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라는 제목의 철학책이 있다. 삶의 격언으로 삼을 만한 좋은 말이다. 하지만 다시 실패할 기회조차도 사치일 수 있는 오늘날 이런 얘기는 많이 공허하게 들린다. 차라리 <더 우스꽝스럽게 실패하라>가 더 낫겠다. 제대로 확실하게 해내지 못할 바에 좆망의 나락에 떨어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중계해서 어그로를 끄는 데 성공한다면 주목경제의 밑천이라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글배우라는 필명의 어떤 시인이 시집을 냈는데 잠시 어그로가 끌렸다. 엄밀히 시집은 아니고 에세이로 분류되는데 책 커버 디자인이 문학동네 시인선 표지와 똑같아서 문제였다.
지금은 리커버판으로 나오는 것 같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들뢰즈의 <소진된 인간>이 떠오르는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표지보다는 책 내용이 더 흥미롭다.
'저게 도대체 뭐야'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온다. 조선일보 [리빙 포인트] '음식이 싱거울 땐'이 떠오른다.
영어로 'It's so bad, it's so good'이라는 표현이 이미 널리 쓰인다. 구릴 대로 구려서 애착마저 간다는 뜻이다. 다만 대충 만든 것이어서는 안 된다. 진지하게 임하고 열심히 만든 것이어야 한다. 'so bad so good' 영화의 대명사로는 <더 룸>이 있다. 제작, 감독, 주연배우를 도맡은 토미 와이소Tommy Wiseau는 이 영화로 인생역전했다. <더 룸>이 제작되기 전까지 토미 와이소가 누군지 아는 사람은 전혀 없었고 지금도 그에 관하여 알려진 바는 많지 않다. 출생연도와 출생지조차 추측만 난무한 미스테리의 인물이지만 영미권의 젊은 인터넷 이용자들 중 이 사람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더 룸>은 기본을 전혀 지키지 않은 만듦새와 무논리한 전개 등으로 보는 사람들을 당혹케 만들었으며 최악의 영화로 늘 꼽힌다. 그러면서도 컬트적인 사랑을 받으며 오랫동안 밈으로 소비되고 있다.
<골목식당> 류의 프로그램을 보면 일부러 음식을 더 엉망으로 만들어서 욕하려고 방문하는 사람들 대상으로 단타 장사를 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요새 내 주변에도 게임 스트리밍을 보는 사람이 많은데, 보는 사람이 화가 날 정도로 게임을 정말 못하는 것 자체를 콘텐츠로 내세우는 스트리머들도 꽤 있다더라.
비의 <깡>을 좋아서 소비하는 사람은 없다. 무지하게 촌스럽고 완전 구린 음악과 가사, 뮤직비디오, 안무는 그것만으로도 놀림감이 되기에 충분했지만 비가 아니라 다른 가수였다면 오늘과 같은 재발굴은 없었을 것이다. 할리우드에 진출해 기고만장해서 있는 설레발은 다 치다가 <닌자 어새신> 이후 한국에서 십년째 삽질만 하다가 <자전차왕 엄복동>으로 사실상 커리어의 관짝에 못박고 있었던 비이기 때문에 모든 게 맞아떨어졌다. 사람들은 비를 놀리려고 <깡>을 소비했는데 어찌됐건 이런 소비행위 자체가 비의 화려한 재기를 위한 밑천이 되고 있다. 즐거움을 선사하지 못할 바에 우스운 사람이라도 되는 게 낫다.
글배우라는 필명의 어떤 시인이 시집을 냈는데 잠시 어그로가 끌렸다. 엄밀히 시집은 아니고 에세이로 분류되는데 책 커버 디자인이 문학동네 시인선 표지와 똑같아서 문제였다.
지금은 리커버판으로 나오는 것 같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들뢰즈의 <소진된 인간>이 떠오르는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표지보다는 책 내용이 더 흥미롭다.
'저게 도대체 뭐야'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온다. 조선일보 [리빙 포인트] '음식이 싱거울 땐'이 떠오른다.
더 그럴싸한 글이었다면 지금 만큼의 인기를 전혀 누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은 당연히 못 낸다. 그러나 못쓴 수준이 어느 정도를 지나치면 얘기는 달라진다. 얼마나 형편없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글이 재미가 없네', '글이 별 내용이 없네', '문장 구성이 너무 단순하네' 등 그다지 잘 못쓴 글을 봤을 때 으레 할 수 있는 평가가 아니라 '저게 도대체 뭐야'라는 반응부터 튀어나오게 만드는 이상한 글이어야만 한다.
글배우는 문동시인선 표지 디자인으로 어그로를 끄는 데 성공했다. 이걸 하나의 퍼포먼스라 생각하고 그의 집필과 출판까지의 과정을 보면 꽤 재밌다. R. Mutt의 변기 같기도 하다. 다음 에세이집 낼 때 표지에 지은이 얼굴과 전혀 닮지 않은 대충 그린 그림도 넣으면 더 훌륭할 듯하다.
영어로 'It's so bad, it's so good'이라는 표현이 이미 널리 쓰인다. 구릴 대로 구려서 애착마저 간다는 뜻이다. 다만 대충 만든 것이어서는 안 된다. 진지하게 임하고 열심히 만든 것이어야 한다. 'so bad so good' 영화의 대명사로는 <더 룸>이 있다. 제작, 감독, 주연배우를 도맡은 토미 와이소Tommy Wiseau는 이 영화로 인생역전했다. <더 룸>이 제작되기 전까지 토미 와이소가 누군지 아는 사람은 전혀 없었고 지금도 그에 관하여 알려진 바는 많지 않다. 출생연도와 출생지조차 추측만 난무한 미스테리의 인물이지만 영미권의 젊은 인터넷 이용자들 중 이 사람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더 룸>은 기본을 전혀 지키지 않은 만듦새와 무논리한 전개 등으로 보는 사람들을 당혹케 만들었으며 최악의 영화로 늘 꼽힌다. 그러면서도 컬트적인 사랑을 받으며 오랫동안 밈으로 소비되고 있다.
<골목식당> 류의 프로그램을 보면 일부러 음식을 더 엉망으로 만들어서 욕하려고 방문하는 사람들 대상으로 단타 장사를 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요새 내 주변에도 게임 스트리밍을 보는 사람이 많은데, 보는 사람이 화가 날 정도로 게임을 정말 못하는 것 자체를 콘텐츠로 내세우는 스트리머들도 꽤 있다더라.
비의 <깡>을 좋아서 소비하는 사람은 없다. 무지하게 촌스럽고 완전 구린 음악과 가사, 뮤직비디오, 안무는 그것만으로도 놀림감이 되기에 충분했지만 비가 아니라 다른 가수였다면 오늘과 같은 재발굴은 없었을 것이다. 할리우드에 진출해 기고만장해서 있는 설레발은 다 치다가 <닌자 어새신> 이후 한국에서 십년째 삽질만 하다가 <자전차왕 엄복동>으로 사실상 커리어의 관짝에 못박고 있었던 비이기 때문에 모든 게 맞아떨어졌다. 사람들은 비를 놀리려고 <깡>을 소비했는데 어찌됐건 이런 소비행위 자체가 비의 화려한 재기를 위한 밑천이 되고 있다. 즐거움을 선사하지 못할 바에 우스운 사람이라도 되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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