 현재 위기는 또한 지구적인 전환점이라는 것이다. 근미래는 심신의 고통과 재정적 고통으로 점철될 것이다. 위기가 이 정도 규모로까지 심각해진 이상 우리의 사회적, 경제적 삶이 근본적으로 재구성되지 않으면 문제는 결코 완벽히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2020년 3월 25일 수요일

엘리자베스 워런이 삽질한 몇 개 이유

트위터에서였나 언젠가 봤던 얘기에 크게 공감했다. 정치인들에게는 어떤 어마어마한 악명이나 사생활 문제, 범죄기록이 따라붙는 것보다 훨씬 치명적인 것이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라고. 다른 건 다 극복할 수 있고 운이 따르면 정치적 재기도 가능하겠지만 조롱감이 되면 재기불능이라고.

엘리자베스 워런은 치명적인 실수로 평생 조롱거리가 따라붙게 되었다. 그는 지속적으로 자신이 네이티브 아메리칸 혈통이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DNA테스트 결과 전면 부정당한 것이다. 완전히 전면 부정은 아니고 1/64에서 1/1,024 정도의 네이티브 아메리칸 피가 있다고는 한다. 그냥 일반 백인 수준이다. 트럼프는 워런에게 Faux-cahontas라는 별명을 붙여줬고 이 별명은 평생 떼낼 수 없을 것이다.

이 사건을 위시하여 워런에게는 일종의 구라쟁이라는 이미지가 씌워졌다. 유세 기간에는 본인이 교직에 있던 시절 임신을 이유로 해고를 당했다고 이야기했는데 2007년 인터뷰가 발굴되어 교직이 자신과 맞지 않아 스스로 관뒀다고 말한 바 있음이 밝혀졌다. 워런은 지금도 임신 때문에 해고된 게 맞다고 주장하지만 믿는 사람은 별로 없어보인다.

워런이 바이든, 샌더스와 함께 빅3 후보로 거듭나는가 싶더니 다시 하락세에 접어들자 두어 달 전 워런은 갑자기 충격적인 폭로를 했다. 샌더스가 지난해에 자신에게 여자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바로 며칠 뒤 CNN에서 진행한 토론회에서 샌더스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결코 그런 일 없다. 오히려 나는 2015년에 먼저 워런에게 가서 당시 대선에 출마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제안했었다. 생각이 없다고 해서 내가 출마한 거다."

샌더스의 발언에 이어 CNN 진행자는 샌더스에게 다시 질문했다. "샌더스 의원,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겠다. 그러니까 당신이 워런 의원에게 여자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샌더스는 그렇다고 대답, 진행자는 다시 워런에게 질문을 던졌다. "워런 의원, 샌더스가 당신에게 여자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는 말을 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워런의 대답 "동의하지 않았다"


토론회가 끝나면서 워런은 샌더스의 악수를 거절했다.


워런은 90년대까지 공화당원이었다. 그러다 2010년대 들어 상원의원이 되고 선명한 반-월가 스탠스를 취하면서 소위 샌더스의 친구로서 대표적인 당내 좌파로 이름값을 올렸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2016년 대선을 위한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부정선거를 저질렀다는 정황이 나오던 와중에 샌더스 대신 클린턴을 공개지지했다. 이때부터 좌파성향 유권자들의 지지에 상한선이 생겼다. 당시 민주당 전당대회 부의장이었던 털시 가버드가 부의장직을 때려치고 즉석에서 샌더스 지지선언을 해서 삽시간에 스타가 된 것과 크게 대비된다.


대형 언론사들, 엘리트 미디어(위의 CNN의 말도 안 되는 진행에서 확인되듯이)의 소위 '정치 전문가' 비평가들은 워런을 이용하여 샌더스를 떨구고자 온갖 공작을 벌였다. 이들은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데 워런 대신 샌더스를 지지하는 것은 여성혐오 외에는 이유가 없다는 발언을 공공연히 하고 다녔고 워런은 이를 전혀 제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막판에는 위의 무리수를 두면서 본인 선거캠프 관짝에 못을 박았다. 그리고 경선후보를 사퇴하고 한 달이 가까워지도록 바이든이나 샌더스 어느 한 쪽에도 지지선언을 하지 않고 있다.






사회 비판적 다큐멘터리와 사회 변동의 관계 : <경계도시2>, <두 개의 문>, <다이빙벨>을 중심으로 II. 본론 2. <경계도시2>와 레드콤플렉스

각주 정리하기 귀찮다

II. 본론

2. <경계도시2>와 레드콤플렉스


  개별 텍스트 분석의 서술 순서는 내용면 형식(시퀀스) 분석, 표현면 분석, 내용면과 표현면 종합, 콘텍스트와 텍스트의 관계 분석, 소결 순이 될 것이다. 내용면 소재와 내용면 기능 분석을 생략한 이유는 전자는 시퀀스 분석에서 충분히 정보를 얻을 수 있고, 후자(이데올로기 비판)는 콘텍스트 분석과 종합평가에서 기술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앞으로 있을 모든 텍스트 분석에서 동일하다.

 시퀀스로 영화를 나눠서 보면 영화를 추동하는 중심 플롯을 하위 플롯과 구별하여 볼 수 있다. <경계도시2>의 경우 송두율 사건에 대하여 송두율과 그의 측근들이 대응해 가는 과정을 중심으로 플롯이 전개된다. 내용면을 분석하면서 <경계도시2>가 비판하고자 한 지점을 알 수 있지만, 그것이 어떻게 표현되었는가를 함께 비교분석한 결과, 영화의 내용과 그것이 표현된 효과 사이에 간극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 내용의 시퀀스 분석

시퀀스
문제 발견
부분적 해결
남은 문제
1
00:00:00
~ 00:07:41
송두율이 37년 만에 입국을 준비한다. 독일에서 출국하기 전 국정원이 송두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는 소식을 듣는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대책위원 박호성 교수와 김형태 변호사가 파견되어 송두율이 귀국하는 동시에 연행되지 않게 한다.
송두율에게 지워진 혐의들.
2
00:07:41 ~ 00:12:45
순조롭게 진행되기를 바라지만 불안감을 토로한다. 공항에는 송두율의 귀국을 환영하는 사람들과 보수단체에서 온 적대적인 사람들이 함께 있다.
국정원에 자진 출석한다는 조건 하에 집행을 유보하겠다는 약속을 받는다. 전반적인 여론 분위기는 긍정적.
언론의 태도가 언제 바뀔지는 알 수 없다.
3
00:12:45
~
00:26:54
국정원 조사에 들어간 송두율. 변호인 입회가 거부되고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진다.
국정원 조사가 마무리된다. 송두율이 북으로부터 김철수라 불렸다는 사실을 인지는 했으나 크게 게의치는 않았고 북에서 수정을 하지 않아 항의를 했다는 사실이 남아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김형태는 취재진에게 송두율이 김철수냐 아니냐가 아니라 당원으로써 활동을 했느냐가 중요하다고 역설함으로써 프레임 전환을 시도하지만 국민 정서 상 쉽지 않은 일. 홍형숙 감독은 1편을 촬영할 때와는 다른 증언에 혼란스러워한다.
4
00:26:54
~
00:36:25
 
송두율과 김철수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언론과 여론이 적대적으로 바뀌기 시작함으로써 송두율 사건은 두 번째 시기에 접어들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참석한, 귀국 후 예정되어 있던 학술회의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
주요 언론들은 더 이상 관찰자가 아닌 게임플레이어로 나서 여론몰이를 주도한다. 진보언론과 학자들도 흔들리기 시작, 감독 역시 혼란스러워 하며 함정에 빠졌음을 고백한다.
5
00:36:25
~
00:45:02
기자회견을 열기로 하고 어떤 내용의 발언을 할지 대책위원들과 논의한다. 경계인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으나 치우친 점이 있었음을 분명히 사과하기로 한다.
기자회견 내용이 모두 합의되고, 1차 기자회견을 열어 대국민 사과를 함으로써 국면 전환을 꾀한다.
이미 굳어진 여론재판을 뒤집기엔 역부족이고 경계인이라는 개념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제 문제는 송두율 개인이 아닌 대한민국 전체로 확장된다.
6
00:45:02
~
00:54:01
한나라당과 보수단체의 색깔론 공세가 가속화되고 진보언론과 학자들도 송두율을 민주인사에서 역사적 희생양으로, 관용과 포용의 대상으로 호소하기 시작한다. 송두율이 유죄라는 전제이며 그 출발점은 국가보안법.
검찰의 브리핑: 노동당 가입에 대해 사죄하고 경계인이란 모호한 수사를 빼고 대한민국의 법질서를 준수하겠다는 천명을 문서화 한다면 관용을 베풀 수 있다.
김형태 변호사: 그렇게 할 의사가 있다. 의논을 할 것.
사실상 전향을 선언해야 하는 상황이며 송두율의 생각은 아직 알 수 없다.
7
00:54:01
~
01:17:52
보수단체의 총공세를 받고 있으며 진보 시민단체와 민변에서도 도움을 꺼리는 상황. 국적 포기, 헌법 준수, 처벌 감수를 밝히는 것만이 출구이며 송두율과 정정희는 이것을 전향과 다름없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진정한 경계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통과의례를 기꺼이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야 한다고 비대위원들이 설득한다.
기자회견을 감행하기로 결정한다. 노동당 탈당, 대한민국 헌법 준수, 독일 국적 포기 등을 천명한다.
국가보안법 앞에 무릎 꿇으며 사실상의 전향. 레드콤플렉스의 유령에 의해 경계인은 종말을 고하게 된다. 송두율의 구속, 추방을 요구하는 여론 역시 여전히 만만치 않다.
8
01:17:52
~
01:24:32
송두율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되고, 송두율은 서초경찰서에 인치된다. 보수여론/한국사회는 거리낌 없이 송두율의 확실한 전향을 요구한다.
1022일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송두율은 한국에 온 것을 후회한다고 밝힌다. 김형태 변호사는 자진출석으로 수사가 거의 끝난 마당에 구속하는 건 맞지 않다고 역설한다.
송두율이 구속되자 언론들은 조용해지기 시작한다. 송두율 사건은 점차 잊혀진다.
9
01:24:32
~
01:33:03
일부 시민단체에서도 송두율을 간첩으로 간주하기에 이른 상황. 대책위를 확대 개편해 송두율 석방 및 국가보안법 철폐 운동을 벌이기로 한다.
해외 지식인들과 앰네스티가 대열에 합류하고 대책위는 서울법원 앞에서 집회를 벌인다. 공판이 8개월 간 진행되면서 사람들은 송두율을 잊어간다.
사상, 표현의 자유는 허상일 뿐임이 드러난다. 검찰은 송두율에게 15년 형을 구형하고 법원은 7년을 선고한다. 그리고 4개월 뒤 항소심 선고가 내려진다.
10
01:33:03
~
01:36:23
04.07.21 항소심 선고 공판
석방이 예상된다.
송두율이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국가보안법을 전제로 하는 한 가장 상식적인 판결이 내려진다. 송두율에게 지워진 대부분의 혐의에 무죄 판결.
국가보안법 개폐와 언론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11
01:36:23
~
01:40:35
제주도를 방문하는 송두율 부부.
제주도를 방문한 뒤 독일로 출국. 이후 북한 방문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 받는다.
송두율의 출국 이후 5년이 지나도록 그 사건을 거론하는 사람이 없었다. 경계인은 없고, 그의 죄가 무엇이었는지 여전히 알 수 없다.

  시퀀스 분석 결과에 따르면 <경계도시2>의 내러티브는 송두율과 그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런데 시퀀스4에서 송두율에 씌워진 혐의가 사실임이 드러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영화 역시 사건을 대하는 접근 방향을 달리한다. 상업 극영화의 문법상 클라이막스가 으레 위치하는 시퀀스7에서 송두율 측근 인사들이 그에게 전향 선언을 요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경계도시2>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감독이 반국보법 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있어서도 암약하고 있다고 지적한 레드콤플렉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그러나 표에서 보다시피 뒤따르는 시퀀스는 모두 송두율의 재판과 그에 대한 언론 보도, 여론의 무관심에 천착해 있으며 레드콤플렉스에 관련한 문제의식은 이어지지 않는다.

시퀀스
내용
표현
효과
1
송두율 교수와 그의 가족은 30여 년 만의 입국을 준비한다. 그러나 송두율은 북한의 거물 간첩이라는 혐의를 받고 있어 입국 금지 조치가 내려진 상태이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그의 귀국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체포 영장이 발부된다. 대책위는 그의 귀국 즉시 연행을 방지하기 위해 박호성 교수와 김형태 변호사를 베를린에 파견한다.
익스트림롱쇼트로 서울 전경을 보여주는 장면과 송두율이 독일로 돌아간 후 5년 뒤, 당시를 회고하는 내레이션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송두율의 귀국이 추진되기 직전까지 그를 둘러싼 상황들을 설명하는 씬#2에서는 흑백화면으로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과 광장 등 여러 관광지와 문화제들을 보여준다.
카메라와 송두율의 거리는 근접해 있으며 평균적인 눈높이에 있다.
감독은 송두율 사건을 누구보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접하고 시간이 흐른 뒤 당시를 회상하는 개인적인 감정을 토로하지만 동시에 상공에서 촬영한 서울을 보여줌으로써 그가 가졌던 심적 고통이 결코 개인적인 것일 수 없음을 알린다.
촬영 대상과 촬영자의 가까운 거리는 다큐멘터리 재현 양식들 중 참여적 양식의 주 특징이며 송두율과 카메라 너머의 관객들과의 마주침을 매개한다.
2
송두율이 도착한 인천공항에는 그를 환영하는 시민단체 인파와 그에게 적대감을 표하는 보수단체 인파가 섞여 있다. 국정원은 그에게 빠른 시일 안에 자진출두한다는 약속을 받고 연행을 유보한다.
게이트를 나온 뒤 많은 인파와 취재진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부터 카메라와 송두율 간의 거리가 비교적 떨어져 있어 마치 취재진의 보도 카메라들과 섞여 있는 듯하다.
같은 장소와 대상, 같은 사건을 촬영했더라도 주요 언론사들의 보도와 다큐멘터리에서 재현되는 것이 다를 수 있음을 암시하며 둘의 비교를 관객에게 요구한다.
3
송두율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국정원 1차조사에 출두하지만 변호인 입회나 참관이 불허되면서 시작부터 어긋나게 되고, 조사 과정에서 자신이 노동당원 김철수로 불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인정한다. 김형태는 집요한 취재진 앞에서 노동당원으로서 정치적 활동을 했는지의 여부가 중요한 것이라고 프레임을 바꾸려 시도하지만 쉽지 않다.
국정원 건물에서 나와 차에탑승하는 장면이 나오는 동안, 송두율이 국정원에서 진술한 내용과 그에 대한 감독 본인의 생각을 밝히는 내레이션이 나오면서 느린화면이 된다.
취재진들보다도 다소 멀찍이서 송두율을 촬영함으로써 언론사들보다 객관적이고 진실에 더 닿아 있는 위치를 자임하려 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동시에 흔들리는 핸드헬드 카메라는 감독이 밝히는 당혹감에 조응한다.
4
송두율이 국정원에 진술한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고 한국사회는 그에 대해 적대적으로 돌변함에 따라 송두율 사건은 두 번째 국면을 맞게 된다. 당혹스러워 하던 당시의 스스로를 돌이켜보며 레드콤플렉스를 고백하는 감독.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 송두율의 고민을 화면에 담기 위해, 자동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얼굴을 느린화면으로 보여준다. 또한 호텔 방에 혼자 남아 고뇌하는 송두율을 담기 위해 선택한 연출은 다소 떨어진 위치에서 그의 얼굴에 줌인하는 것이다.
감독이 언론보도행태를 재현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신문기사를 CG화하는 것과 지상파 뉴스보도 화면을 모니터 스크린으로 보여주는 것, 그리고 언론사옥에 붙어 있는 전광판을 촬영하는 것이다.
송두율 사건에 있어 언론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광판 뉴스와 방송 뉴스와 더불어 신문기사를 역동적으로 그래픽화 하여 보여준 것은 언론이 단지 관찰하여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능동적으로 사건의 향방을 이끌어간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다.
촬영 대상으로 하여금 카메라가 없는 듯이 혹은 인지하지 못한 채 행동하게 하는 것은 관찰자적 양식으로, 감독은 송두율과 늘 가까운 곳에 있지만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고 다만 사태의 추이를 관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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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전환을 시도하기 위해 대국민 기자회견을 준비한다. 기자회견의 내용에 대해 변호사 및 대책위원들과 논의하면서 경계인으로서 치우친 점이 있었음에 대한 사과를 명시하기로 한다.
호텔 방에서 송두율과 대책위원들이 토론할 때 카메라는 마치 토론자 중 일원인 듯 원탁에 가까이 있으며 눈높이 레벨에서 인물들의 바스트쇼트를 보여준다. 반면 기자회견 현장에서 카메라는 취재진의 위치에 있다.
논의에 참가하는 대책위원들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고 관객들로 하여금 강한 현장감을 갖게 해 간접적으로 참여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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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으로는 이미 굳어진 여론을 뒤집기에 역부족이다. 진보언론 및 학자들 역시 다수가 송두율을,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범죄자라는 프레임에 단단히 붙들려 사면초가에 빠진 상황. 검찰 3차 출두 직후 김형태는 노동당 가입에 대한 대국민 사죄 및 대한민국 법질서 준수 서약을 문서화하기를 고려하기로 한다.
전국교수협의회 등에서 주최한 송두율사건비상대책위원회를 보여주는 카메라는 이전까지와는 달리 삼각대에 고정된 위치에서 아주 천천히 비대위원들을 훑어 보여준다.
김형태 변호사와 기자들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이례적으로 기자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난감하고 힘이 많이 빠진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더 이상 변호사로서도 능동적으로 사태를 이끌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으며 오히려 기자들의 제안이 변호사의 말보다 더 힘을 발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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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으로부터도 외면당하고 극우인사에게 조롱 받는 상황. 민주진보진영으로서는 총선을 앞둔 만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전략을 짜야 하며 송두율의 헌법 준수, 처벌 감수, 국적 포기 천명을 설득해야 한다. 정정희는 이를 전향 선언을 압박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송두율과 대책위원들이 회의하는 장면이 세 장면 있는데 차례대로 카메라와 회의테이블 간의 거리가 조금씩 멀어진다.
#35부터 카메라는 방 뒷쪽에 붙어 고정된 각도에서 회의자들의 풀쇼트를 보여준다.
사실상의 전향이라는 내레이션이 나오면서 송두율의 근접화면과 보수단체의 시위 장면 느린화면이 번갈아 나온다.
이 장면에서는 극단적으로 관찰적 재현 양식을 띠게 된다. 화면 중앙에 송두율이 위치해 있어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그의 고민하는 모습에 주목할 수 있다.
기자회견 후의 장면 편집은 사실상 전향 선언이 누구에게도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야기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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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된다. 한국 사회는 그에게 더욱 노골적으로 확실한 전향을 요구한다. 송두율은 결국 귀국 한달 만에 구속된다. 그리고 언론과 여론은 그에게 관심을 잃는다.
이것이 소위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의 모습이었다라는 내레이션이 나올 때 서울 야경의 익스트림롱쇼트가 한번 더 나온다.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송두율이 끌려 나오는 장면에서는 카메라가 그를 둘러싼 기자들의 뒷편에 있으며 느린화면이다.
결코 낙관할 수 없는 한국 의 민주주의를 표상한다.
송두율이 탄 차 주변을 에워싼 기자들의 모습과 망각의 시간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라는 내레이션이 크게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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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의 구속은 민주진보진영 인사들이 현실 정치에 얽매이지 않은 채 반성할 수 있게 되고 대책위를 확대 개편하여 반국가보안법 운동을 벌인다.
국가보안법철폐걷기대회를 하는 장면에서 그리고 송두율 사건을 규탄하는 독일 지식인들이 소개될 때 까지 배경음악이 잠시 장조로 바뀌지만 서울구치소로 공간이 옮겨지면서 다시 단조로 돌아온다.
잠시나마 희망을 갖게 되지만 이내 한국사회에서 잊히게 되어 안타까운 감정을 갖게 되는 것에 조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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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된다. 김형태는 기자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기쁜 마음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사건 초기의 언론 보도 행태를 강력히 비판한다. 송두율 역시 밖으로 나온 뒤 국가보안법과 언론을 강력히 비판한다.
울먹이며 말을 잘 잇지 못하는 김형태의 모습을 고스란히 근접화면으로 보여준다.
송두율이 언론보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 그의 얼굴에 더 가까이 줌인한다.
 
두 인물의 심경이 어떠한지 읽어내기가 용이하다.
송두율의 발언 중 언론 비판이 특히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2) 표현의 스타일 분석
 
가로축
씬#

세로축
1: Extreme Long Shot
2: Long Shot
3: Full Shot
4: Medium Shot
5: Close Up Shot

<표1>


<표2>

  표1은 씬 단위로 쇼트들의 크기의 평균값을 산출하여 선으로 이은 그래프이며, 2는 씬에서 가장 빈도수가 높은 쇼트 크기 값을 선으로 이는 그래프이다. 크게 봤을 때 그래프의 궤적이 서로 비슷하다는 점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이로써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대체적으로 개별 씬들마다 할당된 이미지와 기능이 있다는 것이며 그에 따라서 쇼트 사이즈가 작은 편차로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서울시의 롱쇼트(익스트림롱쇼트)가 있는 씬들은 평균적으로도 풀쇼트 이하의 값을 취한다. 개개의 씬들은 나름의 이미지 리듬을 갖고 있어 그 안에서 쇼트들이 진동한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영화 전체의 이미지 리듬은 대체로 롱쇼트와 미디움쇼트 사이를 진동하는데, 그렇다면 영화에서 가장 돌출된 장면인 씬#13841의 기능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상공에서 내려 본 서울 야경이 나오는데 영화의 결코 밝다고 할 수 없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설정해주는가 하면, 감독이 송두율 사건에 대해 회상하는 개인적인 감정을 밝히는 내레이션이 들리는 동시에 서울의 전경이 보이는 것은 그가 가졌던 감정이 한국 사회 전체의 문제로 소급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41도 마찬가지로, 여기서는 이것이 소위 민주주의 국가라는 내레이션이 나오면서 남산타워 주변의 익스트림롱쇼트를 보여줌으로써 더욱 노골적으로 사태의 공동책임을 국민에 지운다.

  #38의 근접화면은 송두율이 2차 기자회견을 열어 사실상의 전향 선언을 함으로써 경계인의 종언을 고한 다음 장면에 나오는데, 특기할 만한 것은 인물의 감정 변화를 보여주는 쇼트로서 으레 얼굴이나 신체 일부를 보여주는 것이 일반적인 클로즈업이라면, 여기서는 송두율이 반성문을 작성하는 노트북 화면의 근접화면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왜 컴퓨터 화면의 클로즈업을 택한 것일까? 근접화면으로 볼 수 있는 반성문의 내용은 바로 전에 나온 기자회견과 거의 다르지 않아 반성문 내용을 보여주는 데서 이 장면의 기능을 찾는 것은 무의미하다. 오히려 클로즈업이라는 것 자체로부터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들뢰즈가 지적한 대로 클로즈업은 곧 감응-이미지이며 또한 얼굴이다.[1] 송두율의 얼굴을 대신하는 것으로 사용된 노트북의 근접화면은 신념을 포기하고 돌아온 그가 갖는 고뇌를 카메라가 착취할 수 있는 여지를 최소화할 일종의 윤리적 고려가 작용했을 것이라 추측된다.


3) 내용과 표현의 관계 분석

  내용분석에서 지적했듯 <경계도시2>의 문제틀은 국가보안법과 언론 비판에 한정되어 있으며 표현면에서도 마찬가지임을 지적할 수 있다. 특히 시퀀스24의 표현효과를 보면 영화의 주요 비판 대상이 언론임을 알 수 있고 시퀀스3에서 보듯 <경계도시2>는 일종의 메타-저널리즘의 위치를 자임한다. 그러나 홍형숙 감독이 혼란스러움을 고백한 이후에도 이러한 카메라의 스탠스는 유지되는데 시퀀스7의 회의 장면에서는 극단으로 치달아 감독의 개입이 일체 중단된다.


4) 역사적 콘텍스트와 텍스트의 관계

  송두율 사건을 둘러싸고 한국사회에서 벌어진 갈등은 남남갈등으로 명명할 수 있다. 여기서 남남갈등이란 남북갈등과 구별되는 것으로서 남한 사회 내의 갈등을 가리키는데, 관행적으로 사용되어 왔듯이 남북관계에 대한 남한 사회 내의 갈등을 지칭하는 것으로 한정한다. 손호철에 따르면 해방 이후의 한국 현대사는 남남갈등의 역사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2] 남남갈등이라는 말이 언론 보도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00년 조선일보에서이지만, 대북 문제와 관련하여 사회 전체가 둘 이상으로 분열하여 대립한 역사는 이른바 53체제의 수립으로까지 소급되어 올라간다. 앞서 말했듯 53체제는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단절 없이 내속하고 있으며 해방세대에서 촛불 이후의 세대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관습의 근간을 이룬다.

  1997년에 이루어진 자유주의 세력(개혁적 보수)으로의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으며 남남갈등이라는 화두가 김대중 정부 시기에 처음 대두되었다는 사실을 비롯해 과거보다 오히려 더욱 가시화되고 첨예화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1987년 이전까지는 여당이나 제1 야당 모두 반공주의의 기조를 공유했으며 516쿠데타 이후 대부분의 진보세력이 궤멸했었기 때문에 간헐적 저항 외에 이목을 끌만한 남남갈등은 없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에 이르러 햇볕정책을 중심으로 벌어진 국론분열을 보수언론에서 남남갈등으로 프레임화함으로써 여야는 물론 시민사회에서의 이념갈등도 국가적 문제로 전면화된 것이다.

  노무현의 당선으로 민주당이 연이어 집권하게 되자 시민사회발 해빙을 위한 활동들은 더욱 활성화되었고 그 일환으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송두율의 귀국을 추진하게 된다. <경계도시2>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당시 민주진영의 의도는 국가보안법에 대한 문제의식을 환기하는 것과 더불어 17대 총선을 앞두고 극적인 장면을 연출해 수구 세력에 앞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 하는 데 있었다고 추정된다. 송두율의 귀국 두 달 전부터 민주당 내의 소장파와 개혁파가 모여 신당 창당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2003920일경 국민참여 통합신당’(이후 열린우리당)의 교섭단체 등록과 맞물려 송두율이라는 이벤트로써 재야인사들과 시민단체들의 지지를 얻어 개혁적 대중정당으로서 추진력을 가할 수 있을 정황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송두율이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그가 조선노동당에 입당 원서를 냈으며 김철수로 호명되었다는 것이 사실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영화는 전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전개된다.

  그 사실을 알았다면 민주화 운동 진영은 결코 송두율을 초청하지 않았을 것”[3]이라는 한윤형의 지적은 속쓰린 진실을 담지한다. 이는 홍세화가 말한 극우 헤게모니’[4]를 가감 없이 드러낸 것이며 홍형숙 감독 역시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며 자신이 느끼고 목도한 것을 레드콤플렉스라는 말로 표현했다. 바로 이것이 <경계도시1><경계도시2>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수구 세력뿐만 아니라 국가보안법에 비판적 견지를 갖는 민주화 세력과 진보 세력마저도 극우 헤게모니의 문제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 점에서 한국 사회에서 <경계도시2>가 갖는 의미가 크다

  그런데 <경계도시2>가 송두율 사건이 있은 후 무려 6년이 지난 뒤에야 개봉되었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감독에게 그토록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홍형숙 감독은 "깊은 회의와 고통, 인간에 대한 이해의 시간"[5]이 필요했다고 밝혔지만, 2008년 송두율의 무죄 판결이 확정되기까지 기다린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이에 대해서는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내레이션 “2003년 송두율은 스파이였고 2010년 송두율은 스파이가 아니다. 그때 송두율의 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라는 말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로써 영화는 다시 표면적인 문제틀인 국가보안법 비판으로 회귀한다. 그에 따라서 영화가 비판하는 대상은 냉전수구정치세력을 옹위하는 보수언론과 권위주의 정권에 한해지는 데로 귀결된다.


5) 장르적 콘텍스트와 텍스트의 관계

  빌 니콜스가 다큐멘터리 영화의 재현 양식을 여섯 가지로 구분한 것 중 <경계도시2>의 재현 양식에 해당하는 것은 관찰자적 영식, 참여적 양식이다. 두 가지 양식이 러닝타임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차등적인 수준으로 결합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경계도시2>다큐멘터리 제작자 역시 현장으로 들어간다. ,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 생활하며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재현해낸다”[6]라는 니콜스의 정리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참여적 양식의 다큐멘터리인 동시에 만약 여기에 진실이 있다면 이는 카메라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상호작용이라는 형식의 진실이다지금 보고 있는 것이 만약 카메라 대신 우리가 거기에 있었으면 보았을 바로 그것이라는 관찰자적 양식의 전제에 정반대되는 것이다”[7]라는 정리에는 해당사항이 없다는 점에서 관찰자적 양식도 띤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제작자의 개입이 전혀 없이 카메라 앞의 일을 단순히 관찰만 하는 영화라고 할 수는 결코 없기에, <경계도시2>를 간단히 관찰자적이라고 정의 내릴 수 없으므로 개입하지 않는 방식으로 개입하는다큐멘터리라는 다소 모순적인 수식을 붙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재현 양식의 혼종성은 감독의 촬영 대상에 대한 혼란스러운 평가에 연원한다. 홍형숙 감독이 말하듯 철학자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의 초상을 보여주는 것에 작품의 방향을 뒀었지만 송두율이 김철수라는 것이 사실로 드러나 한국사회가 들끓는 것을 보면서 작품이 두는 초점을 송두율에서 한국사회로 옮겼다. 하지만 애초의 촬영 대상이던 송두율에 대한 확실한 평가가 제대로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를 대하는 사회를 담아내려 한 탓에 영화의 재현 양식 역시 고정되지 않고 유동적이다.

  빌 니콜스가 정리한 다큐멘터리 모델을 <경계도시2>에 대입하여 보자면 <경계도시2>나는 당신에게 그들에 대해 이야기한다나 혹은 우리는 우리들에 대해 당신에게 이야기한다라는 공식 사이에서 진동한다. 물론 <경계도시2>의 내포작가가 송두율이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혹은 비상대책위원회에 동일시되는 장면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철학자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의 초상이라는 초기의 의도를 반영하기라도 하듯 송두율에게 가편집본을 보내 그의 의견을 받아들여 일부 수정을 가했다는 사실은 앞서 언급한 다큐멘터리 모델 중 후자에 해당하는 부분이 <경계도시2>에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시퀀스 1에서의 피사체와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는 카메라와, 시퀀스 5에서 이뤄지는 기자회견 전 회의 장면에서 원탁에 가까이 있는 카메라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런데 시퀀스 7에서 <경계도시2>는 극단적으로 나는 당신에게 그들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공식을 따르며 즉 관찰자적 재현 양식으로 전개된다. 이 시퀀스에서 송두율 부부와 대책위원들이 회의를 하는 장면이 세 차례 나오는데, 차례대로 회의 테이블과 카메라 간의 거리가 조금씩 멀어진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세 번째 회의 장면에서 카메라는 호텔 방의 한 구석에 위치해 마치 그 자리에 없는 듯 고정되어 있으며 약 8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풀쇼트에 일말의 구도 변경을 가하지 않는다. 이러한 비가시적이고 개입 없는 소극적 카메라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내포작가가 더 이상 송두율이나 그의 측근들과 가까운 거리를 두지 않음으로써 나는 당신에게 그들에 대해 이야기한다에서 그들을 완벽히 분리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감독의 송두율에 대한 평가는 유보되고 그를 둘러싼 대책위원들의 언행에 대한 판단의 몫은 관객에게 미뤄지는 효과가 나타난다.


6) 소결

  1987년 대통령 직선제를 되돌려 놓은 이후 지난 30년간 한국의 민주주의는 많이 발전해 왔지만, 사상의 자유를 제한하며 특정 이념과 정당을 금지하는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존재하는 탓에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가 도래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최장집이 말했듯이 민주주의를 만드는 것과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이 서로 다른 문제이며 민주주의로 전환하는 것보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이 더욱 어렵다”[8]는 것을 한국사회만큼 실감나게 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1997년 자유주의 세력으로의 최초의 정권 교체가 이뤄진 이후 노무현 정부까지 연임되는 10년 동안 정치적 자유와 시민권리가 국제기준 상 1등급과 2등급으로 상향되는 민주주의 발전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정치적 자유가 2등급으로 퇴보했다는 사실[9]이 이를 방증한다.
  
  이러한 정치적 퇴보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최초의 정권 교체와 97체제로의 돌입이 완벽히 겹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97년 당시 김대중은 좌파적 이미지를 벗기 위해 일찌감치 시장 지향적 경제철학을 수용하고 있었다.[10] 김대중 정부가 주도하고 차기 정부들이 계승한 노동 유연화, 공기업 민영화, 규제완화 등의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통념과 달리 민주당 세력이 경제성장보다 분배에만 천착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비록 1997년 이전과 비교해 경제성장률이 급하강하였으나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이명박, 박근혜 정부보다는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금융화와 더불어 지니계수가 크게 오르고 빈부격차가 심화되어 자유주의 세력은 군사정권보다 더 심한 양극화를 초래한 반서민 정부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이에 분노한 서민들은 이후 대선과 총선에서 무능할 바엔 부패한 게 낫다며 보수정당에 몰표를 던졌고 그에 따라 힘을 얻은 보수정권은 서민들의 분노를 다시 이른바 운동권 엘리트들에 대한 분노로 비화시켜 민주화라는 의제 자체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과 경제만능주의를 팽배케 했다.

  07년 대선 패배 이후 정세균 대표체제는 노무현 정부의 실패와 대선 참패의 원인을 과도한 좌경화에서 찾고 경제 성장을 중시하는 뉴민주당 플랜을 구상했다. 민주당 세력의 이러한 중도 무당파에 소구하는 우클릭 정책 기조는 사실상 지금까지도 유지되어 왔다. 하지만 20대 총선과 19대 대선 직전까지,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임기 내내 45%를 넘기는 일이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지지율은 좀처럼 여당을 추월하지 못했으며 선거 때마다 야권 연대와 단일화를 거치고 나서야 가까스로 여야의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그렇게 고전을 면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는 발본적인 성찰이 부재한 탓이 컸다고 생각된다. 정부의 정책들에 대하여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정권 심판만을 외치는 것은 결코 중도층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와 촛불혁명에 힘입어 정권 탈환에 성공하긴 했지만, 발본적 성찰을 거치지 않고 보수정당과 구별되는 새로운 진보적 의제를 관철시키지 않는다면 또다시 실망을 안기고 수구세력으로 정권이 넘어갔다가 부정부패의 역풍으로 다시 민주세력이 집권하는 무의미한 공회전이 반복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여기서 말하는 성찰은 문제틀의 변경이 앞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진정한 의미의 자유주의 수권 세력으로서의 약동을 위해서는 경제 성장뿐만 아니라 정치적 자유와 시민권리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큰 힘을 보태는 것에 주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정치적 민주주의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국가보안법이다. 그리고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 바로 레드콤플렉스이다.

  송두율 사건은, 53체제의 근간으로 기능하고 모든 세대의 아비투스를 형성해 온 반공이데올로기가 레드콤플렉스를 발생시키고 다시 레드콤플렉스가 반공 이데올로기를 강고하게 만드는 되먹임 고리를 노출시킨 사건이다. <경계도시2>는 송두율에 대한 황장엽의 증언이 사실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발생한 여론재판과 사회의 광기를 담아내는 데 주력한다. 하지만 <경계도시2>가 그 노출된 고리를 제대로 실체화하여 영화를 본 관객들과 민주진보세력의 문제틀 설정에 변화를 가하는 데 성공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경계도시2>에서 러닝타임 내내 레드콤플렉스라는 말은 단 두 차례 언급되며 그나마도 각자 뜻하는 바는 차이가 있다. 첫 번째로 언급되는 레드콤플렉스는 홍형숙 감독 자신이 갖고 있었던 것으로 고백한 것으로서 공산주의 혹은 북한에 대한 견지에 있어서 의식과 무의식의 불일치이다. 하지만 두 번째로 언급되는 레드콤플렉스는 다만 일반적인 반공주의, 반북주의의 동의어에 지나지 않는다.

  시퀀스 4에서 감독이 레드콤플렉스를 언급한 이후 영화는 송두율의 기자회견과 굳어진 여론재판에 대하여 논평한다. 하지만 <경계도시2>는 일찌감치 여론재판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던 까닭과 그 과정에 대해 더 파고 들어가지 않고 다만 그 배후의 플레이메이커로서 언론을 비판하는 데 지나치게 치중한다. 석방 판결 이후 김형태 변호사가 인터뷰할 때도 언론 보도를 비판하는 부분이 비중 있게 보여지며 송두율이 석방되어 취재진 앞에서 한 발언에서도 언론 보도를 비판할 때 카메라가 송두율의 얼굴로 줌인함으로써 강조점을 둔다. 그러나 설사 모든 주요 언론사가 취재 윤리를 준수하며 공정하게 보도했을지라도 송두율이 김철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며 그에 대한 여론의 반응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경계도시2>의 논리를 따르면 언론 보도의 경거망동에 의해 한국사회의 레드콤플렉스가 동한 것이 되어버린다.

  그뿐만 아니라 <경계도시2>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대책위원들에 대한 비판도 많이 부족하다. 송두율은 사실 독일 국적을 가졌기 때문에 추방 명령이 내려지면 독일로 돌아가면 될 일이었지만 민주 세력은 사태를 반전시키기 위해 송두율에게 사실상 전향을 강요하여 일종의 희생양으로 삼고 이를 대의를 위한 것이라 정당화한 것이다.[11] 하지만 <경계도시2>에서 이에 대한 비판은 전향서를 낭독하기로 한 그들의 결정에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라는 내레이션을 내보내는 데 그친다. 전향서를 읽은 뒤에 나오는 장면에서 바로 송두율이 구속되기 때문에 비판 대상은 급하게 검찰로 옮겨지게 되고 법원 앞 보수단체의 집회를 장시간 보여줌으로써 자기 반성과 성찰은 외부를 향한 적대로 화하게 된다. 특히 송두율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 인원들에게 시비를 걸던 두 명의 시민들의 인터뷰를 보여주는 데 지나치게 긴 시간을 할애한 것의 효과는 혐오를 유발하는 것 이상이 될 수 없다.

  발본적 성찰을 유도하는 문제틀 설정의 변화가 예술의 책무라면 <경계도시2>는 그 책무에 부응하는 데 일부 성과는 있었지만 사실상 실패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경계도시2>는 우리 안의 레드콤플렉스를 지적한 것은 옳았지만 간단히 언급하는 데 그쳤고 급진적으로 질문을 이어가지 못한 채 문제를 검찰의 공안몰이와 선정적인 언론 보도 행태에 환원시켰다.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라는 말이 정언명령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형국에 이에 대해 일말의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에게 급진좌파 및 종북이라는 꼬리표가 붙으며 그것을 두려워해야 하는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경계도시2>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각주
[1] 유진상 옮김(질 들뢰즈), 시네마 1: 운동-이미지, (서울: 시각과언어, 2002), 168.
[2] 손호철, 같은 책, 130.
[3] 한윤형, 같은 책, 356.
[4] 1998년에 일어난 최장집 사건을 두고 한 말이다. 홍세화, “한국의 지식인에게-극우조선일보의 전지전과 한국의 지식인”, 인물과 사상, (서울: 인물과사상사, 1999) 통권 10
[5] 송두율 사태, 서북청년단 재건, 그리고 민주주의”, 프레시안, 2014.10.14.

[6] 빌 니콜스, 같은 책, 190.
[7] 같은 책, 193
[8] 최장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서울: 후마니타스, 2008), 10.
[9] 손호철, 촛불혁명과 2017년 체제, (서울: 서강대학교출판부, 2017), 40.
[10] 지주형,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 (서울: 책세상, 2011), 241.
[11] 한윤형, 같은 책,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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