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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왜 들을까 Seefeel - Filter Dub


Seefeel - Filter Dub


신체 기관 중 이동 범위가 가장 좁고 정적인 부분은 얼굴일 것이다.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얼굴은 대신 가장 풍부한 표현력을 지녔다. 표정이다. 표정은 사회적인 기능을 한다. 표정을 타인에게 보임으로써 머리는 비로소 얼굴이 된다.

동물이 진화한다는 것은 간극이 발생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외부로부터의 자극과 그에 대한 반응 사이의 경로를 말한다. 뇌과학자 로돌포 이나스에 따르면 마음이란 내부화된 운동이다. 운동이 밖으로 표현되는 대신 안쪽으로 접혀들어가면서 복잡다단한 경로가 생긴다. 경로가 단순한 도마뱀은 건드리는 즉시 튀어오르지만 인간은 그러지 않고 고개를 돌려 먼저 왜 건드리냐고 묻는다. 경로가 복잡하고 긴 사람은 계속 툭툭 건드려도 몸은 가만히 있고 대신 붉어지고 일그러지는 얼굴로 화를 표현한다. 외부로부터의 자극의 수용과 그에 대한 반응 양태를 감정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바깥으로 표현되어 식별 가능한 상태로 다른 사람에 전달되고 공감되는 것이 느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감정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을 쉽게 신뢰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앞서 말한 몸 안쪽으로 접힌 경로가 얕고 단순한 사람이거나 사기꾼이다. 쉽게 울거나 화내거나 하는 등 감정기복이 크고 표현이 격한 사람을 가리켜 감수성이 풍부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빈약한 것이라고 본다.

나는 표정 변화가 별로 없다. 그런데 감정 변화를 잘 숨기는 편은 아니다. 감정을 억누를 이유도 전혀 없다. 감정 표현의 프로세스가 상당히 긴 탓이라고 강변해본다. 내가 운동을 잘 안 하는 것은 운동의 내부화의 정도가 심한 탓이라고 강변해본다. 나는 잇몸이 붓거나 혓바늘이 돋거나 하는 식으로 어떤 신체적인 증상이 있은 뒤에야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굉장히 둔하다. 내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내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음악을 듣는 것일 테다. 어느날 갑자기 그날따라 특정 곡의 멜로디가 하루종일 머리속을 맴돌 때가 있다. 그날따라 찾아 듣게 되는 곡, 특정 장르가 있다. 우연이라고만 보고 싶지는 않다. 그때 몸상태가 음악을 경유해서 표현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분위기가 명쾌히 묘사되지 않는 음악을 즐겨 듣는다. 즐겁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고 신나지도 않고 우울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은 음악을 선호한다. 가사가 노골적인 노래는 전혀 안 좋아한다. 작곡가가 곡을 쓸 때 의도한 감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음악은 광고음악으로서나 제 기능을 한다.

Seefeel은 말도 안 되게 저평가되고 잊혀진 영국의 슈게이징 밴드다. 짧게 활동하고 해체했다가 재결성하여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데 가장 최근 음반을 낸 게 9년 전이다. 중학생 때 Aphex Twin의 리믹스 때문에 알게 됐는데 그때는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은 왜 좋은지 모르겠다. 늘어지는 음이 8분 넘게 반복만 하는데 넋놓고 듣게 된다. 곰팡이 같은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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