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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들의 선넘기

"한국의 문화는 비천함을 사유할 수 있는 역량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제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르는 평가의 기준이 도덕으로 대체됐기 때문이다. 동시대의 평론가는 도덕적으로 ‘좋은 것’의 위치에서 ‘나쁜 것’을 굽어보며 ‘나쁜 것’을 철저히 거부하도록 장려한다. 나는 시대를 역행해 비천함을 꿈의 질료로 활용하는 문화비평을 복권시키자고 권유하고 싶다. 상속권을 박탈당한 자의 입장에서 문화를 새로 서술하자. 사회적 실재, 세계, 시간성, 자본주의, 한국힙합, 실시간 스트리밍, 밈과 농담, 우리 문화 내부의 비천함을 사고하자."
 
t毬x(malware)라는 사람이 마테리알에 쓴 이 글https://ma-te-ri-al.online/3c16 나로서는 아주 어려워서 이해하기 힘들다. 다만 위에 인용한 부분은 이해 여부는 차치하고 상당한 울림이 있다. 내가 지금껏 생각해왔던 것과 비슷하기 때문일 테다. 비평이든 연구든 하려면 비위가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이든 도덕적이든 어떤 이유가 되었건 속으로부터 역한 기분이 들더라도 어떤 것을 다만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은 대선 직후 트럼프에 투표한 노동계층을 비천한 존재라 불렀다. 정확히는 "You could put them in the basket of deplorables"라 했는데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것들이라 의역 가능하다. 유력 정치인이 대다수 유권자들을 일거에 기각해버렸는데 리버럴 성향 지지자들은 이에 환호했다. 

미국에서 기각문화Cancel culture라는 것이 흥하고 있다.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들이나 노예제를 낭만화한다는 이유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같은 영화의 영화사적 의의를 폄하하려는 움직임들이다. 혹은 떠오르는 유명인, 정치인, 뮤지션, 배우 등의 과거를 캐내어 도덕적 낙인을 찍는 식이다. 혹은 최근의 잘못을 과거의 행보들에까지 소급적용해 생애를 깡그리 부정하는 식이다.

대학에서는 문학, 영화 등 텍스트를 학생들 앞에서 읽히기에 앞서 '트리거 워닝'을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광민감성 발작 주의마냥, 특정 장면이 어떤 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보기 싫은 사람은 나가도 좋다는 윤허를 내릴 수 있어야 하며 성적을 매길 때에도 정상참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이 배출할 인재상은 어떤 것인가?

최근 한 대학 강의실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읽는데 여기에 나오는 강간 묘사에 대하여 성폭행 피해자 학생이 항의를 한 것이다. 이로 인하여 컬럼비아대 다문화문제 자문위원회에서 고전 예술작품에 자극성 경고를 표시하도록 권고했다. “학생들은 교실에서 안전함을 느껴야 한다라는 것이 권고안의 요지지만 제리 코인 교수가 지적했듯 학생들은 삶이 자극적이라는 사실을 배워야 할 때다. 4년 동안 거대한 안전 영역 안에서 자신을 보호막으로 둘러싸는 것, 그것이 바로 퇴보다.”(슬라보예 지젝, 『왜 하이데거를 범죄화해서는 안 되는가』, '정치적 올바름의 덫')

학부 영화비평 세미나에서 발제할 때 나는 별 생각 없이 <Behind the green door>라는 고전 포르노를 틀은 적이 있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같이 세미나를 듣던 학생 한 명이 도중에 나가서 강사가 몇 마디 지적을 했는데 종강 후 해당 강사는 강의 평가에서 빵점 테러를 받았다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튜버들의 선 넘기

극우 유튜버들이 사회적 문제로 계속해서 호명되고 있다. 유튜브 정책상 허위정보나 혐오 표현 등으로 신고가 누적되면 그 채널에 소위 노란 딱지가 붙여져 광고가 제한되는 탓에 수익 창출이 불가능해지지만, 채팅창을 통해 추종자들로부터 후원금을 받을 수 있는 슈퍼챗이라는 대안 수익모델이 있다. 현재 전 세계 슈퍼챗 후원금 1위 채널은 가로세로연구소.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노골적으로 조롱한 방송으로 벌어들인 수익이 그 주간에만 이천만 원에 달한다고 한다.

선을 넘는다라는 말이 널리 유행했다. 방송인 김민아는 방송의 금도를 고려하지 않는 듯한 언행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최근 유튜브 방송에서 중학생을 대상으로 성희롱 발언을 하여 물의를 빚었다. 백만 단위의 구독자를 보유했던 유튜버 송대익은 치킨프랜차이즈 배달원이 음식을 빼먹었다는 내용의 거짓 방송을 송출하여 본사로부터 민형사상 피소를 앞두고 있다. 그 외에 한 유튜버가 투렛 증후군을 연기하다 발각된 사례가 있었고 어떤 이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 행세를 하며 공공장소에서 기침하고 쓰러지는 연기를 하는 등 난동을 부리다가 입건된 바 있다.

온갖 시정잡배들이 나타나 설쳐대며 사회에 소란을 일으키고 있다. 과거라면 마땅히 미치광이 취급받았을 법한 언행을 보이는 사람들이 오늘날 갑자기 거대 정당에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로 상당한 세력을 모으고, 스타 연예인에 비견되는 두꺼운 팬층을 확보할 수 있게 된 배경이 무엇일까? 그저 이상한 사람들이 최근 들어 유난히 급증했다고만 말하기에는 뭔가 많이 부족하다.

극단적이고 금도를 넘는 이념을 갖는 사람들의 절대수는 과거와 비교하여 대동소이하다고 생각한다. 그 대신 증가한 것은 곳곳에 주변부로 흩어져 있던 소수 이상한 사람들끼리의 연결 가능성이다. 연결 가능성의 제고는 커뮤니케이션 제 수단의 발전에 힘입은 바 크며 그 중심에 유튜브가 있다. 쉽게 설명하자면, 사회적 분위기와 통념상 차마 입 밖에 내기 눈치 보였던 특정 의견이나 불만사항을 남들과 공유하고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을 가까운 곳에서 찾기가 과거에는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 이용자라면 누구나 접속하는 유튜브에서 이용자별 성향에 맞춰진 동영상 추천의 연쇄를 몇 단계 거치기만 하면 의견을 같이하는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클레이 셔키Clay Shirky는 그의 책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Here comes everybody)에서 재미있는 예를 제시한다. 페이스북 이전에 잘 나가던 미트업Meetup이라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사이트가 있었는데 서비스 출범 후 몇년 간 이용자들의 상호작용이 가장 활발했던 그룹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마녀 숭배자들, 이교도들, 무신론자들, 여호와의 증인, <제나> 팬모임 등이 그것이다. <제나>Xena Warrior Princess는 루시 롤리스 주연의 드라마 시리즈인데 대중적인 흥행은 덜했지만 소규모 열광팬들로부터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다. 셔키 말대로 "'제나'보다 '내 사랑 레이몬드' 시청자가 훨씬 많았지만, 실제로 더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는 쪽은 제나 팬들이었다."(215) 나머지 그룹들은 사회적으로 승인받지 못한 그룹이었다. 과거에는 비난을 무릅쓰고 본인의 신념과 가치를 피력하고 동료들을 찾을 공간과 방법이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인터넷으로 말미암아 '사회적 승인 없는 사회'들이 암암리에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시트콤 <브루클린 99>에는 한 식인 살인범이 식인 관련 꿀팁을 레딧Reddit에서 찾는다는 조크가 나온다.

유튜브 이전에는 블로그가 이러한 기능을 했었지만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유튜브가 훨씬 효과적임은 물론이다. 블로그는 플랫폼이 통합되어 있지 않은 탓에 거대 단위의 이용자들 간의 대규모 접속에 한계가 있다. 그리고 블로그는 대체로 활자 중심으로, 독자의 문해력과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반면 유튜브 영상은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할 수 있고 화자의 격동하는 감정을 사실상 무매개적으로 드러내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그에 동화되기가 아주 용이하다. 막연하나마 갖고 있었지만 위선의 파사드 아래 억압되어 있었던 어떤 특정한 감정이 유튜브 영상을 계기로 자극되고 분출되어 그것을 공유하는 다른 시청자들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증폭되고 커다란 집결의 매개체가 되는 것이 극우 유튜버를 중심으로 한 극우 세력화의 축약된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선을 넘는’, 즉 사회적 금도를 무시하는 이들의 언행에 그토록 많은 사람이 열광하는 것은 헤게모니 균열의 징후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고 싶다. 작금의 유튜버들을 위시한 여러 가지 기현상, 선 넘는 행위들에 대한 대중의 열광은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행위에 대한 예찬이다. 모든 것이 의문에 붙여지는 오늘날 좌고우면 않고 사회적 질서에 개기는 행위를 상연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잠시 눈살은 찌푸릴지언정 일말의 쾌감은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규칙이든 예의든 사회에서 지키라는 것들은 다 지키며 살아왔는데도 지금 사는 꼬락서니가 엉망이니 유튜버들을 대리 삼아 질서 자체를 문제시하려는 몸부림인 것이다.

 극우 유튜버들의 준동은 이러한 선 넘기에 정치적 메시지가 더해진 것이다. 이들의 도를 지나친 막말, 근거 없는 비방, 혐오 표현, 가짜 뉴스 등의 표피 아래에 깃들어 있는, 지배 기득권 세력의 하향식 의제 설정에 대한 저항에의 욕망에 시선이 닿아야 한다. ‘기레기혹은 기더기라는 말로 표상되는 기성 언론에 대한 강한 불신 및 제반 전문가들을 향한 반발심 등을 단순히 반지성주의로 일축할 것이 아니라 헤게모니의 균열에 대한 대중의 반응으로 봐야 할 것이며 아래로부터의 담론 형성을 위한 움직임으로 봐야 할 것이다.

 사회 질서와 금도에 의해 음소거, 비가시화되고 주변으로 밀려나 있었던 요구들, 불만들, 헛소리들, 기이한 상념들과 상상력들이 유튜브를 매개로 공론장 중심부의 선을 침범하고 있다. 전혀 새로운 관계 연결의 가능성이 유튜브를 통해 현실화 됨에 따라 역사적으로 전례 없는 지각변동의 계기가 마련되고 있다. 이 기회를 잘 포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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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싸들을 죽이자.

  "미국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클리셰는 항상 최악의 성차별주의자들은 항상 체격만 좋고 공부는 전혀 안 하는 고교 운동선수들로 묘사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인터넷 세계는 실제는 전혀 다름을 보여준다. 인터넷으로 인해 드러나게 된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오히려 너드nerd 성향을 갖고 있으며 스스로 착한 남자라고 생각하지만 여자를 사귄 적이 없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증오로 가득 차 있고 타인의 행복에 미친듯이 시기심을 느끼는 인종주의자이자 여성혐오자라는 것이다. 비슷하게, 60년대 이후로 서구 대중문화를 지배해왔던 미학적 가치들, 이를테면 위반, 전복, 반문화와 같은 것들이야말로 오늘날 온라인 극우의 본질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온라인 극우는 종래의 전통적인 편견들로 가득하지만 니체적인 반-도덕주의에 힘입어 기독교 윤리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에서 과거의 극우와는 다르다." 영미권에서 쓰이는 Normies라는 말은 우리말로 '인싸' 정도로 번역될 수 있겠다. 직역하면 평범한 사람들인데, 20+n살이 넘도록 제대로 된 이성교제 경험이 없고 동성인 친구마저 극히 적은 본인들의 비참한 아다인생과는 다르게 정상적인 사회적 삶을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시기, 질투, 더 나가면 저주까지 하고 살인도 불사하는 그러한 멘탈리티가 집약된 단어라 할 수 있다. 누구나 다 스스로 '아싸'라고 주장하는 한국에서의 '인싸'의 용례와는 약간 다르다. 하지만 강남역 살인사건부터 PC방 살인사건까지, 알파메일alpha male에 의해 번식 경쟁에서 탈락했다고 믿는, 그렇게 될 것이라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 베타메일beta male의 원한감정은 인셀( In voluntary Ce libate, 비자발적 독신)이라는 신조어로부터 짐작 가능하듯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미국에서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셀의 멘탈리티를 가진 자들이 정치세력화하면 대안우파

더 우스꽝스럽게 실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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