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수에 자아를 의탁하는 사람들
오늘날 특히 미국에서 젊은이들의 '노빠꾸 인생' 스턴트가 도를 지나치고 있다. 아니 '선을 넘고' 있다. 몇가지 예만 들어도 눈살 찌푸려지고 탄식 나오게 만들기는 충분하다. 수직으로 점프한 사람의 다리를 양 옆에 서 있던 두 사람이 걷어차서 공중제비를 돌게 만드는 '대가리 깨기 챌린지'(Skullbreaker challenge), 콘센트에 플러그를 느슨하게 꽂고 접속부위에 동전을 갖다대는 '콘센트 챌린지'(Outlet challenge), 캡슐형 세탁 세제를 입 안에 넣고 터뜨리는 '타이드 팟 챌린지'(Tide Pod challenge), 공중화장실 좌변기 시트를 혀로 핥는 '코로나 챌린지'(Corona challenge) 등, 조회수는 올리면서 인간 지능의 바닥은 내리는 관심종자(이하 관종)들의 망동은 인류의 미래에 대한 상상을 음산하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조회수 자체가 경제적 가치로 치환될 수 있는 경제 체제가 확립되어감에 따라 관종이라는 말은 더 이상 부정적인 멸칭이 아니라 하나의 미덕과 같은 것이 되고 있다. 자연히 '나쁜 관종'과 '좋은 관종'을 구별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온다. 임홍택 작가의 <관종의 조건>이 대표적이다.
임홍택은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으로 일약 스타 작가가 되었다. 나는 처음에 <90년생이 온다>라는 제목을 보고 당연히 사회학 저서일 것이라 생각했다. 이를테면 386세대의 2세들이 사회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하는데 8-90년대와는 전혀 다른 사회적, 문화적 조건들 아래서도 이전 세대와 대동소이하게 격무에 시달리면서 그럼에도 임금노동만으로는 개인의 영달은 언감생심인바 빚을 내면서까지 주식에 투자하고 이른바 ‘일상의 금융화’의 의인화된 표상의 집단으로 떠오름으로써 예측 가능한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제 변화에 대한 간략한 고찰을 담은 책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 책은 아니었고,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을 이해하는 법’, ‘꼰대가 되지 않는 법’에 가까운 것 같다. 기업들의 입장에서 새롭게 중심적인 소비자로 발돋움하는 90년생들을 상대로 장사를 잘 하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을 듯하다.
사회학 연구서 아니라 자기경영서에 가깝지만 마냥 가볍지는 않아
<관종의 조건>은 <90년생이 온다>의 ‘속편’ 혹은 ‘스핀오프’라 할 수 있겠다. <90년생이 온다>를 보기 전에 <관종의 조건>이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도 비슷하게, 경거망동을 일삼는 이상한 관종들이 출몰하게 되는 문화사회적 제 조건에 대한 논의이겠거니 하는 기대를 가졌다. 관종의 문화사회적 조건인줄 알았는데, 읽어보니까 쓸모 있는 관종이 되는 조건에 대한 책이다. 즉 여기서 조건은 관종이 되려면 ~해야 한다는 그러한 조건을 말한다. 심도 있는 사회학적 논의를 기대하면 실망할 수도 있다. 이 책은 사회학이나 문화연구 저서가 아니라 자기경영서 혹은 마케팅 저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가볍기만 한 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책은 어디 외진 데 짱박혀서 사회와 완전히 고립된 채 자연인으로 살 것이 아닌 이상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관종’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몇몇 대중문화 셀러브리티에 빗대어 일깨워준다. 축구선수로 예를 들면 축구 실력 자체에 있어서는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할 수 있지만 대중적 인기는 엄청난 격차를 벌리는 경우가 다수 있다. 스스로 포장을 얼마나 잘하고 대중미디어에 얼마나 꾸준히 자신을 노출시키는가의 차이에 기인한다. 즉 더 잘 나가는 선수가 되고 몸값을 높이려면 실력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지금은 겸손이 미덕이 되는 시대가 아니다.
‘관종’ 시대에 성공하려면, 특유의 매력자본 어필해야
이전까지는 이를테면 이른바 ‘스펙’이 포장지로 기능했지만 이제는 그것마저도 지나치게 흔한 것이 되어버려 변별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고만고만한 것들 사이에서 눈에 띌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을 뽐낼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정도가 지나쳐서는 안 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겸손하되 일정량의 자신감을 적시적소에 내비칠 수 있어야 한다. 내실을 갖추고 화려해져야 한다. 화려함에 그쳐서는 안 된다. 다른 대동소이하게 화려한 것들 사이에서 부각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매력을 내보여야 한다. 자신의 인생 궤적에 스토리텔링을 부여하여 흥미로운 캐릭터로 거듭나야 한다.
주목경제 시대의 상품들은 그게 무엇이 되었든 무한에 가깝게 생산되는 재화들 가운데 그만의 독특한 상징자본을 확보해 성능과 내구력을 넘어서는 특유의 매력으로 어필해야 시장에서 살아남는다. 가격 차이가 열 배 이상 나는 두 량의 자동차가 있다고 가정할 때 과연 둘 사이의 성능에도 그에 준하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상품이 지니는 기호, 브랜드가 관심을 끌고 값을 높인다.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의 무기는 개성이다라는 식의 90년대 교과서에서 봤을 법한 이야기의 재탕이 아니다. 지금은 맞춤형 생산 시대다. 인력도 상품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예외일 리 없다.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구직하는 사람은 많다. 이들 가운데서 도드라져 보이려면 스펙 쌓기만으로는 부족하다. 주목 경쟁을 벌여야 한다. 자기소개서를 허접한 인스타그램 명언으로 치장하라는 것도 아니고 면접장에서 춤추고 성대모사를 하라는 것도 아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공략하는 대상에 따라 맞춤형 관종질을 해야 한다.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각자의 몫으로 넘겨진다.
‘인기 필수 요소’ 나열식으로 전개한 서술은 아쉬워… ‘뒷북’ 손가락질이 더 무섭다
좋은 관종이 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면서 관종질을 하는 요즘 젊은이들을 이해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기도 한 <관종의 조건>은 그래서 그 두 가지 목적을 충실히 달성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일말의 의구심이 든다. 예시로 들고 있는 온갖 밈meme들은 진부하고, 하루만 지나도 그날그날 타임라인의 ‘플로우’에서 밀려나는 세태를 생각해 볼 때 이미 낡은 것들에 가깝다. 혹여나 회사의 기획자나 경영진이 이 책을 참고하여 온갖 인기 영상을 섭렵하고 어떤 신제품을 내놓은들, 기업의 업무 프로세스를 생각할 때 해당 기획이 실현될 즈음 대중의 관심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처럼 흩어져서 완전히 다른 형태로 재조직되어 있을 것이다. ‘관종’ 세대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경영진의 기대는 이루어지기 힘들다. 본래 단행본으로 되어 있는 오늘날 ‘트렌드’에 대한 제 논의는 ‘뒷북’의 혐의로부터 자유롭기 쉽지 않다. 더군다나 ‘1982년생 작가가 알려주는 90년대생이 현대 사회에서 관종질로 생존하는 법’이라는 점에서 본서는 젊은이들이 지침서로 삼는 자기경영서의 탈을 쓴, 경영인들이 젊은 소비자들을 이해하기 위해 읽는 마케팅서이며 어느 한 쪽도 충분치 못한 것이다.
90년대생에게 귀 기울이기
그래도 ‘관종’ 세대에 어필하고자 하는 기업가들이나 경영진에게 나름의 대책을 제시하자면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90년대 생을 굳이 알려고 하지 말고 90년대 생에게 결정권을 과감하게 쥐어주라는 것이다. 그 정도의 결단이 없다면 90년대생을 상대로 특별한 성공을 얻어내긴 힘들다. 아마도 밈이 닳고 닳아서, 그리고 결과물의 퀄리티를 파악할 수 있는 감식안을 형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승인된 결과물은 마치 오래된 짤방처럼 뭉개진 픽셀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경영진이 정말로 90년대생을 사로잡는 비법을 알고 싶다면 그것을 가장 잘 아는 90년대생에게 전권을 쥐어주고, 자신이 가진 권한은 90년대생에게 결정권을 밀어주는 데 사용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전문적인 영역에서 세부사항은 전문가나 기술자에게 위임하고 그것을 간섭하지 않는 것과 똑같다. 많은 기업에서 젊은 세대에게 결정권을 주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보일러를 고치러 온 기사에게 배관이나 작업 과정에 대해서 우리가 왈가왈부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보일러 내부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90년대생도 똑같이 바라봐야 한다. 보일러와 자동차는 삶의 필수품이지만 그것의 작동 방식이나 수리 방법을 모두가 알 필요는 없고 그럴 수도 없다고 한다면, 콘텐츠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당장 권한을 이양하거나 나누기 힘들다면 두 번째 조언이 있다. 이 책에 나온 내용이나 기획은 모두 선택지에서 배제해 나가라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의 함의 또한 ‘쓸모 있는 관종에 대한 부정신학적 접근’으로 점철되어 있다. 시류를 타려 하지 말고 유행에 상관없는 필수적인 무언가를 충실히 만들고 기획하는 데 힘쓰는 게 좋다. 말하자면 기본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무형의 아이디어를 경제적 가치가 뛰어난 상품으로 계발하고 정착시키는 데는 단순한 상품을 제조하거나 생산하는 것에 비해 엄청난 노력과 비용이 수반된다. 나이키나 애플, 스타벅스의 브랜드 가치나 혹은 한두 마디 슬로건으로 단칼에 정리될 수 있는 그들의 기업 이미지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다. 시류에 잘 편승하면 한두번 반짝 성공할 수는 있겠지만 그뿐이다. 유행에 민감한 것보다 품질이 더 중요하다. 가장 간단한 예시를 들자면 유행어로 범벅된 광고는 1년만 지나도 낡아 보인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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