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엘리자베스 워런이 삽질한 몇 개 이유

트위터에서였나 언젠가 봤던 얘기에 크게 공감했다. 정치인들에게는 어떤 어마어마한 악명이나 사생활 문제, 범죄기록이 따라붙는 것보다 훨씬 치명적인 것이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라고. 다른 건 다 극복할 수 있고 운이 따르면 정치적 재기도 가능하겠지만 조롱감이 되면 재기불능이라고.

엘리자베스 워런은 치명적인 실수로 평생 조롱거리가 따라붙게 되었다. 그는 지속적으로 자신이 네이티브 아메리칸 혈통이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DNA테스트 결과 전면 부정당한 것이다. 완전히 전면 부정은 아니고 1/64에서 1/1,024 정도의 네이티브 아메리칸 피가 있다고는 한다. 그냥 일반 백인 수준이다. 트럼프는 워런에게 Faux-cahontas라는 별명을 붙여줬고 이 별명은 평생 떼낼 수 없을 것이다.

이 사건을 위시하여 워런에게는 일종의 구라쟁이라는 이미지가 씌워졌다. 유세 기간에는 본인이 교직에 있던 시절 임신을 이유로 해고를 당했다고 이야기했는데 2007년 인터뷰가 발굴되어 교직이 자신과 맞지 않아 스스로 관뒀다고 말한 바 있음이 밝혀졌다. 워런은 지금도 임신 때문에 해고된 게 맞다고 주장하지만 믿는 사람은 별로 없어보인다.

워런이 바이든, 샌더스와 함께 빅3 후보로 거듭나는가 싶더니 다시 하락세에 접어들자 두어 달 전 워런은 갑자기 충격적인 폭로를 했다. 샌더스가 지난해에 자신에게 여자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바로 며칠 뒤 CNN에서 진행한 토론회에서 샌더스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결코 그런 일 없다. 오히려 나는 2015년에 먼저 워런에게 가서 당시 대선에 출마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제안했었다. 생각이 없다고 해서 내가 출마한 거다."

샌더스의 발언에 이어 CNN 진행자는 샌더스에게 다시 질문했다. "샌더스 의원,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겠다. 그러니까 당신이 워런 의원에게 여자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샌더스는 그렇다고 대답, 진행자는 다시 워런에게 질문을 던졌다. "워런 의원, 샌더스가 당신에게 여자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는 말을 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워런의 대답 "동의하지 않았다"


토론회가 끝나면서 워런은 샌더스의 악수를 거절했다.


워런은 90년대까지 공화당원이었다. 그러다 2010년대 들어 상원의원이 되고 선명한 반-월가 스탠스를 취하면서 소위 샌더스의 친구로서 대표적인 당내 좌파로 이름값을 올렸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2016년 대선을 위한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부정선거를 저질렀다는 정황이 나오던 와중에 샌더스 대신 클린턴을 공개지지했다. 이때부터 좌파성향 유권자들의 지지에 상한선이 생겼다. 당시 민주당 전당대회 부의장이었던 털시 가버드가 부의장직을 때려치고 즉석에서 샌더스 지지선언을 해서 삽시간에 스타가 된 것과 크게 대비된다.


대형 언론사들, 엘리트 미디어(위의 CNN의 말도 안 되는 진행에서 확인되듯이)의 소위 '정치 전문가' 비평가들은 워런을 이용하여 샌더스를 떨구고자 온갖 공작을 벌였다. 이들은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데 워런 대신 샌더스를 지지하는 것은 여성혐오 외에는 이유가 없다는 발언을 공공연히 하고 다녔고 워런은 이를 전혀 제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막판에는 위의 무리수를 두면서 본인 선거캠프 관짝에 못을 박았다. 그리고 경선후보를 사퇴하고 한 달이 가까워지도록 바이든이나 샌더스 어느 한 쪽에도 지지선언을 하지 않고 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인싸들을 죽이자.

  "미국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클리셰는 항상 최악의 성차별주의자들은 항상 체격만 좋고 공부는 전혀 안 하는 고교 운동선수들로 묘사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인터넷 세계는 실제는 전혀 다름을 보여준다. 인터넷으로 인해 드러나게 된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오히려 너드nerd 성향을 갖고 있으며 스스로 착한 남자라고 생각하지만 여자를 사귄 적이 없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증오로 가득 차 있고 타인의 행복에 미친듯이 시기심을 느끼는 인종주의자이자 여성혐오자라는 것이다. 비슷하게, 60년대 이후로 서구 대중문화를 지배해왔던 미학적 가치들, 이를테면 위반, 전복, 반문화와 같은 것들이야말로 오늘날 온라인 극우의 본질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온라인 극우는 종래의 전통적인 편견들로 가득하지만 니체적인 반-도덕주의에 힘입어 기독교 윤리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에서 과거의 극우와는 다르다." 영미권에서 쓰이는 Normies라는 말은 우리말로 '인싸' 정도로 번역될 수 있겠다. 직역하면 평범한 사람들인데, 20+n살이 넘도록 제대로 된 이성교제 경험이 없고 동성인 친구마저 극히 적은 본인들의 비참한 아다인생과는 다르게 정상적인 사회적 삶을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시기, 질투, 더 나가면 저주까지 하고 살인도 불사하는 그러한 멘탈리티가 집약된 단어라 할 수 있다. 누구나 다 스스로 '아싸'라고 주장하는 한국에서의 '인싸'의 용례와는 약간 다르다. 하지만 강남역 살인사건부터 PC방 살인사건까지, 알파메일alpha male에 의해 번식 경쟁에서 탈락했다고 믿는, 그렇게 될 것이라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 베타메일beta male의 원한감정은 인셀( In voluntary Ce libate, 비자발적 독신)이라는 신조어로부터 짐작 가능하듯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미국에서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셀의 멘탈리티를 가진 자들이 정치세력화하면 대안우파

유튜버들의 선넘기

" 한국의 문화는 비천함을 사유할 수 있는 역량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제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르는 평가의 기준이 도덕으로 대체됐기 때문이다. 동시대의 평론가는 도덕적으로 ‘좋은 것’의 위치에서 ‘나쁜 것’을 굽어보며 ‘나쁜 것’을 철저히 거부하도록 장려한다. 나는 시대를 역행해 비천함을 꿈의 질료로 활용하는 문화비평을 복권시키자고 권유하고 싶다. 상속권을 박탈당한 자의 입장에서 문화를 새로 서술하자. 사회적 실재, 세계, 시간성, 자본주의, 한국힙합, 실시간 스트리밍, 밈과 농담, 우리 문화 내부의 비천함을 사고하자. "   t毬x(malware)라는 사람이 마테리알에 쓴 이 글 https://ma-te-ri-al.online/3c16 은   나로서는 아주 어려워서 이해하기 힘들다. 다만 위에 인용한 부분은 이해 여부는 차치하고 상당한 울림이 있다. 내가 지금껏 생각해왔던 것과 비슷하기 때문일 테다. 비평이든 연구든 하려면 비위가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이든 도덕적이든 어떤 이유가 되었건 속으로부터 역한 기분이 들더라도 어떤 것을 다만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은 대선 직후 트럼프에 투표한 노동계층을 비천한 존재라 불렀다. 정확히는 "You could put them in the basket of deplorables"라 했는데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것들이라 의역 가능하다. 유력 정치인이 대다수 유권자들을 일거에 기각해버렸는데 리버럴 성향 지지자들은 이에 환호했다.  미국에서 기각문화Cancel culture라는 것이 흥하고 있다.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들이나 노예제를 낭만화한다는 이유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같은 영화의 영화사적 의의를 폄하하려는 움직임들이다. 혹은 떠오르는 유명인, 정치인, 뮤지션, 배우 등의 과거를 캐내어 도덕적 낙인을 찍는 식이다. 혹은 최근의 잘못을 과거의 행보들에까지 소급적용해 생애를 깡그리 부정하는 식이다. 대학에서는 문

더 우스꽝스럽게 실패하라

<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라는 제목의 철학책이 있다. 삶의 격언으로 삼을 만한 좋은 말이다. 하지만 다시 실패할 기회조차도 사치일 수 있는 오늘날 이런 얘기는 많이 공허하게 들린다. 차라리 <더 우스꽝스럽게 실패하라>가 더 낫겠다. 제대로 확실하게 해내지 못할 바에 좆망의 나락에 떨어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중계해서 어그로를 끄는 데 성공한다면 주목경제의 밑천이라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글배우라는 필명의 어떤 시인이 시집을 냈는데 잠시 어그로가 끌렸다. 엄밀히 시집은 아니고 에세이로 분류되는데 책 커버 디자인이 문학동네 시인선 표지와 똑같아서 문제였다. 지금은 리커버판으로 나오는 것 같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들뢰즈의 <소진된 인간>이 떠오르는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표지보다는 책 내용이 더 흥미롭다. '저게 도대체 뭐야'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온다. 조선일보 [리빙 포인트] '음식이 싱거울 땐'이 떠오른다. 물론 이건 합성이다. 더 그럴싸한 글이었다면 지금 만큼의 인기를 전혀 누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은 당연히 못 낸다. 그러나 못쓴 수준이 어느 정도를 지나치면 얘기는 달라진다. 얼마나 형편없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글이 재미가 없네', '글이 별 내용이 없네', '문장 구성이 너무 단순하네' 등 그다지 잘 못쓴 글을 봤을 때 으레 할 수 있는 평가가 아니라 '저게 도대체 뭐야'라는 반응부터 튀어나오게 만드는 이상한 글이어야만 한다. 글배우는 문동시인선 표지 디자인으로 어그로를 끄는 데 성공했다. 이걸 하나의 퍼포먼스라 생각하고 그의 집필과 출판까지의 과정을 보면 꽤 재밌다. R. Mutt의 변기 같기도 하다. 다음 에세이집 낼 때 표지에 지은이 얼굴과 전혀 닮지 않은 대충 그린 그림도 넣으면 더 훌륭할 듯하다. 영어로 'It's so b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