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자식들은 왜 추석에 찾아오지 말라는 소리에도 전전긍긍하는가

 자식들은 왜 부모, 시부모가 추석에 오지 말라고 해도 전전긍긍하는가? '오지 말랬다고 정말 안 오냐'라는 볼멘소리 혹은 그에 준하는 수동적 공격성을 지겹도록 겪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냥 가면 아무 것도 준비 안 했는데 귀찮게 왜 왔냐는 핀잔을 들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당신들께서는 좀처럼 진짜로 원하는 것을 말씀하시지 않는다.

다 망가져가는 세탁기를 보여주면서 "아들/딸아, 우리는 옷이 더러워져도 상관 없으니 걱정 안 해도 되고 신경 안 써도 된다."라고 영상메시지를 보내는 노부부의 이야기 따위는 일말의 감동 코드가 섞인 우스개로 흔히 소비되지만 부모의 말씀을 너무 잘 따라서 정말로 신경 안 쓰면 후레자식 된다.

뭔가 까다로울 수 있는 일을 부탁하기에는 부탁하는 입장으로서 접고 들어가야 하는데 그러기는 싫고 염치없이 보이기도 싫고 강압적으로 하기에는 나쁜 사람 되기가 싫은 사람은 자신의 요구를 상대방이 눈치껏 먼저 알아내기를 원한다.

'척하면 척하는' 빠른 눈치로 긴 말이 필요 없이 요구사항이 관철되기를 바라는 소통은 매우 비효율적이다. 말하는 사람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혼자 알아서 생각하는 데 드는 시간이 처음부터 자세히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데 드는 시간보다 더 길 터이다. 확신을 기하기 위해 몇가지 물어보면 으레 돌아오는 건 '그걸 꼭 다 말을 해야 아냐'는 핀잔이다. 편의점 알바해본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흔히 꼽히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빡치는 손님 유형이 이런 사람이다. 봉투 필요하시냐고 물으면 '그럼 이걸 다 손으로 들고 가란 말이냐'며 쏘아붙이는 사람. 이런 화법을 구사하는 사람은 생각외로 가까이 있다.

비슷하게, 뭐든 애매하게 업무 지시를 내리거나 늘 '알아서 하라'고 말하는 직장상사 욕을 쉽게 접한다. 대충 말해도 잘 알아듣고 수행하는 직원을 원하는 마음을 이해 못할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음흉한 속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본인이 책임질 생각이 없는 것이다. 알아서 했는데 결과가 안 좋으면 알아서 한 사람을 탓하면 되기 때문이다.

조조가 토벌을 갔다가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어느날 밤 암구호를 계륵으로 정하라는 말에 양수는 조조의 의중을 지레짐작하고 병사들에게 짐싸라고 했다가 목이 날아갔다. 섣불리 나대다가는 좆되는 수가 있다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로 흔히 전해지지만 애초부터 조조라는 인물이 기다 아니다를 분명하게 말하는 사람이었으면 그런 일은 안 일어났을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평소 부하들 눈치 없다고 얼마나 조인트를 까댔으면 그날 저녁식사 메뉴를 암호로 정한 것만으로 그 의중을 파악하려고 고민하게 만든 것인지.


댓글

댓글 쓰기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유튜버들의 선넘기

" 한국의 문화는 비천함을 사유할 수 있는 역량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제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르는 평가의 기준이 도덕으로 대체됐기 때문이다. 동시대의 평론가는 도덕적으로 ‘좋은 것’의 위치에서 ‘나쁜 것’을 굽어보며 ‘나쁜 것’을 철저히 거부하도록 장려한다. 나는 시대를 역행해 비천함을 꿈의 질료로 활용하는 문화비평을 복권시키자고 권유하고 싶다. 상속권을 박탈당한 자의 입장에서 문화를 새로 서술하자. 사회적 실재, 세계, 시간성, 자본주의, 한국힙합, 실시간 스트리밍, 밈과 농담, 우리 문화 내부의 비천함을 사고하자. "   t毬x(malware)라는 사람이 마테리알에 쓴 이 글 https://ma-te-ri-al.online/3c16 은   나로서는 아주 어려워서 이해하기 힘들다. 다만 위에 인용한 부분은 이해 여부는 차치하고 상당한 울림이 있다. 내가 지금껏 생각해왔던 것과 비슷하기 때문일 테다. 비평이든 연구든 하려면 비위가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이든 도덕적이든 어떤 이유가 되었건 속으로부터 역한 기분이 들더라도 어떤 것을 다만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은 대선 직후 트럼프에 투표한 노동계층을 비천한 존재라 불렀다. 정확히는 "You could put them in the basket of deplorables"라 했는데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것들이라 의역 가능하다. 유력 정치인이 대다수 유권자들을 일거에 기각해버렸는데 리버럴 성향 지지자들은 이에 환호했다.  미국에서 기각문화Cancel culture라는 것이 흥하고 있다.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들이나 노예제를 낭만화한다는 이유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같은 영화의 영화사적 의의를 폄하하려는 움직임들이다. 혹은 떠오르는 유명인, 정치인, 뮤지션, 배우 등의 과거를 캐내어 도덕적 낙인을 찍는 식이다. 혹은 최근의 잘못을 과거의 행보들에까지 소급적용해 생애를 깡그리 부정하는 식이다. 대학에서는 문

인싸들을 죽이자.

  "미국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클리셰는 항상 최악의 성차별주의자들은 항상 체격만 좋고 공부는 전혀 안 하는 고교 운동선수들로 묘사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인터넷 세계는 실제는 전혀 다름을 보여준다. 인터넷으로 인해 드러나게 된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오히려 너드nerd 성향을 갖고 있으며 스스로 착한 남자라고 생각하지만 여자를 사귄 적이 없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증오로 가득 차 있고 타인의 행복에 미친듯이 시기심을 느끼는 인종주의자이자 여성혐오자라는 것이다. 비슷하게, 60년대 이후로 서구 대중문화를 지배해왔던 미학적 가치들, 이를테면 위반, 전복, 반문화와 같은 것들이야말로 오늘날 온라인 극우의 본질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온라인 극우는 종래의 전통적인 편견들로 가득하지만 니체적인 반-도덕주의에 힘입어 기독교 윤리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에서 과거의 극우와는 다르다." 영미권에서 쓰이는 Normies라는 말은 우리말로 '인싸' 정도로 번역될 수 있겠다. 직역하면 평범한 사람들인데, 20+n살이 넘도록 제대로 된 이성교제 경험이 없고 동성인 친구마저 극히 적은 본인들의 비참한 아다인생과는 다르게 정상적인 사회적 삶을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시기, 질투, 더 나가면 저주까지 하고 살인도 불사하는 그러한 멘탈리티가 집약된 단어라 할 수 있다. 누구나 다 스스로 '아싸'라고 주장하는 한국에서의 '인싸'의 용례와는 약간 다르다. 하지만 강남역 살인사건부터 PC방 살인사건까지, 알파메일alpha male에 의해 번식 경쟁에서 탈락했다고 믿는, 그렇게 될 것이라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 베타메일beta male의 원한감정은 인셀( In voluntary Ce libate, 비자발적 독신)이라는 신조어로부터 짐작 가능하듯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미국에서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셀의 멘탈리티를 가진 자들이 정치세력화하면 대안우파

더 우스꽝스럽게 실패하라

<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라는 제목의 철학책이 있다. 삶의 격언으로 삼을 만한 좋은 말이다. 하지만 다시 실패할 기회조차도 사치일 수 있는 오늘날 이런 얘기는 많이 공허하게 들린다. 차라리 <더 우스꽝스럽게 실패하라>가 더 낫겠다. 제대로 확실하게 해내지 못할 바에 좆망의 나락에 떨어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중계해서 어그로를 끄는 데 성공한다면 주목경제의 밑천이라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글배우라는 필명의 어떤 시인이 시집을 냈는데 잠시 어그로가 끌렸다. 엄밀히 시집은 아니고 에세이로 분류되는데 책 커버 디자인이 문학동네 시인선 표지와 똑같아서 문제였다. 지금은 리커버판으로 나오는 것 같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들뢰즈의 <소진된 인간>이 떠오르는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표지보다는 책 내용이 더 흥미롭다. '저게 도대체 뭐야'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온다. 조선일보 [리빙 포인트] '음식이 싱거울 땐'이 떠오른다. 물론 이건 합성이다. 더 그럴싸한 글이었다면 지금 만큼의 인기를 전혀 누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은 당연히 못 낸다. 그러나 못쓴 수준이 어느 정도를 지나치면 얘기는 달라진다. 얼마나 형편없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글이 재미가 없네', '글이 별 내용이 없네', '문장 구성이 너무 단순하네' 등 그다지 잘 못쓴 글을 봤을 때 으레 할 수 있는 평가가 아니라 '저게 도대체 뭐야'라는 반응부터 튀어나오게 만드는 이상한 글이어야만 한다. 글배우는 문동시인선 표지 디자인으로 어그로를 끄는 데 성공했다. 이걸 하나의 퍼포먼스라 생각하고 그의 집필과 출판까지의 과정을 보면 꽤 재밌다. R. Mutt의 변기 같기도 하다. 다음 에세이집 낼 때 표지에 지은이 얼굴과 전혀 닮지 않은 대충 그린 그림도 넣으면 더 훌륭할 듯하다. 영어로 'It's so b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