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8일 화요일

2022.4.30. ‘유퀴즈’ 유재석의 ‘굳은 표정’이 말하려 한 것은 [한겨레S] 김내훈의 속도조절

 

‘유퀴즈’ 유재석의 ‘굳은 표정’이 말하려 한 것은

[한겨레S] 김내훈의 속도조절
윤석열 ‘유퀴즈’ 출연 논란

윤석열 당선자 출연한 방송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얼굴 나타나
제작진에 불만? 거물급에 부담?
‘황당 느낌’ 표정 드러났을 수도

  • 수정 2022-04-30 08:59
  • 등록 2022-04-30 08:59
지난 20일 방영된 티브이엔(tvN) 예능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럭>에서 진행자 유재석이 게스트로 나온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를 대할 때 표정이 화제가 되고 있다. 티브이엔 제공
지난 20일 방영된 티브이엔(tvN) 예능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럭>에서 진행자 유재석이 게스트로 나온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를 대할 때 표정이 화제가 되고 있다. 티브이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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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박근혜 정권이 추진했던 한국사 국정교과서의 대표 필진으로 초빙되었던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는 기자에게 성희롱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집필진에서 자진사퇴 의사를 밝혔다. 의혹 보도 다음날 아침에 그는 기자들 앞에서 사퇴를 선언하는데, 잘못을 저지르고 불명예스럽게 퇴진하는 사람의 표정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밝고 해맑은 표정과 미소로 일관했다. 그의 표정을 보고 최 교수가 어떻게든 편찬위에서 이름을 빼려고 일부러 구실을 만든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였다. 누리꾼들은 당시 짧게 유행했던 마이크로소프트 감정 분석 프로그램으로 최 교수의 표정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사퇴 의사를 밝히는 최 교수의 표정에서 행복 감정이 100%로 감지되었다.

표정이 모든 걸 말하지 못하지만…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폭탄테러를 일으키고 체포된 조하르 차르나예프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배심원들은 그가 죄책감을 갖고 진심으로 사죄하는지 여부를 두고 종신형과 사형 선고 사이에서 고민했다. 진심으로 사죄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차르나예프의 표정이었다고 한다. 그는 사과의 발언을 했지만 무표정으로 일관한 탓에 호의적이지 않은 판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신경과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에 따르면 이것은 완전히 틀린 접근이다. 감정을 객관적으로 감지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특정 감정과 특정 표정이 자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신화에 불과하다. 물론 기쁠 때 웃음이 터지거나 미소를 짓는다거나, 기분이 나쁠 때 입꼬리가 내려가는 등 기초적인 감정 표현으로서의 표정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단선적인 연결을 상정하기엔 사람마다 너무 다양하다. 아주 기쁘더라도 그것을 좀처럼 얼굴로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분노의 표현 형태는 눈을 질끈 감거나, 입을 꽉 다물거나, 안면이 일그러지거나 입을 크게 벌려 소리를 지르거나 하는 식으로 매우 다양하다. 실패, 좌절, 절망, 패배감 앞에서도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사람도 있다. 표정 관리를 잘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를 체득한 사람과 적극적인 표현을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를 체득한 사람은 같은 상황 앞에서 판이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남자다움’을 중시하는 체첸 문화권에서 성장한 차르나예프에게 있어서 그의 서늘한 무표정은 패배를 인정하는 경건함의 표시였을 수도 있다.

리사 펠드먼 배럿은 한 여성의 얼굴 클로즈업 사진을 보여준다. 그녀의 안면근육은 잔뜩 일그러져 있고 눈은 질끈 감았으며 입은 큰 소리를 지르는 듯 크게 벌리고 있다. 이 사진에 ‘공포’라는 캡션이 달려 있다. 사진과 캡션을 본 사람들은 자연히 그녀가 무언가 끔찍한 것을 보고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얼굴 클로즈업 사진이 아닌 그녀의 전신과 배경을 모두 보여주는 사진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진 속 얼굴의 정체는 세리나 윌리엄스로, 테니스 챔피언십 결승에서 비너스 윌리엄스에게 승리를 거둔 직후 주먹을 쥐고 있는 모습이다. 이제 그녀의 표정은 엄청난 기쁨의 표현이 된다. 이렇듯 똑같은 표정이라도 그것의 맥락에 따라 그 표정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감정은 극단적으로 달라진다. 요컨대 표정만으로 감정을 역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감정 분석 프로그램은 신빙성이 없다.

최근 방송된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진행자 유재석이 게스트로 출연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를 대할 때 표정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언제나 프로 방송인이자 희극인의 정신으로 미소를 띤 표정이나 진지하게 경청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표정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날 방송에서는 그답지 않게 굳어 있는 표정을 유난히 많이 노출했다. 오죽했으면 한편에서는 유재석의 표정을 문제 삼으며 그의 정치색을 추측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유재석마저 불편해하는 윤석열’을 강조하려 했다.

이에 관련하여 떠오르는 일이 한가지 더 있다. 문재인 정부 2년 특집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송현정 한국방송(KBS) 기자와 일대일 대담을 한 일이다. 대담 방송 직후 친문 성향 네티즌들로부터 항의가 쏟아졌다. 대다수는 인터뷰 질문에 관련한 불만이었는데, 그중 일부는 기자의 ‘호의적이지 않은’, 적대적으로까지 보이는 표정을 지적하며 ‘불량스러운 태도’를 문제 삼았다. 기자는 다소 억울했을 수도 있겠다. 단지 대통령 앞에서 긴장한 표정이었을 수도 있고, 대통령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 하나하나를 제대로 듣기 위해 모든 신경을 기울이는 표정이었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방송에서 드러난 표정과 제스처만으로 그 사람의 심경, 감정, 태도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비호감? 불만? 부담감?

유재석의 표정도 마찬가지다. 그의 굳은 표정이 윤 당선자에 대한 비호감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다양한 맥락을 살펴야 한다. 프로그램의 간판인 자신에게 녹화 직전까지도 일언반구 없다가 돌연 대통령 당선자 인터뷰를 진행하라 시킨 제작진에 대한 불만을 미처 숨기지 못한 것이었을 수도 있고, 전혀 준비가 안 된 채 거물을 인터뷰해야 하는 부담감이 드러난 것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프로그램 취지와 방향과는 다른 회차에 대한 우려였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그의 바로 앞의 ‘쩍벌’ 자세를 두고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당황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유재석의 심정을 간접적이나마 추론할 수 있는 방법은 그가 어떠한 또 다른 상황에서 그와 같은 넋 나간 듯한 표정을 보였는지를 찾아보는 것일 테다. 프로 방송인답게 그러한 표정을 드러낸 방송이 많지 않아서 찾기 쉽다. 내가 찾아낸 건 이거다. <무한도전>의 어느 회차에서 유재석은 게스트로 출연한 코미디언 김영철에게 이상형이 누구냐고 물었다. 김영철이 배우 신민아라고 말했을 때, 대답을 들은 당시 유재석의 표정이 이번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윤 당선자를 만났을 때 지은 표정과 매우 비슷했다.

2022.4.9. 약자 조롱해놓고 ‘웃자고 한 말’? 혐오는 블랙유머가 아니다 [한겨레S] 김내훈의 속도조절

 

약자 조롱해놓고 ‘웃자고 한 말’? 혐오는 블랙유머가 아니다

[한겨레S] 김내훈의 속도조절
위험한 농담

인종주의, 난민, 기후변화, 백신 등
다양한 주제로 퍼지는 혐오 표현
문제 되면 “농담”이라며 잘못 회피
‘표현의 자유=혐오의 자유’ 아니야

  • 수정 2022-04-09 08:59
  • 등록 2022-04-09 08:59
캐나다 출신 유명 코미디언 놈 맥도널드가 지난 2016년 영화제 ‘캐나다 스크린 어워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캐나다 출신 유명 코미디언 놈 맥도널드가 지난 2016년 영화제 ‘캐나다 스크린 어워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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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 62살의 나이에 암으로 안타깝게 사망한 놈 맥도널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코미디언이다. 그를 처음 소개한 이전 글(2021년 8월14일치)에서도 썼듯이, 그는 무척 아슬아슬한 유머를 구사하기 때문에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망한 뒤에도 끊임없이 업로드되는 수많은 유튜브 영상으로 기억되고 동료 연예인들에게 위대한 코미디언으로 회자되는 ‘코미디언들의 코미디언’으로 남아 있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맥도널드의 아슬아슬한 유머가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다소 불편할 수는 있을지언정 불쾌하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이른바 ‘위험한 소재’를 가지고 능숙하게 조크를 던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으레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들지만 결국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그리고 대체로 그 웃음은, 맥도널드의 조크를 들으면서 잠시나마 조마조마했던 자신을 향한 웃음으로 귀결된다.

‘위반’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유머

맥도널드는 사망 직전까지 동료 연예인을 한명씩 불러다가 말 그대로 아무 말이나 나누는 팟캐스트 방송을 진행했다. 어느 날 방송에서 그는 게스트에게 미국 역사상 최악의 연쇄 아동 살인범 앨버트 피시라는 인물에 관해 설명하고 있었다. 피시는 최소 셋 이상의 아이를 납치해 끔찍하게 고문한 뒤 식인 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맥도널드는 앨버트 피시에게 희생당한 피해자들의 유형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거예요. 피시가 주로 희생양으로 삼았던 사람으로는 정신장애인이 있었고요, (중략) 자, 지금부터 제가 하는 얘기 듣고 절대 웃으시면 안 됩니다! 이 부분에서 웃으면 큰일 난다고요. 희생양은 주로 정신장애인이랑 흑인들이었어요.”

이 말을 들은 게스트는 곧바로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맥도널드는 옆에서 “이봐요, 그게 뭐가 재밌다고 웃는 거예요? 맙소사, 그 부분이 최악인 건데!”라고 했고, 게스트는 그의 핀잔을 들으면 들을수록 터져나오는 웃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는 무엇이 그렇게 웃겨서 그토록 심각하고 잔인하고 끔찍한 이야기를 듣는 와중에 웃음을 못 참은 것일까? 맥도널드가 한 말에는 그 어떤 유머 코드도 없었다. 참혹한 사실들의 열거만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청중들은 꼼짝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것을 두고 맥도널드가 끔찍한 사건을 희화화했다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그가 여기서 희화화한 것은 참혹한 살인 사건 및 인종주의가 아니다. 그가 의도한 것은 잘못 말하면 엄청난 비난을 받아야 하는 민감하고 위험한 소재를 가지고 농담할 때 극도로 조심스러워해야 하는 불편한 분위기를 희화화하는 것이었다.

맥도널드식 코미디의 탁월함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팬들이 그를 평가할 때 빠뜨리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이 그가 이른바 ‘성역 없는 유머’, ‘용감한 유머’, ‘금기를 깨는 유머’, ‘앞뒤 재지 않는 유머’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확실히 맥도널드의 코미디는 ‘위반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그 ‘위반’이라는 것에 도사리고 있는 함정에 맥도널드는 빠지지 않았다. 그 함정이란, 금기를 깬답시고 할 말 못 할 말 가리지 않고, 뭇사람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역사적 트라우마를 희화화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조롱하면서 블랙유머라고 우기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위반의 가치는 진보 자유주의 세력에 의해 ‘저항적’인 것으로 기려져왔다. ‘당연히 지켜야 할 것’으로 받아들여왔던 사회적 의례, 통념 등에 의문을 표시하고 반기를 드는 행위는 이데올로기의 질곡으로부터 해방되는 출발점으로 여겨졌다. 그렇게 ‘표현의 자유’가 지고의 가치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권위에 저항해야 한다’라는 당위는, 지금까지 정치적·사회적 운동으로 겨우겨우 쌓아 올린 자유주의적 가치를 위협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향한 혐오 코드가 다분한 발언을 던지고선 ‘성역 없는 신랄함’을 참칭하는 사람이 많고, 그렇게 옹호해주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윤리적 지탄을 받을 것 같으면 유머, 농담이라는 방패 뒤에 숨는다.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를 방어적으로 활용할 뿐만 아니라 혐오를 지양하려 하는 시도들에 표현의 자유를 해치려 한다는 비난으로 맞불을 놓는다.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와 함께 얽힌 위반의 가치는 특히 영미권의 젊은이들 사이에 과격한 극우주의적 혐오를 퍼뜨릴 수 있는 쓸모 있는 알리바이로 기능한다.

소셜미디어에 전시된 언어도단

웃자고 한 농담에 발끈하는 것은 젊은이들에게는 특히 민망한 모습으로 비친다. ‘쿨하지 못한’ 것, 옹졸한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유머는 유머로 받아들여라’라는 말은 무척 위험한 말이다. 웃자고 한 농담이라는 것이 모든 발언을 허용하는 것이 되어선 안 된다. 혐오 표현과 같이, 사회에서 용인될 수 없는 발언은 사회에 노출되어서도 안 된다. 최소한의 규범, 정도, 금기를 무시한 과격한 발언을 농담이라는 이유로 웃어넘기는 일이 반복되면 온갖 사악하고 유해한 메시지들이 유머로 둔갑하여 담론을 오염시키게 된다.

영미권 인터넷에서는 벌써 다음과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다. 인종주의, 난민, 기후변화, 백신 혹은 홀로코스트 등 역사적 트라우마에 관련한 천부당만부당한 언어도단, 몰상식의 극치의 망언을 소셜미디어에 전시한다. 이에 대한 반응에 따라, 해당 게시물을 올린 사람은 게시물의 성격을 사후 규정한다. 동의하는 댓글이 많으면 진지한 논평이다. 비난 댓글이 많으면 농담이나 풍자였다고 궤변을 뇌까리면서 발끈한 사람들을 바보로 만든다. ‘예능을 다큐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온갖 해롭고 위험한 메시지들이 소셜미디어에 게시되면 사람들은 그것이 신랄한 풍자인지, 진지한 멍청함의 소산인지, 그저 ‘어그로’를 끌기 위함인지 감별부터 해야 하게 되었다. 그 메시지의 유해성에 대한 진지한 논박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 것이다.

2022.3.19. 포켓몬빵 열풍의 역설…“미래가 서서히 중단되고 있어서” [한겨레S] 김내훈의 속도조절

 

포켓몬빵 열풍의 역설…“미래가 서서히 중단되고 있어서”

[한겨레S] 김내훈의 속도조절 _ ‘미래 없음’의 시대

포켓몬스티커·LP판 등 복고 열풍
어두운 미래 전망에 과거 바라기
변화·상상력 고갈 재활용이 판쳐
사이버렉카의 ‘이슈팔이’ 악용도

  • 수정 2022-03-19 08:06
  • 등록 2022-03-19 08:06
포켓몬 빵 품귀 현상 등 복고 열풍에서 변화와 성장을 멈춘 현대사회의 단면을 읽을 수 있다. 사진은 11일 한 편의점에서 판매 중인 ‘포켓몬 빵’. 연합뉴스
포켓몬 빵 품귀 현상 등 복고 열풍에서 변화와 성장을 멈춘 현대사회의 단면을 읽을 수 있다. 사진은 11일 한 편의점에서 판매 중인 ‘포켓몬 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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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포켓몬 빵과 포켓몬 스티커 모으기가 유행한다. 내가 여덟살, 아홉살 때 유행했던 것들이다. 빵이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많은 사람이 편의점 앞에서 긴 줄을 서기까지 한다. 얼마 전까지는 영화 <매트릭스>가 극장에 걸려 있었고 프로게이머 임요환과 홍진호의 스타크래프트 경기가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세기말 패션이 재조명받고 음반시장에서는 뜻밖에도 엘피(LP)판이 유행하고 있다. 이른바 레트로(복고) 열풍이라고 한다.

유행이 10년 이상 지속되면 그것은 유행이 아니라 주류의 문화로 안착했다고 함이 정확할 것이다. 필름 사진이 부활하고, 과거 기술적 한계로 말미암은 조야한 질감을 매력적인 스타일로 되살리는 저예산 비디오게임, 뮤직비디오 등이 수년째 인기를 끈다. 1990년대 톱스타였던 연예인들은 여전히 톱스타로서 방송가를 점령하고 있고, 20여년이 지난 가요를 리메이크한 노래가 음원차트를 석권한다. 때아닌 트로트도 전국을 강타한다. 원더걸스, 티아라 등이 복고를 소환한 뒤, 그리고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특집을 계기로 한국 대중문화가 본격적으로 과거의 유령에 의해 잠식된 이래 ‘대중문화를 강타한 복고 열풍’류의 헤드라인 기사는 매년 빠짐없이 등장한다. ‘열풍’이 아니라 ‘공기’ 자체가 된 지 오래다.

어두운 미래, 과거 그리워하는 시대

새로운 것은 없고 리메이크나 리마스터만 대중문화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변화와 성장과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 고갈되고, 이제 남은 것은 재활용뿐인 것 같다. 선진국들에서 문화는 사실상 변화와 성장을 멈췄다고 해도 무방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영국의 문화비평가 마크 피셔는 이를 두고 “미래가 서서히 중단되고 있다”(slow cancellation of the future)고 표현했다. 이른바 ‘미래 없음’의 시대다. 앞이 보이지 않아 엄청난 불안감에 사로잡히게 되면 으레 뒤를 돌아보게 된다. 지나온 일이기 때문에 확실한 과거에서부터 일정한 안정성을 희구하며, 과거를 어렵게 살았지만 적어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었던 ‘호시절’로 재평가하는 향수로써 현재의 불안을 상상적으로 해결하려 하는 대중문화 텍스트에 열광한다.

오늘날 대중문화에 나타나는 향수를 연구하는 미국의 문화연구자 그래프턴 태너는 마크 피셔의 명제에서 더 나아가 향수에 젖어 무기력해진 시대를 가리켜 “시간이 시계를 잃어버렸다”(The hours have lost their clock)고 표현한다. 말인즉 시간의 경과가 시침과 분침으로 표현되는 것과, 시간의 흐름 그 자체가 분리되어버렸다는 것이다. 태너에 따르면, 갈수록 일상과 노동시간의 구분이 희미해짐에 따라 현대인은 점점 더 시침과 분침에 얽매여 살아야만 하게 되었고 그 결과 통시적인 시간의 흐름을 망각하게 되었다. 시간관념은 상실되고 지금 이 순간 여기의 나의 상태, 나의 기분만 남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의 나의 형편, 나의 정서가 과거의 기억에까지 소급되며 평가의 기준이 된다.

시간관념의 상실은 지금 당장의 나의 감정 상태, 나의 욕망을 근거로 모든 것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을 합리화한다. ‘지금은 맞으니까 그때는 틀렸다’거나, ‘지금 틀렸으니까 그때도 틀렸다’는 식이다. 모두 판단 기준은 지나온 역사를 통해 누적한 경험과 기억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기분이다. 우리나라 정부가 도대체 언제 코로나19 백신을 들여올 거냐며 잔뜩 불만을 표하다가, 이 백신은 좋고 저 백신은 불안하다며 잔뜩 불만을 표하다가, 접종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며 잔뜩 불만을 표하다가, 접종률은 올라갔지만 원치도 않는 백신을 강제한다며 잔뜩 불만을 표하다가, 서구 국가들이 그동안 어떠한 아비규환을 겪었는지 다 봐놓고도 서구 국가들의 지금 상황과 비교하며 한국 정부의 방역이 완벽히 실패했다고 비난한다. 집값 폭등으로 매우 불만이지만, 상승세가 꺾이기 시작하면 그 전에 ‘영끌’로 빚을 내서 집을 산 사람들의 불만이 부각된다. 이러한 언론 보도들을 보면서, 대중은 어찌 됐건 부동산과 관련한 강한 불만을 누적한다. 이 모든 불만과 비난이 정말 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가능할까 싶지만 지금 당장의 내 기분이 모든 판단의 준거가 되면 가능하다.

‘지금’에만 집착하는 세대

한국 청년들의 시간관념의 상실을 가속화하는 것은 엉뚱하게도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온갖 사이버렉카들이다. 남의 콘텐츠를 가져다가 조회수 장사로 도용하는 사이버렉카는 오래전 과거 웹상에서 한두 차례 소란이나 열광을 일으켰던 유머 콘텐츠나 목격담, 경험담 등을 다시 건져 올려 요즘 일어난 일로 둔갑시켜 네티즌들로부터 또 한 차례의 반응을 유도한다. 이것이 단순히 ‘뒷북 유머’ 게재에 머무른다면 문제랄 것도 없지만, 몇 해 전 사건을 채굴해서 최신 화제인 것처럼 눈속임하는 ‘이슈팔이’가 사회에 끼치는 해악은 매우 크다. 이미 해명됐거나 해결된 이슈와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불필요한 갈등이 다시 발생하고, 이에 따라 때아닌 논쟁과 팩트체크를 반복해야 해서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한다. 사이버렉카는 팩트체크에 관심이 없다. 사이버렉카를 보며 더 이상 문제가 아닌 일에 대한 엉뚱한 분노를 키운 사람들은 팩트체크를 접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설사 팩트체크 기사를 접하더라도 분노를 누그러뜨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 지금 당장의 기분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과거와 미래는 상실되고 지금만 남았다. 하지만 ‘지금’이란 인지하고 붙잡으려 하는 순간 과거로 지나가버리는 것이며, 지나간 과거와 비교하고 다가올 미래를 예측함으로써만 윤곽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그 자체로 완전히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따라서 유령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아무런 내용도 없는 유령만 붙들고 정치를 소비하고 투표한 결과가 오늘의 한국이다. 그리고 이제 불길한 미래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는지 2번에 투표한 사람들 사이에서 벌써부터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김내훈 | 미디어문화 연구자. 첫 책 <프로보커터>에서 극단적 도발자들의 ‘나쁜 관종’ 현상을 분석

2022.2.26. ‘2030 분노와 혐오 선동’한 권력은 무엇을 돌려줄까 [한겨레S] 김내훈의 속도조절

 

‘2030 분노와 혐오 선동’한 권력은 무엇을 돌려줄까

[한겨레S] 김내훈의 속도조절
극우정치가 힘을 키우는 법

‘헬조선’ 폭발이 탄핵 동력 됐지만
사회적 불만 고스란히 남게 되자
혐오 악용해 정치력 키운 세력에
‘이런 정치가 쉽다’ 교훈 줘선 안돼

  • 수정 2022-02-26 07:59
  • 등록 2022-02-26 07:59
지난 2019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연설 예정이던 극우 논객 마일로 야노풀로스를 저지하기 위해, 시민들이 울타리를 치고 항의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지난 2019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연설 예정이던 극우 논객 마일로 야노풀로스를 저지하기 위해, 시민들이 울타리를 치고 항의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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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2030의 분노’라는 것이 여기저기서 거론된다. 무엇에 대하여 그렇게들 단단히 화가 났는지에 관한 진단은 소위 젠더 갈등, 불공정, 위선, ‘내로남불’, 거주불안에 대한 불만 등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 저 키워드들을 거론하기 전에, 나는 어떤 집단적인 불만이 불거지면 그 불만의 성격이 무엇인지에 관한 이야기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사회에서 문제적인 것으로 부각되는 집단적 불만은 크게 잡아 네 가지 부문으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 사회적 불만, 경제적 불만, 정치적 불만, 문화적 불만이 그것이다.

헬조선→불공정, 이름 바꾼 분노

저 네 가지 성격의 불만을 아주 거칠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사회적 불만은 사회 구조 자체에 대한 불만이며, 높아지는 고용 문턱, 계층 장벽과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다. 어찌 보면 가장 큰 범주의 불만이라 할 수 있다. 정치적 불만은 자신의 불만과 요구를 관철할 경로가 보이지 않고 기성 정치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의지를 결여한 것으로 보일 때 발생한다. 경제적 불만은 나에게 돌아오는 몫에 관련한 불만이다. 문화적 불만은 자신이 추구하는 일상의 삶의 방식이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될 때, 간섭받고 침해당한다고 느낄 때 발생한다. 이 불만들이 완전히 독립적으로 불거지는 경우는 거의 없고, 서로 조금씩이나마 연관되어 있다. 특히 이른바 2030의 분노는 저 불만들이 모두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문제다.

이른바 젠더 갈등, 불공정이라는 말이 나라 전체를 들썩이게 만들기 이전에, 박근혜 정권 때 유행했던 ‘헬조선’이라는 말은 한국 사회를 향한 강한 원한과 분노와 불만이 높은 밀도로 응집된 말로 연일 뭇사람의 입에 올려진 바 있었다. 그런데 2016년 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헬조선 문제가 박근혜 정권 고유의 문제로 급하게 환원되었다. 말인즉 박근혜만 물러나고 정권이 교체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따라서 ‘박근혜 퇴진’은 당장 현실화를 상상할 수 있는 약속이 되어 거대한 숫자의 청년을 촛불시위에 동원하는 기치가 되었다. 이때 헬조선에 대한 사회적 불만은 정권 퇴진 요구로 표상되는 정치적 불만으로 응집했다.

정권 퇴진과 교체는 정치변혁이었기 때문에, 사회변혁을 요구하는 사회적 불만은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았다. 문재인 정권 2년차까지 적폐청산이라는 기호가 사회적 불만을 잡아줬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적폐청산 헤게모니’는 20대에서부터 깨지기 시작했고 다시 사회적 불만은 이름을 잃은 채 표류하게 되었다. 그리고 2020년 들어 그 불만들에 새롭게 붙여진 이름이 불공정에 대한 성토, 반-위선, 내로남불에 대한 원한, 반페미니즘 등이다.

미국 이야기로 잠시 우회해보자. 변화와 희망의 상징이었던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 미국 청년들은 전혀 해결되지 않은 고질적인 의료보험 문제, 대학 등록금으로 인한 빚, 갈수록 심각해지는 인종차별, 고용불안 등에 대한 원한을 키우고 있었다. 민주당 대선 주자로 나선 힐러리 클린턴은 오바마 행정부의 장관 출신일 뿐만 아니라 월스트리트와 유착한 정치인이라는 인상까지 겹친데다 청년들이 지지했던 버니 샌더스와의 경선에 석연찮은 부분도 있었기 때문에 청년들로부터 강한 반감을 받았다. 이러한 탓에 민주당 경선을 전후로 미국 청년들 사이에서는,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일지라도 힐러리 클린턴을 악마화하고 조롱하는 분위기가 강하게 형성됐다.

트럼프의 집권전략 ‘혐오 장사’

그렇게 청년들이 클린턴을 위시한 기득권 리버럴 세력을 향한 원한과 분노를 키워가던 가운데 이러한 시류를 타서 ‘혐오 장사’를 시도하는 사람이 다수 나타났다. 1984년생으로 당시 삼십대 초반이었던 마일로 야노풀로스라는 청년은 극우 성향 인터넷 언론 <브라이트바트 뉴스> 필자였는데, “페미니즘은 암이다”(feminism is cancer)라는 문구를 새긴 티셔츠를 만들어 팔고, <고스트버스터즈> 리메이크작(2016) 여성 출연진을 향한 집단적 인신공격을 선동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대안우파라는 말을 사실상 만든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는 리처드 스펜서는 극단적인 이민자 배격 및 백인우월주의와 반유대주의를 설파하고 “평화로운 인종 청소”를 단행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며 과격파 추종세력을 모았다.

클린턴과 민주당 리버럴 세력은 뚜렷한 의제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정치적 올바름의 측면에서 트럼프 및 공화당과 차별화하고자 애썼다. 사회적 문제와 불만을 호명하는 데 소홀한 채 ‘최초의 여성 대통령’ 강조와 젠더별 화장실 이용, 불법 이민자들을 온정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머무르며, 이에 동조하지 않거나 시큰둥한 유권자들에게는 ‘명예 남성’ 혹은 ‘명예 백인’처럼 인종주의자 낙인을 붙이기에 바빴다. 마침 비디오게임을 즐겨 하던 일부 이십대 남성 사이에서는 전부터 정치적 올바름 등이 자신들만의 문화에 간섭하고 훼방을 놓는다는 불만을 키우고 있었는데, 이러한 맥락에서 상당수 청년이 정치적 올바름과 페미니즘, 이민자 등에 대한 증오 캠페인을 선동하는 자들에게 동화되기 시작했다. 이에 휩쓸린 여성도 적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청년들이 수년간 누적해온 사회적 불만, 경제적 불만, 정치적 불만은 문화적 불만으로 치환되고 표현되게 되었다. 그리고 문화적 불만만이 청년들의 불만의 전부인 양, 언론은 보도했고 논단은 비평했다.

야노풀로스는 자신과 트럼프를 팻 뷰캐넌과 비교했다. 뷰캐넌은 1992년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를 위협했던 정치인으로, 냉전 종식 이후 적은 내부에 있으며 자유주의자, 즉 리버럴들이 바로 그 적이라고 주장하는 연설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리버럴들의 문화적 자유주의 의제, 즉 자유로운 낙태, 여성 해방, 동성애자의 권리 증진과 무신론자의 증가 등이 ‘하느님의 나라’에 엄청난 위협이 되기 때문에 이들을 상대로 미국 정치가 ‘문화전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야노풀로스는 트럼프와 함께 자신을 뷰캐넌이 벌이고자 했던 문화전쟁의 새로운 선봉장으로 정의하며 그의 혐오 선동을 현대판 문화전쟁의 전투로 포장했다. 다만 뷰캐넌의 문화전쟁이 분쇄하려던 적은 페미니즘과 소수자의 권리 증진으로 인한 분방함, 방만함이었다면, 현대판 문화전쟁의 적은 페미니즘과 정치적 올바름으로 인한 자유의 침해다. 그 자유는 물론 혐오할 자유다.

여하튼 트럼프가 승리했다. 트럼프에게 투표한 사람이 전부 문화전쟁 때문에 투표한 것은 아니었을 테다. 어찌 됐건 야노풀로스, 스펜서 같은 사람이 열렬히 응원했던 트럼프가 당선됐고, 이들은 더 기고만장하며 영향력과 세를 키웠다. 정치적 올바름을 두고 대학생들은 더 심하게 분열했고 혐오 범죄, 인종차별은 더욱 심각해졌다. 세계 곳곳에서 ‘여자 사냥’ 일지를 블로그에 기록하는 매우 악질적인 여성혐오 콘텐츠로 두터운 팬층을 확보했던 자칭 ‘픽업 아티스트’ ‘루시 브이(V)’는 트럼프의 당선에 뛸 듯이 기뻐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드디어 나와 같이 여자들을 외모로 평가하며 10점 만점으로 점수를 매기는 대통령을 맞이하게 됐다.”

극우주의가 결집하는 방식

5년쯤의 시차를 두고 한국에서도 매우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극우 포퓰리즘 연구자 카스 뮈더(무데)에 따르면 극우주의가 결집하는 논리는 주로 문화적 반발이다. 이름 없이 표류하는 사회·경제적 불만을 특정 집단을 향한 불만으로 전환시켜 그 집단을 향한 혐오와 공격을 선동하는 사람이 세를 넓힌다는 이야기다. 지금 한국의 몇몇 정치인들이 이런 식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고 증폭된 문화적 불만에 영합하여 손쉽게 대중의 지지와 득표율을 끌어올리려 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이런 정치인을 열렬히 응원하는지를 봐야 한다. 그들이 응원하고 지원했던 정치인이 당선됐을 때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더 설쳐대고 기고만장할지 상상해봐야 한다. 혐오하고 배제하는 정치가 쉽고 확실한 방법이라는 교훈을 줘서는 안 된다.

2025년 6월 26일 목요일

2022.2.5. 정용진 쏘고 윤석열 받은 ‘멸치와 콩’, 왜 스테디셀러 못 됐나 [한겨레S] 김내훈의 속도조절

 

정용진 쏘고 윤석열 받은 ‘멸치와 콩’, 왜 스테디셀러 못 됐나

[한겨레S] 김내훈의 속도조절
멸콩챌린지와 개 호루라기

정이 쏘고 윤이 받았던 해시태그
특정그룹 동원하는 ‘개호각’ 기능
나경원 등이 공개 캠페인 나서자
호각 기능 멈추고 소음으로 끝나

  • 수정 2022-02-05 06:59
  • 등록 2022-02-05 06:59
2022년 1월8일 국민의힘이 공개한 윤석열 대선 후보의 장보기 사진. 윤 후보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멸치’ ‘#콩’ 등의 해시태그를 달아 ‘멸공’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제공
2022년 1월8일 국민의힘이 공개한 윤석열 대선 후보의 장보기 사진. 윤 후보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멸치’ ‘#콩’ 등의 해시태그를 달아 ‘멸공’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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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초, 때아닌 ‘멸공’ 논란으로 한국 사회가 들썩였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 저 ‘때아닌’이라는 말이라는 것도 때아닌 말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정치 후진국 시절 북풍, 색깔론 등 온갖 추한 형태의 정치를 목격했던 사람들이 보기에 ‘종북’보다도 오래된 멸공이라는 말이 지금 정치인들의 입에 올려지는 일 자체가 불쾌한 기시감이 들게 만드는 것일 테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에 태어나 저 구시대의 유물과 같은 단어를 전혀 접하지 못한 채 성장한 사람들에게는 멸공이 오히려 새롭고 신선한 정부 여당 공격의 레토릭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이는 간단한 단어 하나에 여당 인사들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고 왠지 미운 상대의 아픈 곳을 한대 더 때리는 것 같은 즐거움을 느꼈을 테다.

‘멸콩’은 왜 더 이어지지 못했나

멸공 논란을 쏘아 올렸던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공개사과를 하면서 짧은 소동이 일단락된 형국에 다시 이 이야기를 꺼내는 건 당연히 뒷북치는 일이다. 여기서는 뒷북이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마트에서 멸치와 콩을 사고 소셜미디어에 해시태그로 #멸치와 #콩을 쓰는 해시태그 릴레이 혹은 챌린지가 왜 길게 이어지지 못했는가에 관한 생각이다.

인간은 들을 수 없고 개들만 들을 수 있는 음역대의 고주파음을 내는 호루라기가 있다. 일반적으로 개를 훈련시키거나 개의 집중을 끌어야 할 때 쓰는 물건이다. 이 개 호각(dog whistle)은 오늘날 정치 커뮤니케이션 논의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용어다. 개만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알아듣는 사람만 알아듣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고 논란이 따를 이유가 없을 것 같은 무난한 메시지에 매우 위험한 메시지를 교묘히 약호화하여 그것을 알아듣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동원명령을 내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을 가리켜 개 호각이라고 한다. 특정 집단에게 ‘개 호각을 분다’(dog whistles to)라는 말처럼 동사형으로 쓰기도 한다.

개호루라기 효과를 내던 ‘멸콩 챌린지’는 공개 캠페인 전환 뒤, 소리 없이 그 효능을 잃었다. 각 인스타그램 갈무리
개호루라기 효과를 내던 ‘멸콩 챌린지’는 공개 캠페인 전환 뒤, 소리 없이 그 효능을 잃었다. 각 인스타그램 갈무리

개 호각의 사례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그가 입양한 반려견 ‘플로키’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그런데 하필 견종이 시바견이다. 시바견은 머스크 자신이 ‘아버지’를 자처했던 암호화폐 ‘도지코인’의 상징이다. 이런 전후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 머스크가 올린 사진은 단지 한 마리 귀여운 개일 뿐이다. 하지만 하루하루 요동치는 암호화폐 가격에 전전긍긍하는 투자자들이 보기에 머스크가 올린 개 사진은 그 자체로 긴급 동원명령이 되어버린다. 난데없이 ‘플로키’ 화폐도 출시하는 등, 머스크가 올리는 메시지에 어떤 코드가 숨어 있는지, 수많은 사람이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촌극이 멈추지 않고 있다.

이 밖에 가장 교과서적인 사례로는 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슬로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가 있다. 이 직관적인 구호는 일견 과거의 영광을 되찾자는 단순한 메시지로 보인다. 하지만 방점이 ‘다시’에 찍혀 있다는 점에서 ‘지금은 위대하지 않다, 그럼 누구 때문에 위대하지 않게 된 것인가? 최근 들어 물밀듯 들어온 이민자들 때문일 것이다’라는 추론을 유도한다. 적어도 인종차별주의자, 백인우월주의자들만큼은 개만 들을 수 있는 호각처럼 저 코드화된 메시지를 포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숨은 메시지를 포착한 사람들끼리 유대감을 키운다.

정용진 부회장이 소셜미디어에 뜬금없이 멸공을 거론한 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신세계 이마트에서 조림용 멸치를 카트에 담는 모습의 사진과 함께 해시태그 ‘#달걀 #파 #멸치 #콩’을 개인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이에 대해 정용진 부회장에 대한 지지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더불어 현 정부와 여당에 대한 색깔론 공세를,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한 채 비겁한 방식으로 획책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따랐다. 윤석열 후보는 당연하게도, 멸치 육수랑 콩국을 해 먹으려고 산 것뿐이라고 해명하며 선을 그었다.

찬물 끼얹은 건 되레 내부의 적

정용진 부회장이 쏘아 올리고 윤석열 후보가 본격화한 멸공 해시태그 릴레이는 어쩌면 훨씬 더 지구력이 있는 유행이 될 수도 있었다. 과장을 보태자면 2020년대 한국의 새로운 ‘십자가 밟기’가 되지 않으리란 법도 없었다. 장 볼 때 으레 사는 멸치와 콩 사진을 올린 뒤 첫 글자인 ‘#멸콩’을 적는다. ‘알아보는 사람만 알아보는’ 해시태그를 알아본 사람이 ‘아, 이 사람도 나와 같구나’라는 반가움을 안고 해시태그 릴레이에 동참한다. 그렇게 소셜미디어에 #멸콩을 게시한 사람들 간에 유대감이 발생한다. 한편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에게는 ‘마트에서 산 것들 올렸을 뿐’이라고 하며 상대를 옹졸한 사람, 제 발 저린 도둑과 같은 사람으로 몰 수 있다. 이에 대처하기란 굉장히 까다롭다. 이 유행이 일정 기간 이상 지속된 이후부터는, 릴레이에 동참하지 않은 사람들은 어떤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분위기마저 형성될 수도 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젊은 우파 네티즌들 사이에서 거대한 유행으로 번질 수 있었던 릴레이에 고춧가루를 뿌린 사람은 다름 아닌 내부로부터 나왔다. 나경원 전 의원이 ‘신나라’ 하며 본인 소셜미디어에 해시태그 릴레이를 이으며 ‘멸공! 자유!’를 적었고, 김진태 전 의원이 다 함께 멸공 캠페인을 벌이자고 쓴 것이다. ‘멸콩’에 숨겨져 있던 메시지를 이렇게 대놓고 드러내면 개만 들을 수 있었던 호각은 기능을 멈추고 그냥 소음이 되어버린다. 무엇보다, 해시태그에 언짢게 반응하는 사람을 옹졸한 사람으로 만들 수 없게 되어 재미가 반감된다. 시쳇말로 ‘짜치게’ 되었다. 두 전 의원이 눈치 없이 나댄 덕분에 극히 위험할 수 있었던 유행이 빠르게 식어버렸다.

2022.1.15. 아이 빌리브…어설픈 동정론 전략이 부른 부메랑 [한겨레S] 김내훈의 속도조절

 

아이 빌리브…어설픈 동정론 전략이 부른 부메랑

[한겨레S] 김내훈의 속도조절 | 조롱과 풍자 리스크
악수가 된 정치인 부인의 사과에 풍자 섞은 ‘밈’ 잇따라
조롱차단에 언론 전략적 개입도…풍자의 맥락 중요

  • 수정 2022-01-15 18:59
  • 등록 2022-01-15 18:59
지난해 12월26일 서울 용산구 용산전자상가에서 한 시민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배우자 김건희씨의 허위 이력 의혹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26일 서울 용산구 용산전자상가에서 한 시민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배우자 김건희씨의 허위 이력 의혹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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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부인 김건희씨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정작 사과하고 해명해야 할 대목은 많이 나오지 않았다. 짧은 사과문에 ‘남편’이라는 말만 열세차례 언급하며 남편 윤석열을 처음 만났을 때 인상 등을 이야기하자 여론의 반응은 대국민 사과라기보다는 남편에게 보내는 영상 메시지에 가까웠다는 조소 섞인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감정에 호소하여 동정론을 유발하려는 전략은 리스크가 매우 크다. 조금이라도 허술함을 보이면 대중으로부터 어마어마한 비웃음과 조롱을 받게 된다. 특히 정치인의 경우,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은 두려움이나 증오의 대상이 되는 것보다 타격이 훨씬 클 수 있다. 대응이라도 하려고 하면 옹졸한 사람이라는 비아냥이 더해지는 역효과를 야기한다. 가만히 놔두면 조롱의 전파 속도와 수위는 점점 더 올라간다. 정치에 전혀 무관심한 사람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마음껏 비웃을 수 있는 대상이 생기면 기꺼이 조롱의 대열에 가세한다.

조롱거리 된 ‘동정론 유발’ 전략

조롱과 풍자의 유희를 즐기는 젊은 누리꾼들이 김건희씨의 저 어설픈 사과 발표를 가만히 둘 리 없었다. 반문·반민주당 정서가 지배적이지만 동시에 반윤석열 여론도 강세인 인터넷 커뮤니티 ‘에펨코리아’의 한 이용자는 김건희씨의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1분 안쪽으로 편집하고 가수 신승훈씨의 노래 ‘아이 빌리브’(I believe)를 삽입한 영상을 올렸다. 김건희씨의 사과문 발표가 매우 어설프게 감정에만 호소하다 우스꽝스럽게 실패했음을 풍자한 것으로, 영상을 본 사람들은 ‘어이없다’ ‘대선은 기울었다’며 윤 후보와 김씨를 비판하는가 하면, ‘눈물 나는 짠한 러브스토리’ ‘너무 보기 좋은 부부의 모습이네요’라며 김씨의 호소에 감정이입이라도 한 것처럼 풍자에 풍자를 얹었다. 해당 영상은 순식간에 조회 수 100만을 넘겼고, 여러 유튜브 채널과 다른 커뮤니티 사이트로 공유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영상을 본 실제 사람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이 빌리브’ 영상의 유행을 계기로 윤 후보와 김씨에 대한 조롱의 기류가 더욱 거세지던 가운데 모 언론이 총대를 메고 진화에 나섰다. 해당 언론은 앞서 말한 노래에 대한 누리꾼의 두가지 반응(비난과 비아냥)을 대결(‘vs’) 구도에 넣어서 보도했다. 마치 영상을 두고 누리꾼들끼리 의견이 갈린 것처럼, “일부 누리꾼은 ‘음악과 영상의 싱크로율에 감탄했다’고 댓글을 단 반면, ‘방송 사연 읽냐’며 비판하는 댓글도 있었다”는 식으로 서술한 것이다.


누리꾼들은 “이게 조롱인지도 모르냐, 독해력 참담하다”며 기자를 비웃었다. 하지만 언론사 기자가 그렇게까지 눈치가 없는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론 분위기를 전혀 못 읽는 척하면서 획책한 바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해당 영상은 조롱과 풍자를 의도하여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것이다. 단순히 한 누리꾼이 ‘여기에 신승훈 노래를 입히면 잘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순수한 호기심으로 아무런 의도 없이 만든 것으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적어도 이수정 국민의힘 당시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의 “눈물 쏟을 대목이 많다” “당사자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감상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옹호 논리의 물질적인 근거처럼 보이게는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조롱을 조롱이 아닌 것으로 만들려 했던 전략적 효과는 물론 미미했다. 하지만 전후 사정에 대한 이해 없이 해당 기사만 접한 사람들은 ‘아이 빌리브’ 영상과 그에 대한 반응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극소수나마 이런 사람이 있기만 하다면 어쨌든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봐야 한다.


이렇듯 조롱과 풍자에는 항상 리스크가 따른다. 맥락에서 떼어놓고 보면 조롱으로 이해되지 않고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화자의 제스처와 표정 등 언어 외적인 지표를 확인할 수 없는 활자상의 풍자는 오해와 오독의 위험이 배가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최근 트위터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콘셉트 계정’(컨셉계)으로 ‘스타트업 김대표’라는 계정이 있다. 해당 계정은 수익 모델은 불분명한데 말만 번지르르하고 임금과 비용을 최대한 줄이려 하면서 열정만 강조하는 젊은 꼰대 대표인 척 글을 올린다. 이 계정을 접한 사람들은 으레 ‘내가 다니는 회사 사장이 하는 말이랑 똑같다’며 웃기면서 슬프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개중 사용자의 입장에서 이 컨셉계의 트위트에 진지하게 공감을 표하는 사람이 있다. 당연히 다른 사람들로부터 ‘컨셉계인 것도 모르냐’며 핀잔과 조롱을 달게 받는다. 그러면 이 사람은 ‘나도 컨셉에 맞게 맞장구치는 척한 거다’라며 민망한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어설픈 풍자가 불러온 인생 파국

어설픈 풍자는 피차 민망해지는 것을 넘어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칠 위험도 있다. 2013년, 저스틴 사코라는 이름의 한 미국인 여성은 친척 방문차 남아프리카공화국행 비행기를 탔다. 100여명의 트위터 팔로어를 보유하고 있던 그는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에 트위터에 농담을 한마디 올린 뒤 휴대전화를 끄고 11시간을 비행했다. 그 농담은, “아프리카로 가요. 에이즈가 걱정되지 않냐고요? 괜찮아요, 전 백인이니까요!”였다. 세상이 자신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는 미국 백인들의 무식함을 풍자한 것으로, 그를 조금이라도 알고 지냈던 팔로어와 지인들은 당연히 가벼운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우연히 그것을 접한 황색저널 기자가 그의 트위트를 보도하면서 일이 커져버렸다. 수많은 누리꾼이 해당 트위트를 농담이 아니라 끔찍한 인종차별주의자의 망언으로 해석했고 그를 공격했다. 비행 시간 동안 저스틴은 해명할 수 없었고, 공격 수위는 강간살해 위협으로까지 높아졌으며 그가 다니던 회사에도 불똥이 튀었다. 결국 11시간 만에 휴대전화를 켠 그는 꼼짝없이 공공의 적이자 무직자 신세로 전락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저스틴을 파멸로 몰아넣은 기사의 제목이 ‘IAC(그가 다녔던 회사) 직원의 재밌는 농담’이었다는 것이다. 거짓은 전혀 없이 팩트만 제시한 기사였지만, 누리꾼들은 액면 그대로 읽어야 할 것은 반어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풍자로 읽어야 할 것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한 사람의 인생이 망가져버렸다.

2021.12.4. 위험천만한 극우 따라하기…‘좌파 일베’의 부캐 놀이 [한겨레S] 김내훈의 속도조절

 

위험천만한 극우 따라하기…‘좌파 일베’의 부캐 놀이

[한겨레S] 김내훈의 속도조절
극우정치인 앨릭스 존스

음모론 앞세운 극우 선동가 존스
“극우 캐릭터 ‘부캐’일 뿐” 주장
국내 좌파 일부도 ‘일베 용어’ 악용
극우에 대응하는 전략은 될 수 없어

  • 수정 2021-12-04 13:20
  • 등록 2021-12-04 13:20
극우 선동가 앨릭스 존스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인포워즈채널’을 음모론 유통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극우 선동가 앨릭스 존스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인포워즈채널’을 음모론 유통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미국에서 활동하는 극우 선동가 중 가장 위험한 인물로 앨릭스 존스라는 사람이 있다. 그의 무기는 음모론이다. 라디오 방송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9·11테러가 부시 정부의 자작극이라는 주장을 펴면서 유명해졌고 <인포워즈>라는 유사언론 매체를 설립해 극우 어젠다를 버무린 온갖 황당한 이야기를 송출하며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음모론가가 되었다.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도 대통령 당선 직전 그의 방송에 원격으로 출연하여 존스의 팬임을 자처한 바 있다.

앨릭스 존스가 펼쳤던 음모론 몇개만 소개해도 이 사람이 얼마나 황당하기 짝이 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그와 그의 추종자들이 수년째 꾸준히 제기하는 것으로 민주당 정치인들이 악마 숭배자들이라거나 인간의 외피를 쓴 파충류라는 주장이 있고, 워싱턴디시 어딘가에 아동 인신매매 시장을 운영한다는 이야기도 아주 진지하게 한다. 이것은 올해 초 있었던 의회 난입 사태를 일으킨 큐어논(QAnon) 집단의 사상적 근간이기도 하다. 개중에서도 가장 황당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성지향성을 바꿔버리는 ‘게이 폭탄’이 비밀리에 제조되고 있었는데 이 화학물질이 누출되어 미국 전역의 개구리들이 게이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극우 활동은 ‘부캐’가 하는 일?

이토록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들을 송출하면서 마니아들과 추종자들을 끌어모으던 가운데 앨릭스 존스는 최근 한 소송에서 패소하여 방송인으로서의 커리어가 걸린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2012년 겨울, 미국 코네티컷주의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한 20살 남성이 총기를 난사해 20명의 초등학생을 포함하여 26명이 사망한 참사가 있었다. 앨릭스 존스는 자신의 방송에서 샌디훅 참사가 가짜라는 주장을 꾸준히 제기했다. 총기 규제 어젠다를 강화하기 위한 음모에 불과하며, 피해자들이 모두 연기자였다는 것이다. 그의 방송을 들은 추종자 일부는 유족들의 거주지를 찾아가 유족들을 괴롭혔다. 이들을 피해 이사를 다니던 유족 일부는 참다못해 존스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이에 다른 유족들도 가세해 집단소송으로 번졌다. 수년이 걸린 소송 끝에 코네티컷 법원은 존스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고, 배상금 결정을 위해 그에게 <인포워즈> 수익 내역 제출을 명령했다.


앨릭스 존스의 변호사는 변론 과정에서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앨릭스 존스가 ‘퍼포먼스 아티스트’, 배우라는 것이다. 변호사의 변론에 따르면, 존스가 방송에서 퍼부은 온갖 헛소리들, 폭언, 비상식적인 주장들은 청중을 즐겁게 하는 데 제일 가치를 두는 퍼포먼스이며, 실제 앨릭스 존스와 대외의 앨릭스 존스는 완전히 별개의 인물이라는 말이다. 이 황당한 주장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면 앨릭스 존스는 일종의 ‘부캐’(부캐릭터)를 연기한 셈이다.

극우 선동가 앨릭스 존스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인포워즈채널’을 음모론 유통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극우 선동가 앨릭스 존스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인포워즈채널’을 음모론 유통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부캐를 연기하는 연기자들은 재미와 핍진성(그럴싸함)을 증가시키기 위해 이른바 ‘부캐 유니버스’를 건설해나간다. 유니버스의 구축은, 부캐가 방송 카메라가 꺼지면 그 존재도 사라지는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세계에서 성장하여 살고 있는 사람인 것처럼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관객의 흥미를 유지하고 참여를 유도한다. 특히 이 관객의 참여가 유니버스의 구축을 완성하는 데 결정적인 것이다. 올해 상반기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매드몬스터’라는 2인조 남성 그룹은 코미디언 이창호와 곽범이 만들어낸 부캐로, 잘나가는 아이돌 그룹의 퍼포먼스, 이미지, 팬들과의 소통의 매너리즘을 풍자하여 웃음과 공감을 끌어냈다. 데뷔와 흥행, 휴식과 컴백까지 정교하게 구축한 세계관에 대중은 기꺼이 몰입한다. 댓글난은 실제 아이돌 그룹을 향한 것과 다르지 않은 응원과 격려, 사랑의 메시지로 가득하고, 대중은 여기저기서 매드몬스터를 봤다는 목격담을 지어내며 유희하는 식으로 세계관을 넓히는 데 동참한다.


앨릭스 존스의 방송 활동이 부캐를 연기한 것이라면, 그의 추종자들은 그의 부캐 유니버스를 함께 구축한 것이다. 존스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음모론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황당한 음모론에 찬동하지 않는 사람들도 그의 방송 영상을 열심히 공유했다는 사실에 크게 기인한다. 너무 웃기기 때문이다. 프로레슬링 선수 같은 풍채와 연극배우를 연상케 하는 발성 및 극적인 제스처와 그토록 어처구니없고 우스꽝스러운 주장의 결합은 특히 젊은 누리꾼(네티즌)들에게 무한한 재미의 원천이 된다. 젊은 누리꾼들은 존스의 방송 영상을 대중문화 텍스트에 합성하며 유희한다. 물론 조롱하기 위해서다. 조롱과 아이러니, 풍자, 빈정댐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은 앨릭스 존스에 찬동하는 척하는 댓글을 달고 서로 낄낄거린다. 앨릭스 존스의 추종자라는 부캐를 연기하는 셈이다. 하지만 그러는 자신이 존스의 위험한 메시지를 퍼뜨리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른다. 이들의 풍자성 댓글을 보는 사람 중 일부는 그것을 진짜 지지자의 댓글로 착각하고 ‘내가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으로 자신감을 얻게 된다. 조롱하는 사람들의 부캐 활동은 존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더 신나게 설칠 빌미가 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위험천만한 ‘일베 용어’ 따라하기

더불어민주당과 정부에 적대적인 좌파 진영 일부에서 이른바 ‘일베 용어’를 쓰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것도 일종의 부캐를 연기하는 것이라고 봐야 할까? 극우 진영에 의해 오염된 단어를 아이러니한 전유의 전략으로 ‘되찾아올’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의 발로라고 봐야 할까? 좌파가 극우의 언어를 입에 담는 것으로 언어가 정화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좌파의 언어가 오염된다. 몇몇 문화연구자들이 부캐를 고정된 자기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 출구와 같은 것이라고 했듯이, 좌파적 신념을 알리바이 삼아 일베 용어를 입에 담는 이들은 부캐를 빙자하며 본모습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자기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하느니 차라리 나라가 망하기를 더 원하는 사람들 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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