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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문화저널 2022년 3월

 전북문화저널 원고 김내훈

 

대통령 선거를 치른 후 아직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윤석열 당선자의 국정 수행 긍정 전망이 50%가 채 되지 않는다. 박근혜조차도 당선 직후 긍정 전망치가 64%가 나왔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충격적인 수치다. 이것은 윤석열 당선자에게 투표한 사람들조차 처음부터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고 투표를 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기대를 안 하는 것을 넘어 벌써 후회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잘하리라는 기대도 염원도 없이 2번 후보를 찍은 것인가? 60% 가까이 윤석열 후보를 선택한 20대 남성 유권자 대다수는 정권 교체와 이준석 대표 등의 반페미니즘 행보에 동의하는 것을 선택의 이유로 꼽았다. 나는 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한 92년생 남성인 한 친구에게 물었다. 그의 대답은 나름 신선했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압승했으니 민주당의 폭주를 막기 위해 정권이 교체되어야 하고, 윤석열 당선자와 국민의힘은 의석수에서 크게 밀리기 때문에 균형 잡힌 국정 운영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반페미니즘, 여성가족부 폐지 따위 운운하는 것에 비하면 나름 합리적으로도 보인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이 친구의 논리야말로 이 모든 비극의 원흉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그 원흉이란 사회와 정부와 국가를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각 주제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하려면 단행본 수십 권은 필요할 테지만 그러한 높은 수준의 이해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다만 사회와 정부(정치)와 국가가 서로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아주 기초적인 구별이 안 된 탓에 오늘의 선거 비극이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먼저 정부와 국가를 비교하자면, 국가가 더 큰 범주의 개념이라는 것은 아주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시간을 투자한다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전혀 어렵지 않다. 현 지배계급의 이해관계에 복무하는 생산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형성된 기구라고 하는 맑스주의적 국가론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더라도, 지배계급의 계급지배를 유지하거나 조금이나마 계급 모순을 완화하는 기능을 하는 정치 기구라고 말할 수 있겠다. 후자의 기능을 얼마나 잘 수행할 것이냐는, 국가의 키를 잡고 조종하는’(정부의 어원이 되는 라틴어 guberno) 정부의 의지와 역량에 달려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를 구성하는 것으로 정부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군대, 경찰 등 공권력, 검찰과 대법원, 헌법재판소 등 사법 권력 그리고 관료 등이 모두 국가의 일부로, 억압적 국가장치로 분류된다. 억압적 국가장치는 사회의 유지와 재생산을 인민의 동의 없이 폭력과 억압으로 수행한다. 이러한 비선출 권력 앞에서 개혁적 정부의 개혁 시도가 좌절되는 일은 매우 흔하다. 심지어 쿠데타처럼 정부를 엎어버리는 일도 있다. 쿠데타는 너무 극단적일지라도, 어찌 됐건 진보적·개혁적인 정권에 협조적인 군대나 검찰, 진보적 정책에 발맞춰 기민하게 움직이는 관료 집단 등을 상상하기는 매우 어렵다.

억압적 국가장치 외에 폭력이나 억압이 아니라 비강제적인 연성 권력으로써 사회의 재생산을 수행하는 국가장치로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가 있다. 이것은 언론과 대중미디어, 학교 교육, 종교, 노동조합, 가정을 포함한다.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는 사회의 일원, 노동자로서의 자질을 작업장 바깥의 사적인 영역에서 재생산한다.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이, 조금이라도 차별을 완화하려 하는 자유주의적 조처와 정책에 눈알 뒤집힌 채 반기를 드는 종교 단체를 떠올리면 될 것이다. 언론 미디어는 말할 것도 없다. 민주당 정권 아래 어떤 정책에 대해 조금이라도 불만이 제기되면 엄청난 큰일이라도 일어난 양 호들갑을 떨고, 민주당 정권 인사의 기자회견에서는 공격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권력의 감시자 행세를 한다. 이것 자체가 문제랄 것은 없다. 하지만 국민의힘 윤석열 당선자 앞에서는 귀하신 분의 심기라도 건드릴까 전전긍긍하며 질문을 하는 게 외람된다며 양해부터 구한다.

이렇듯 보수세력에 유리하게 매우 불균형한 조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한답시고 정권 교체를 요구하는 논리가 얼마나 천부당만부당한 것인지 알아야 한다. 민주당의 총선 압승은 균형추를 아주 살짝 옮긴 것에 불과하다. 또한 21대 총선의 전체 득표수를 고려한다면 민주당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인상은, 승자독식 선거 제도가 일으킨 착시현상에 불과하다.

사회는 경제와 정치와 국가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우리가 으레 경제가 어렵다라고 하면서 갖게 되는 불만들 중 대다수는 사실 경제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에 기인한다. 경제 자체만 놓고 봤을 때 한국은 오히려 그동안 명실상부한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그에 비례해 우리의 삶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어려워지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기업들이 고용을 줄이고, 더 많은 일자리에 투자하지 않고 금융과 부동산에 투자하도록 강제되는 사회 구조의 문제 탓이다. 사회 구조에 관련한 불만을 사회적 불만이라고 한다면, 지난 수십 년 동안 누적됐던 사회적 불만을 청년들이 높은 밀도로 응집시켜 유행시킨 단어가 바로 헬조선이다.

극심한 경쟁에 시달리며 누구보다 더 노력하면서도 보상이 따르지 않는 헬조선 사회에 대한 불만을 키우던 가운데 갑자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특히 정유라의 불공정 사례가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정유라가 한국 사회의 모든 불공정과 불평등의 화신이 되었고 한국 사회 구조의 문제는 갑자기 정유라의 불공정 및 최순실 등 국정 농단 세력의 탓으로 환원되었다. 이에 따라 헬조선에 대한 사회적 불만은 정권 퇴진 요구로 빠르게 모였고, ‘정권 퇴진은 수많은 인파를 촛불시위에 동원한 강력한 기호가 되었다.

다소 도발적인 명제를 던지자면, 2016년말 촛불시위와 20대 대선은 같은 논리로 진행되었다. 사회와 정치와 국가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국민들은, 정권만 교체되면 사회 문제가 해결되고 사회적 불만이 해소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한 기대와 희망을 갖고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연달아 민주당에 승리를 안겨줬다. 하지만 복잡한 사회 구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여러 개혁 정책들은 정부를 제외한 다른 국가 장치들 앞에서 미흡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이른바 조국 사태’, ‘인국공 사태’, ‘윤미향 사태’, ‘LH 사태등에 대한 정치권과 언론의 가차 없는 공격과 호들갑을 거치면서 한국 사회의 모든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구조가 민주당 세력으로 의인화되기까지 했다. 그 결과, 정부와 국가를 구분하지 못하는 국민들에게 민주당 정부는 엄청난 의석수를 가지고도 문제를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 역대 가장 무능하고 기만적이고 위선적인 세력으로 비춰지게 되었다.

그렇게 수많은 국민에게 응징의 정서가 강하게 각인되었다. 절반 가까이 되는 유권자가 아무런 의제도 없이 혐오만 설파하는 후보에게, 아무런 기대도 가지지 않은 채 그저 응징이라는 일념으로 표를 던졌다. 그리고 벌써 자신의 손가락을 저주하는 사람이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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