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1일 목요일

자식들은 왜 추석에 찾아오지 말라는 소리에도 전전긍긍하는가

 자식들은 왜 부모, 시부모가 추석에 오지 말라고 해도 전전긍긍하는가? '오지 말랬다고 정말 안 오냐'라는 볼멘소리 혹은 그에 준하는 수동적 공격성을 지겹도록 겪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냥 가면 아무 것도 준비 안 했는데 귀찮게 왜 왔냐는 핀잔을 들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당신들께서는 좀처럼 진짜로 원하는 것을 말씀하시지 않는다.

다 망가져가는 세탁기를 보여주면서 "아들/딸아, 우리는 옷이 더러워져도 상관 없으니 걱정 안 해도 되고 신경 안 써도 된다."라고 영상메시지를 보내는 노부부의 이야기 따위는 일말의 감동 코드가 섞인 우스개로 흔히 소비되지만 부모의 말씀을 너무 잘 따라서 정말로 신경 안 쓰면 후레자식 된다.

뭔가 까다로울 수 있는 일을 부탁하기에는 부탁하는 입장으로서 접고 들어가야 하는데 그러기는 싫고 염치없이 보이기도 싫고 강압적으로 하기에는 나쁜 사람 되기가 싫은 사람은 자신의 요구를 상대방이 눈치껏 먼저 알아내기를 원한다.

'척하면 척하는' 빠른 눈치로 긴 말이 필요 없이 요구사항이 관철되기를 바라는 소통은 매우 비효율적이다. 말하는 사람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혼자 알아서 생각하는 데 드는 시간이 처음부터 자세히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데 드는 시간보다 더 길 터이다. 확신을 기하기 위해 몇가지 물어보면 으레 돌아오는 건 '그걸 꼭 다 말을 해야 아냐'는 핀잔이다. 편의점 알바해본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흔히 꼽히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빡치는 손님 유형이 이런 사람이다. 봉투 필요하시냐고 물으면 '그럼 이걸 다 손으로 들고 가란 말이냐'며 쏘아붙이는 사람. 이런 화법을 구사하는 사람은 생각외로 가까이 있다.

비슷하게, 뭐든 애매하게 업무 지시를 내리거나 늘 '알아서 하라'고 말하는 직장상사 욕을 쉽게 접한다. 대충 말해도 잘 알아듣고 수행하는 직원을 원하는 마음을 이해 못할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음흉한 속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본인이 책임질 생각이 없는 것이다. 알아서 했는데 결과가 안 좋으면 알아서 한 사람을 탓하면 되기 때문이다.

조조가 토벌을 갔다가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어느날 밤 암구호를 계륵으로 정하라는 말에 양수는 조조의 의중을 지레짐작하고 병사들에게 짐싸라고 했다가 목이 날아갔다. 섣불리 나대다가는 좆되는 수가 있다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로 흔히 전해지지만 애초부터 조조라는 인물이 기다 아니다를 분명하게 말하는 사람이었으면 그런 일은 안 일어났을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평소 부하들 눈치 없다고 얼마나 조인트를 까댔으면 그날 저녁식사 메뉴를 암호로 정한 것만으로 그 의중을 파악하려고 고민하게 만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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