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정치미학자 아감벤이 코로나19 국면에 대해서 한 마디 했다길래 읽어봤는데 다소 김빠지는 감이 있다. 제목이 해명인 이유는 아감벤이 이전에 썼던 짤막한 글이 다소간 논란이 되었어서 추가 설명을 하려는 의도로 쓴 글이기 때문이다. 이전 글도 읽어봤는데 던지고자 했던 메시지는 똑같다. 지금은 예외상태이며 이 상태가 지속되고 익숙해지는 것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미천한 배경지식을 동원하여 대충 설명해보자면 여기서 아감벤이 말하는 벌거벗은 생명은 세속적 법이 적용되지 않는 신성한 존재이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이런 사람들은 죽여도 처벌받지 않는다. 주변부에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태가 예외상태(비상사태)다. 이런 예외적인 존재들은 늘 있어왔다. 사회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이런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근대로 진입하기 위해 정신병자들이 만들어졌고 자본주의가 돌아가기 위해 실업자가 있어야 하고 등등.
어떤 논란이 있었는지 대충 짐작은 간다. 배부른 소리나 하고 앉았다는 것이다. 상관있는 얘기일지 모르겠는데, 며칠 전 할리우드 연예인들이 무슨 아이스버킷챌린지처럼 각자 집 안에서 존 레논의 이매진을 한 구절씩 이어서 불러서 유튜브에 올렸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욕은 다 먹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미국에서 며칠 만에 실직자가 육백만명 증가했다고 한다. 이런 걸 두고 비상사태라고 해야지 어디 좀 가고 싶은 데 못 가게 하고 데모 못하게 한다고 비상사태 선포 남발할 게 우려된다라고 할 게 아니라.
조르조 아감벤 clarifications 2020.3.17. 번역
공포는 나쁜 것이지만 안 보이는 척 하려 했던 많은 것들을 드러나게 해준다. 중요한 것은 질병의 심각성에 대해 의견을 보태는 게 아니라 전염병이 야기할 윤리적, 정치적 효과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나라를 마비시킨 공황의 물결은 우리 사회가 벌거벗은 생명을 제외한 모든 것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이탈리아인들은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사실상 모든 것(평범한 삶의 조건, 사회적 관계, 노동, 우정, 사랑, 신념 등)을 희생하도록 종용되었다. 벌거벗은 생명(그리고 그것을 잃을 위험)은 인민들을 한 데 모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맹목적으로 만들고 분열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웃 사람들은, 알레산드로 만초니의 소설에서 묘사된 전염병의 사례와 같이, 이제는 단지 감염원으로만 간주될 뿐이며 적어도 1미터 이상은 떨어져 있어야 할 존재로 여겨질 뿐이다. 죽은 자들은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며 우리 사랑하던 사람들의 시신이 어떻게 될지도 제대로 알 수 없다. 교회들은 이상하게도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다. 아무런 기약 없이 이러한 식으로 살아가는 데 익숙해져버린 나라에서 인간관계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그리고 생존만을 유가치한 것으로 여기는 사회는 무슨 의미를 갖는가?
또한 전염병이 명백히 확인시켜주는 것은, 지난 며칠 간 정부가 나서서 우리로 하여금 익숙해지게 강제한 예외상태가 진정으로 상례가 되었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전염병 사례가 과거에 있었지만, 그것이 지금과 같이 움직일 자유도 앗아가는 예외상태를 선언할 이유가 된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지속적 위기와 비상사태의 조건에서 사는 데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사회적, 정치적 삶은 물론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차원의 삶까지 모두 순수한 생물학으로 환원되어버렸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다. 지속적인 비상사태를 살아가는 사회는 자유 사회라 할 수 없다. 사실 우리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자유를 희생시켜온 사회를 살고 있으며 그러한 사회가 영원한 공포와 불안의 상태로 가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바이러스를 전쟁에 비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비상조치들은 우리를 통행금지의 상황에 살도록 강제한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급습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은 가장 부조리한 유형의 전쟁이다. 사실상 이건 내전이다. 적은 외부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현재만이 아니라 뒤의 일이다. 철조망에서 핵발전소까지 불온한 과학기술을 전쟁이 유산으로 남겼듯이, 보건 비상사태가 종결된 이후에도 정부가 못 다한 여러 실험들이 계속해서 진행될 공산이 크다. 대학교와 공교육을 폐쇄하고 온라인 강의만 진행한다거나, 어떤 문화적 정치적 아젠다가 되었든 일체의 집결이나 집단연설을 금지한다거나, 인간관계에 있어 가능한 한 모든 접촉을 기계로 대체하는 것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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