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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우스꽝스럽게 실패하라

<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라는 제목의 철학책이 있다. 삶의 격언으로 삼을 만한 좋은 말이다. 하지만 다시 실패할 기회조차도 사치일 수 있는 오늘날 이런 얘기는 많이 공허하게 들린다. 차라리 <더 우스꽝스럽게 실패하라>가 더 낫겠다. 제대로 확실하게 해내지 못할 바에 좆망의 나락에 떨어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중계해서 어그로를 끄는 데 성공한다면 주목경제의 밑천이라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글배우라는 필명의 어떤 시인이 시집을 냈는데 잠시 어그로가 끌렸다. 엄밀히 시집은 아니고 에세이로 분류되는데 책 커버 디자인이 문학동네 시인선 표지와 똑같아서 문제였다. 지금은 리커버판으로 나오는 것 같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들뢰즈의 <소진된 인간>이 떠오르는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표지보다는 책 내용이 더 흥미롭다. '저게 도대체 뭐야'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온다. 조선일보 [리빙 포인트] '음식이 싱거울 땐'이 떠오른다. 물론 이건 합성이다. 더 그럴싸한 글이었다면 지금 만큼의 인기를 전혀 누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은 당연히 못 낸다. 그러나 못쓴 수준이 어느 정도를 지나치면 얘기는 달라진다. 얼마나 형편없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글이 재미가 없네', '글이 별 내용이 없네', '문장 구성이 너무 단순하네' 등 그다지 잘 못쓴 글을 봤을 때 으레 할 수 있는 평가가 아니라 '저게 도대체 뭐야'라는 반응부터 튀어나오게 만드는 이상한 글이어야만 한다. 글배우는 문동시인선 표지 디자인으로 어그로를 끄는 데 성공했다. 이걸 하나의 퍼포먼스라 생각하고 그의 집필과 출판까지의 과정을 보면 꽤 재밌다. R. Mutt의 변기 같기도 하다. 다음 에세이집 낼 때 표지에 지은이 얼굴과 전혀 닮지 않은 대충 그린 그림도 넣으면 더 훌륭할 듯하다. 영어로 'It's so b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