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2022.9.6. “잘 모르겠지만 여가부는 나쁜 집단”이라는 반페미니즘 [한겨레S] 김내훈의 속도조절

 

“잘 모르겠지만 여가부는 나쁜 집단”이라는 반페미니즘

[한겨레S] 김내훈의 속도조절
‘우영우’는 왜 반페미에 소환됐을까

페미니즘 악용해 젠더 분열 획책
‘남성 청년들’ 반진보 첨병 이용
“드라마 우영우, 남혐” 주장까지
선동 증폭, 강도와 속도 빨라져

  • 수정 2022-09-06 16:08
  • 등록 2022-09-06 16:08
“여성가족부는 나쁘다”는 비판에는 별다른 근거 없이 그 ‘이름’만을 공격하는 경우들이 있다. 사진은 반페미니즘 시위 현장 모습. 문화방송(MBC) ‘PD수첩’ 화면 갈무리
“여성가족부는 나쁘다”는 비판에는 별다른 근거 없이 그 ‘이름’만을 공격하는 경우들이 있다. 사진은 반페미니즘 시위 현장 모습. 문화방송(MBC) ‘PD수첩’ 화면 갈무리

대선 직후 <피디(PD)수첩>에서 일반인 20대 남성을 상대로 한 길거리 인터뷰에서 한 남성이 여성가족부를 비난했다. 말도 안 되는 정책을 펼친다는 것이 이유였다. 피디는 “그 말도 안 된다는 정책에 무엇이 있냐”고 물었고, 이 남성은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여가부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거의 없지만, 여가부가 나쁜 집단이라는 것만큼은 잘 안다고 스스로 믿고 있다. 여가부에 대한 반감은 여가부 자체를 향한 것이 아니라 여가부라는 이름에 대한 반감이다.

지난번 글(8월13일치)에서 ‘청년’과 ‘586’이라는 이름에 관해 이야기했다. 요컨대 보수세력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담론을 구축하기 위해 언론의 힘을 빌려 586을 한국 사회 모든 병폐가 집약된 존재로 묘사하고, 그에 대한 저항군으로 청년들을 동원한 결과, 지금 한국 사회 담론에서 말해지는 청년과 586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

페미니즘 이용해 분열 노린 정치권

‘586’과 ‘청년’이 세대 간 분열을 수놓은 이름이라고 한다면 한국 청년 사이 젠더 분열을 수놓은 이름은 단연 ‘페미니즘’이다. 보수세력은 언론과 야합하여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을 이용해 젠더 분열까지 획책하여 청년 남성들을 반민주당, 반진보의 첨병으로 징병하고 자기들의 확실한 아군으로 확보하고자 했다. 세대 분열 기획보다 젠더 분열 기획이 훨씬 주효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인데, 사회경제적 문제를 세대의 문제로 설득력 있게 축소하는 것은 다소 복잡한 서사의 선전을 요구했던 반면, 페미니즘은 문화적 불만을 자극하는 기폭제로 용이하다는 점에서 수많은 청년 남성의 공감을 인위적으로 유도하기에 알맞았다. 사회경제적 불만은 비교적 많은 읽기와 공부가 필요했다. 페미니즘과 결부된 문화적 불만은 수년 전부터 수많은 네티즌들, 유튜버들, 사이버 레커(렉카)들이 밥상을 다 차려놓고 있었기 때문에 보수세력은 수저만 얹으면 될 일이었다.

2014년부터 일었던 이른바 페미니즘 제4물결 이래 ‘메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이러저러한 ‘남혐’ 사례들에 기분 상하고 피로했던 청년 남성들을 반정부 여론에 동원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문재인 정권이 구조적 차별들을 조금이나마 완화하고자 실행했던 온건한 정책, 메시지들에 죄다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페미니즘이라는 것에 완전하게 무지했던 청년 남성들은 일찍이 ‘남혐’과 페미니즘을 동일시하고 있었고, 그 결과 모든 진보적 의제와 가치들을 ‘급진적’ ‘극성’ 페미의 그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민주당 및 진보진영에서 성폭력 사건이 있을 때마다 보수세력과 언론은 위선 프레임을 강화했다. 성폭력 자체보다 ‘범죄자가 페미니스트였다’라는 말을 부각함으로써 범죄 사실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페미니즘만 남게 만들었다. 그 결과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에도 위선과 ‘내로남불’이 들어가게 됐다. 즉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은 민주당 및 진보세력에 대한 불만과 함께 시대적인 가치관의 변화에 대한 이질감과 어색함을 뒤섞어버린 채 호명함으로써 청년 남성을 보수세력의 편으로 만드는 헤게모니적 기표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페미니즘=위선=내로남불=586=진보=무능=문재인 정권=민주당=기득권’이라는 담론사슬이다. 이에 따라 청년 남성들은 페미니즘에 대해 완전히 무지한 채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에 반사적으로 극불호의 정서부터 갖도록 추동된다. 몇 가지 연구 문헌을 보건대 청년 남성들의 젠더 의식이 특별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가부장제에 대한 반감은 윗세대에 비해 가장 높은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반페미니즘 정서가 깊은 것은 이들에게 반페미니즘이 성차별주의와 동의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의 반페미니즘은 성차별 구조를 없애기 위한 각종 정책 및 의제에 대한 반대와 구별되어야 한다. 요컨대 청년 남성들은 성차별적 사회를 지향하기 때문에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페미니즘이 싫어서 그와 관련된 성평등 움직임에 반발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에 대한 반감이 먼저 있고, 그에 결부된 가치들에 대한 반감이 후행한다.

지난 3월15일 방영된 문화방송 &lt;피디수첩&gt; ‘젠더 갈등과 여성가족부’ 편의 한 장면. 문화방송 제공
지난 3월15일 방영된 문화방송 <피디수첩> ‘젠더 갈등과 여성가족부’ 편의 한 장면. 문화방송 제공
반페미니즘이 확산하는 경로

한 방송에서 조병영 한양대 교수(국어교육과)는 오늘날 점점 하락하는 문해력과 관련해서, 화자의 맥락 파악 없이 특정 단어에만 반응하고 집착하는 경향에 관해 이야기했다. 반페미니즘은 이러한 경향과 만나서 아주 빠르고 강하게 증폭된다. 최근의 예로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특정 에피소드와 관련한 짧은 해프닝이 있었다. 해당 회차는 여성 노동 인권, 구조조정 때 성차별을 다루며, 실화를 각색한 것이다. 이전까지의 회차와 비교해 특별할 것이 없는 에피소드였지만 몇몇 헌신적인 반페미니스트는 해당 에피소드에서 몇 차례 거론된 여성 노동 인권이라는 단어에 꽂혔던가 보다. 이들은 드라마 작가의 이력을 찾아보고 그가 과거 ‘페미니즘 영화’를 연출한 바 있다는 사실을 들며(서울국제여성영화제 신인상 수상 이력으로부터 페미니즘 영화를 유추한 듯하다) 작가가 사실은 페미니스트였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작가가 페미니스트라는 사실이 흥행에 어떤 악영향이라도 줄 거라고 믿는 양, 더 나아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남혐’ 드라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러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하지만 몇몇 언론사에서 이것을 ‘논란’이라고 보도한 탓에, 짧은 해프닝으로 그칠 일이 시끄러운 논쟁으로 번질 뻔했다.

살면서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 중 하나가 유치원생 웃기는 것이다. 똥, 방귀 이야기만 하면 깔깔거리니까. 그 못지않게 쉬운 일이 중학생 웃기는 것일 텐데, 섹스라고 한번 외치기만 하면 열에 아홉은 킬킬거릴 것이다. 그다음으로 쉬운 일은 일부 청년 남성을 발끈하게 만들기인 듯하다. 페미니즘의 편린이라도 연상케 하는 단어 몇개만 귀에 들어가면 반사적으로 화부터 내는 사람이 점점 더 많이 보인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음모론과 팬덤을 보도하는 종편방송의 악질적 프레임

  이른바 보수언론 특히 종편방송의 시사프로그램에서 악의적 프레임으로써 여론을 왜곡하고 담론을 오염시키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 이미 수많은 사람이 지적했고 비판했다 . 이번 이재명 살인미수 정치테러 관련해서도 예외 없이 서로 전혀 무관한 것들을 상관있는 것처럼 엮어내거나 , 필연적인 관계가 있는 요인들을 무관한 것으로 해체하는 프레임으로써 인위적으로 특정인과 정당에 대한 적대감을 유도하고 있다 . 거짓 , 가짜뉴스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가짜뉴스가 아니기 때문에 더 대처하기가 까다롭다 .   MBN 에서 뉴스와이드라는 정치시사프로그램이 있다 . 저녁식사 때 틀어놓기 딱 좋아서 10 여년 전부터 즐겨보던 프로그램이다 . 프로그램 제목이 무색하게 종합 뉴스는 아니고 99% 는 여야 정치를 다룬다 . 2:2 혹은 2:3 비율로 여야 성향의 평론가나 변호사 , 정당인 패널이 출연해서 사안마다 한 마디씩 논평한다 . 다루는 사안이 많은데 시간은 한정되어서 정말 한두 마디만 할 수 있어서 토론도 딱히 되지 않는다 . 제작진으로서도 ' 뉴스 ' 라는 제목이 어색했는지 아주 잠시 동안 ' 정치와이드 ' 로 제목을 바꿨다가 다시 뉴스와이드로 돌아왔다 . 백운기 앵커가 진행할 때 제일 볼 만했는 , 정권교체 되자마자 알 수 없는 이유로 현재 이상훈 앵커로 교체되었다 . 과거 송지헌 앵커처럼 대놓고 편파진행을 하는 것 같진 않지만 은근히 신경을 긁는 부분이 있다 .   지난 4 일에 방송한 이재명 피습 관련 보도에서 음모론을 비판적으로 논평하는 꼭지가 있었는데 여기서 보여진 프레임이 굉장히 교묘하면서도 악질적이었다 . 일단 양쪽 진영에서 제기된 ' 음모론 ' 을 하나씩 소개한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균형이나마 잡고자 애쓴 표시는 있다 . 그러나 악의적으로 사실관계와 영상에 보이는 모든 것을 부정해가며 온갖 저주와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사람과 , 단순한 의혹 제기와 음모론 사이의 문턱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사람을 동...

인싸들을 죽이자.

  "미국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클리셰는 항상 최악의 성차별주의자들은 항상 체격만 좋고 공부는 전혀 안 하는 고교 운동선수들로 묘사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인터넷 세계는 실제는 전혀 다름을 보여준다. 인터넷으로 인해 드러나게 된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오히려 너드nerd 성향을 갖고 있으며 스스로 착한 남자라고 생각하지만 여자를 사귄 적이 없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증오로 가득 차 있고 타인의 행복에 미친듯이 시기심을 느끼는 인종주의자이자 여성혐오자라는 것이다. 비슷하게, 60년대 이후로 서구 대중문화를 지배해왔던 미학적 가치들, 이를테면 위반, 전복, 반문화와 같은 것들이야말로 오늘날 온라인 극우의 본질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온라인 극우는 종래의 전통적인 편견들로 가득하지만 니체적인 반-도덕주의에 힘입어 기독교 윤리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에서 과거의 극우와는 다르다." 영미권에서 쓰이는 Normies라는 말은 우리말로 '인싸' 정도로 번역될 수 있겠다. 직역하면 평범한 사람들인데, 20+n살이 넘도록 제대로 된 이성교제 경험이 없고 동성인 친구마저 극히 적은 본인들의 비참한 아다인생과는 다르게 정상적인 사회적 삶을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시기, 질투, 더 나가면 저주까지 하고 살인도 불사하는 그러한 멘탈리티가 집약된 단어라 할 수 있다. 누구나 다 스스로 '아싸'라고 주장하는 한국에서의 '인싸'의 용례와는 약간 다르다. 하지만 강남역 살인사건부터 PC방 살인사건까지, 알파메일alpha male에 의해 번식 경쟁에서 탈락했다고 믿는, 그렇게 될 것이라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 베타메일beta male의 원한감정은 인셀( In voluntary Ce libate, 비자발적 독신)이라는 신조어로부터 짐작 가능하듯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미국에서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셀의 멘탈리티를 가진 자들이 정치세력화하면 대안우파...

유튜버들의 선넘기

" 한국의 문화는 비천함을 사유할 수 있는 역량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제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르는 평가의 기준이 도덕으로 대체됐기 때문이다. 동시대의 평론가는 도덕적으로 ‘좋은 것’의 위치에서 ‘나쁜 것’을 굽어보며 ‘나쁜 것’을 철저히 거부하도록 장려한다. 나는 시대를 역행해 비천함을 꿈의 질료로 활용하는 문화비평을 복권시키자고 권유하고 싶다. 상속권을 박탈당한 자의 입장에서 문화를 새로 서술하자. 사회적 실재, 세계, 시간성, 자본주의, 한국힙합, 실시간 스트리밍, 밈과 농담, 우리 문화 내부의 비천함을 사고하자. "   t毬x(malware)라는 사람이 마테리알에 쓴 이 글 https://ma-te-ri-al.online/3c16 은   나로서는 아주 어려워서 이해하기 힘들다. 다만 위에 인용한 부분은 이해 여부는 차치하고 상당한 울림이 있다. 내가 지금껏 생각해왔던 것과 비슷하기 때문일 테다. 비평이든 연구든 하려면 비위가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이든 도덕적이든 어떤 이유가 되었건 속으로부터 역한 기분이 들더라도 어떤 것을 다만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은 대선 직후 트럼프에 투표한 노동계층을 비천한 존재라 불렀다. 정확히는 "You could put them in the basket of deplorables"라 했는데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것들이라 의역 가능하다. 유력 정치인이 대다수 유권자들을 일거에 기각해버렸는데 리버럴 성향 지지자들은 이에 환호했다.  미국에서 기각문화Cancel culture라는 것이 흥하고 있다.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들이나 노예제를 낭만화한다는 이유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같은 영화의 영화사적 의의를 폄하하려는 움직임들이다. 혹은 떠오르는 유명인, 정치인, 뮤지션, 배우 등의 과거를 캐내어 도덕적 낙인을 찍는 식이다. 혹은 최근의 잘못을 과거의 행보들에까지 소급적용해 생애를 깡그리 부정하는 식이다. 대학에서는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