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시장을 내버려둬라! Zeit Online

FDP의원이 쓴 글인데 위기 국면에 대해 우익 진영에서 쓴 글도 읽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옮겨봤다.
독일 자유민주당(FDP)는 독일을위한대안에 비하면 큰 존재감은 없는 것 같다. 기민당보다는 덜 보수적이고 사민당보다는 많이 보수적인 정당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다. 



시장을 내버려둬라! Lasst den Markt in Frieden! 번역

판데믹 상황에서 자본주의 비판은 유행처럼 되고 있으나 완전히 틀렸다. 자유주의 체계만이 위기에서 벗어날 기회를 줄 수 있다. 자유민주당(FDP)Johannes VogelKonstantin Kuhle의 특별기고.
https://www.zeit.de/wirtschaft/2020-04/soziale-marktwirtschaft-kapitalismusdebatte-corona-krise
 


Zeit Online에서 지난 몇 주 동안 코로나19로 말미암아 자본주의의 실패를 인식하려 하는 의견들이 많아지고 있다. “지구적 위기에 대해 말하면서 판데믹이 시장경제와 세계화의 필연적 실패를 알리는 핵심 근거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명제는 틀렸으며 근거도 없다. 지적으로 불충분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정치적으로 도움도 안 된다.
 
트럼프만이 아니라
 
판데믹 때문에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우리는 완벽한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유감스러워 할 따름이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우리 세계의 광범한 파멸만을 몰고 온다고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이야기해봤자 나아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적개심을 고취하는 데 감염병을 이용하는 사람은 트럼프만이 아니다. 독일에서도 구 이데올로기적 슬로건과 고정관념이 부상하고 있으며 특히 시장경제에 대한 것이 과열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런 얘기만 하면 격려와 칭찬을 받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골몰하는 대신 이런 새로운 적대의 이미지에 자양분을 제공하는 데 그친다면 그것은 퇴행이자 책임감으로부터의 위험한 도피일 뿐이다.
 
물론 시장법칙이 코로나 판데믹의 사회적 제문제의 해답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렇게 주장을 한 사람이 누가 있는가? 당연히 국가는 질병과 싸워야 하고 기업과 자영업자들을 위한 대규모 경제적 구제가 이루어져야 하며 의료부문의 국내 제조를 조정해야 하며 단기계약직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안정화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으로 독일이 다행히도 시장경제 국가이며 코로나 위기 이후에도 그러할 것이라는 사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시민들이 고통 받고 있다. 직장에서는 기계들과 컴퓨터들이 꺼져 있고 국제 시장과 국경은 닫혀 있다. “경제는 자영업자, 프리랜서, 문화예술 종사자들의 실존적 곤궁을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예외의 상황에도 혁신, 창조, 최적화의 기회가 드러난다. 이것들은 경쟁과 성장의 기본 요소이며, 이를테면 이것들로써 공장들이 마스크 제조로 전환하거나 새로운 배달업이 시도되고 서비스업이 인터넷을 통해 제공된다. 즉 오직 자유 시장주의 체계에서만 기회들을 찾을 수 있고 사회가 그 자신을 극복하고 더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독일에서 미국의 의료 체계를 원하는 정치 세력은 없다
 
미국에서 의료보험에의 접근이 지극히 제한적인 것과 실직자가 수직적으로 치솟는 것은 시장과 자본주의의 심각한 왜곡이라 할 수 있다. 독일 정치인 중 미국의 의료 체계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독일의 의료 체계는 결코 예산이 부족해서 문제를 겪는 일이 없다. 유럽에서 노르웨이를 제외하고 독일보다 공공의료에 예산을 많이 할애하는 나라는 없다. 의료 체계를 완전히 국유화한 영국조차 독일보다 덜 쓴다.
 
물론 여전히 해야 할 일은 많다. 절박한 코로나 국면의 현장들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이들에게 더 나은 임금과 노동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이들이 받는 박수갈채만으로는 물건을 살 수 없다. 바로 이것 때문에 면세 가능한 상여금이 있는 것이다. 이들의 임금과 복지 자체가 영구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이지만 이것은 강한 경제를 전제로 해야 한다. 의료인들의 임금인상을 바란다면 경제성장도 바라야 한다. 바로 이 때문에 독일연방공화국이 시장경제국가이자 복지국가인 것이다.
 
우리 사회의 시장경제는 포식자들의 사냥터가 아니다. 재난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단기계약노동 관련 예산은 연방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독일의 이와 같은 복지국가와 시스템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회의를 갖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섀도복싱을 하는 것이다. 다음 세대들이 추가적인 연금 혜택의 비용을 어떻게 지불할 수 있으며, 혹은 고용보험 적립금이 기부금으로써 단기노동자들의 혜택을 일정하게 증가시킬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하여 FDP가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만 복지국가는 소멸되지 않을 수 있다. 위기는 재정건전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드러낸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재정건전성이 국가를 이 정도나마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성장의 종언을 동경하는 것은 코로나로 인해 당신의 사업이 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 때만 공감할 수 있다. 이를 바라는 사람은 기본을 무시하는 사람이다. 위기가 발생하고 며칠 안 되어서 경제학자들은 정부 개입이 장기적으로는 결코 시장경제 역학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라 예견했다. 독일의 매 0.1%의 경제성장은 국가 수익의 원천이 되는 일자리와 직결되어 있다. 지난 수년간의 세금과 사회적 이윤이 국가의 코로나 위기에 대한 역사적으로 전례 없는 대응을 가능케 한 것이다. 그리고 내일의 성장은 내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재원이 될 것이다 헌법의 보호를 받는 사유재산의 침해나 기업들에 지우는 부담이 아니라.
 
지구적 맥락에서도, 시장경제에 대한 비난들이 견강부회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이보다 더 낮은 유아사망률, 낮은 비율의 빈곤층, 더 높은 교육 지수, 깨끗한 물에의 접근권, 높은 백신 접종률은 없었다. 한스 로슬링, 스티븐 핑커와 같은 작가들은 끊임없이 이러한 통계들을 지적하고 있다. 유사 이래로 세계화는 가장 거대한 빈곤 극복 프로그램이다. 또한, 다행히도 백신 개발을 위한 기업들 간의 지구적 연계가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지구적 시장 연결망과 노동분업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 제기의 모든 시도는 처음부터 부정되어야 한다. 정치인들은 비상시에 대비한 보호재를 충분히 비축할 수 있는 자체적 감염병 대비 계획을 진지하게 구상해야 한다.
 
세계 경제와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는 커다란 과제에 직면해 있다. 성장, 교육, 부에 대한 접근권을 더 많은 사람에게 넓히기 위해 디지털화가 창출하는 기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에서부터 산업의 가치사슬에 환경보호 요인을 추가하는 것까지. 우리는 이 명제들에 대한 최선의 개념을 획득하는 투쟁을 해야 한다. 다만 배제, 불황, 낭만적 운명론이 투쟁에 기여할 가능성은 없다. 오히려 시장경제 체계에서 활동하는 창조적이고 기업가적인 정신을 보유한 사람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이전까지 위기 상황들에서 늘 그러했듯이.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인싸들을 죽이자.

  "미국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클리셰는 항상 최악의 성차별주의자들은 항상 체격만 좋고 공부는 전혀 안 하는 고교 운동선수들로 묘사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인터넷 세계는 실제는 전혀 다름을 보여준다. 인터넷으로 인해 드러나게 된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오히려 너드nerd 성향을 갖고 있으며 스스로 착한 남자라고 생각하지만 여자를 사귄 적이 없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증오로 가득 차 있고 타인의 행복에 미친듯이 시기심을 느끼는 인종주의자이자 여성혐오자라는 것이다. 비슷하게, 60년대 이후로 서구 대중문화를 지배해왔던 미학적 가치들, 이를테면 위반, 전복, 반문화와 같은 것들이야말로 오늘날 온라인 극우의 본질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온라인 극우는 종래의 전통적인 편견들로 가득하지만 니체적인 반-도덕주의에 힘입어 기독교 윤리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에서 과거의 극우와는 다르다." 영미권에서 쓰이는 Normies라는 말은 우리말로 '인싸' 정도로 번역될 수 있겠다. 직역하면 평범한 사람들인데, 20+n살이 넘도록 제대로 된 이성교제 경험이 없고 동성인 친구마저 극히 적은 본인들의 비참한 아다인생과는 다르게 정상적인 사회적 삶을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시기, 질투, 더 나가면 저주까지 하고 살인도 불사하는 그러한 멘탈리티가 집약된 단어라 할 수 있다. 누구나 다 스스로 '아싸'라고 주장하는 한국에서의 '인싸'의 용례와는 약간 다르다. 하지만 강남역 살인사건부터 PC방 살인사건까지, 알파메일alpha male에 의해 번식 경쟁에서 탈락했다고 믿는, 그렇게 될 것이라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 베타메일beta male의 원한감정은 인셀( In voluntary Ce libate, 비자발적 독신)이라는 신조어로부터 짐작 가능하듯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미국에서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셀의 멘탈리티를 가진 자들이 정치세력화하면 대안우파

유튜버들의 선넘기

" 한국의 문화는 비천함을 사유할 수 있는 역량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제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르는 평가의 기준이 도덕으로 대체됐기 때문이다. 동시대의 평론가는 도덕적으로 ‘좋은 것’의 위치에서 ‘나쁜 것’을 굽어보며 ‘나쁜 것’을 철저히 거부하도록 장려한다. 나는 시대를 역행해 비천함을 꿈의 질료로 활용하는 문화비평을 복권시키자고 권유하고 싶다. 상속권을 박탈당한 자의 입장에서 문화를 새로 서술하자. 사회적 실재, 세계, 시간성, 자본주의, 한국힙합, 실시간 스트리밍, 밈과 농담, 우리 문화 내부의 비천함을 사고하자. "   t毬x(malware)라는 사람이 마테리알에 쓴 이 글 https://ma-te-ri-al.online/3c16 은   나로서는 아주 어려워서 이해하기 힘들다. 다만 위에 인용한 부분은 이해 여부는 차치하고 상당한 울림이 있다. 내가 지금껏 생각해왔던 것과 비슷하기 때문일 테다. 비평이든 연구든 하려면 비위가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이든 도덕적이든 어떤 이유가 되었건 속으로부터 역한 기분이 들더라도 어떤 것을 다만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은 대선 직후 트럼프에 투표한 노동계층을 비천한 존재라 불렀다. 정확히는 "You could put them in the basket of deplorables"라 했는데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것들이라 의역 가능하다. 유력 정치인이 대다수 유권자들을 일거에 기각해버렸는데 리버럴 성향 지지자들은 이에 환호했다.  미국에서 기각문화Cancel culture라는 것이 흥하고 있다.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들이나 노예제를 낭만화한다는 이유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같은 영화의 영화사적 의의를 폄하하려는 움직임들이다. 혹은 떠오르는 유명인, 정치인, 뮤지션, 배우 등의 과거를 캐내어 도덕적 낙인을 찍는 식이다. 혹은 최근의 잘못을 과거의 행보들에까지 소급적용해 생애를 깡그리 부정하는 식이다. 대학에서는 문

더 우스꽝스럽게 실패하라

<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라는 제목의 철학책이 있다. 삶의 격언으로 삼을 만한 좋은 말이다. 하지만 다시 실패할 기회조차도 사치일 수 있는 오늘날 이런 얘기는 많이 공허하게 들린다. 차라리 <더 우스꽝스럽게 실패하라>가 더 낫겠다. 제대로 확실하게 해내지 못할 바에 좆망의 나락에 떨어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중계해서 어그로를 끄는 데 성공한다면 주목경제의 밑천이라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글배우라는 필명의 어떤 시인이 시집을 냈는데 잠시 어그로가 끌렸다. 엄밀히 시집은 아니고 에세이로 분류되는데 책 커버 디자인이 문학동네 시인선 표지와 똑같아서 문제였다. 지금은 리커버판으로 나오는 것 같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들뢰즈의 <소진된 인간>이 떠오르는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표지보다는 책 내용이 더 흥미롭다. '저게 도대체 뭐야'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온다. 조선일보 [리빙 포인트] '음식이 싱거울 땐'이 떠오른다. 물론 이건 합성이다. 더 그럴싸한 글이었다면 지금 만큼의 인기를 전혀 누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은 당연히 못 낸다. 그러나 못쓴 수준이 어느 정도를 지나치면 얘기는 달라진다. 얼마나 형편없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글이 재미가 없네', '글이 별 내용이 없네', '문장 구성이 너무 단순하네' 등 그다지 잘 못쓴 글을 봤을 때 으레 할 수 있는 평가가 아니라 '저게 도대체 뭐야'라는 반응부터 튀어나오게 만드는 이상한 글이어야만 한다. 글배우는 문동시인선 표지 디자인으로 어그로를 끄는 데 성공했다. 이걸 하나의 퍼포먼스라 생각하고 그의 집필과 출판까지의 과정을 보면 꽤 재밌다. R. Mutt의 변기 같기도 하다. 다음 에세이집 낼 때 표지에 지은이 얼굴과 전혀 닮지 않은 대충 그린 그림도 넣으면 더 훌륭할 듯하다. 영어로 'It's so b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