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블로그 이름이 그렇듯 이 글 제목도 다소 장난스레 지은 것이니 높은 수준의 분석적인 글을 기대하지는 마시기를 바란다. 곳곳에 부정확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한 2년 전부터 친한 친구들을 상대로 어떤 실험 비슷한 것을 하고 있다. 부동층을 설득하는 내러티브를 찾는 것이다. 중고교 동창 대부분은 정치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나름의 논리와 근거를 가지고 양대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다. 이들은 중도를 자처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직전 대선과 지선에서 민주당에 투표했을지라도 언제든 지지를 거두고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에 투표할 준비를 하고 있으며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를 도처에서 기꺼이 적극적으로 찾는다.
친구들은 하나둘씩 '대가리가 깨졌다'(대가리 깨져도 문재인 즉 대깨문에 빗대어 문재인정부/민주당 지지 철회를 뜻하는 말)고 선언하고 있다. 그렇지만 고맙게도 시간을 내서 이번 총선 관련하여, 여전히 대깨문으로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친구들에게 마음껏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줬다. 다음은 그 자리에서 얘기한 것들을 글로 정리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과 민주당이 극좌라서 지지하지 못한다는 말을 동시에 하는 사람들은 아주 많다. 엄밀히 말해 모순은 아니다. 둘 다 똑같이 부패하고 금뱃지 다는 데만 혈안이 된 사람들이지만 좌파는 더 싫기 때문에 그 중에서 차라리 부패한 보수를 찍겠다는 것일 테다.
그러나 한 가지 면에서 오류가 있다. 민주당은 극좌도 좌파도 아니다. 상대적으로 보아 일말의 진보적인 면은 있을지언정 진보라는 수사가 민주당의 핵심일 수는 없다. 표를 하나 만들어봤다. 한국 정치의 오버톤 윈도(Overton Window), 즉 사상의 허용 범위이다. 범위는 계속해서 오른쪽으로 좁혀들어갔다.
현재 한국 정치 지형은 파란색 사각형과 그 오른쪽에 국한한다. 민주당은 잘 쳐줘야 제3의길/사회자유주의 정당이다. 사회자유주의에서 사민주의까지 기조는 자본주의를 ‘고쳐 쓰자’이다. 사민주의를 넘어선 극좌진영만이 생산양식의 근본적 재구조화를 지향한다. 미래통합당은 신자유주의와 권위적보수주의에 걸쳐 있다.
한국에서 극좌와 극우가 비등한 세력을 갖고 경합했던 시절은 1950년대 이후로 없다. 이승만에 도전했던 진보당 정치인 조봉암의 사형 이후 구심점을 잃은 진보세력은 박정희의 청소로 인해 궤멸했다.
박정희 때 가파른 경제성장으로 중산층이 성장하면서 70년대 학번 대학생들로부터 정치적 의식이 각성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대학 내 민주화 및 사회변혁 동아리가 하나둘씩 생기는데 이들을 일컫는 운동권 집단은 전두환의 문화 유화 정책을 계기로 절정을 이룬다. 이른바 386세대다. 이들이 처음으로 국회에 대거 진입하기 시작한 것이 1996년~2004년까지인데 당시 이들이 30대여서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따라서 지금은 n86이라고 한다.
80년대 중후반 당시 운동권은 아주 거칠게 두 진영으로 나뉘어서 서로 논쟁을 벌였다. NL(민족해방-자주파[주사파])과 PD(민중민주주의-평등파). 저항의 담론을 만들기 위해서는 저항 대상과 저항 주체를 설정해야 하는데 양 진영은 상이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 아주 단순하게 정리하면 대상-주체의 관계를 NL은 <미국이 세운 괴뢰정부 - 한민족>, PD는 <파시스트 정부 - 노동계급>으로 설정했다. 따라서 북한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다를 수밖에 없었다. 당시만 해도 북한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북한에 환상을 갖는 사람들이 많았고 따라서 NL에 동조하는 사람이 많았다. 반면 좀 더 맑스주의 전통을 따르던 PD들에게는 김일성도 노동계급을 수탈하는 독재자에 불과했기 때문에 반북성향이었다. NL은 한반도를 미국제국주의의 식민지로 규정하고 남북이 함께 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친북성향이었다.
이들은 함께 1987년 6월 항쟁에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다. 그해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후보 지지 여부를 두고 다시 갈라졌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중에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진보에 가까운 김대중을 지지하자는 게 운동권 주류의 입장, 단독 진보후보를 내세우자는 게 비주류 입장. 비주류는 PD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들은 노태우 당선 뒤 합법 진보정당 창당을 단행, 김문수, 이재오가 지도부로 있었던 민중당이다. 그러나 1990년 총선에서 전멸하여 당은 해산하고 이들 중 상당수가 김영삼의 부름에 응해 미래통합당의 전신인 민주자유당에 입당하여 보수 정치인으로 변신한다.
이들을 따라가지 않은 일부는 NL과 재연합해 2004년 민주노동당 열풍을 일으킨다. 그러다 또 갈등이 일어나고 NL주류인 민노당과 PD주류인 진보신당으로 갈렸다가, 진보신당의 스타정치인이었던 심상정 노회찬 등이 다시 민노당 그리고 유시민의 국민참여당과 합쳐서 통합진보당을 만들었다. 그런데 통진당 주류였던 NL파들이 당내경선 과정에 장난질을 해서 통진당 사태가 일어나고 심상정 노회찬 유시민 등이 다시 빠져나와서 정의당을 만들었다.
그 외 소련 붕괴를 계기로 사회주의에 환멸을 갖게 된 운동권 다수는 민주당으로 들어갔다. 요컨대 운동권 출신이 많다는 이유로 민주당을 좌파라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김대중은 1997년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IMF의 요구사항을 200% 시행했다. 금융 자본시장 개방, 비정규직 정리해고제 노동유연화 등. 재벌개혁은 용두사미에 그쳤다. 재벌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신자유주의정책을 가속화했고 FTA를 추진했다. 이런 탓에 좌파들이 민주당을 아주 싫어한다. 다만 그동안 보수정권 견제를 위해 선거 때만 일시적으로 연합했을 뿐이다.
김대중-노무현 집권기 동안 경제위기는 극복되고 파이는 더 커졌다. 그러나 민중에게 돌아오는 몫은 매우 적었다. 오히려 해고되는 사람들이 많았다. 민중의 분노는 이명박의 압승으로 이어졌다. 이명박 때 코스피는 800선까지 곤두박질친다. 08년경제위기의 불가항력에 기인한 것으로 무조건 이명박 개인의 무능을 탓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한국은 경제위기의 직격타는 피했는데 당시 세계기업들의 중국 아웃소싱 등으로 중국 경제가 급상승하는 중이어서 대중국 무역으로 어느 정도 상쇄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즉 이것도 이명박 개인이 잘한 거라고 하기 어렵다.
요컨대 오늘날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계에서는 모든 국가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탓에 경제적 측면에 한해서 한 나라의 지도자가 잘하고 못하고를 따지는 게 거의 무의미하다. 더구나 지금은 중국도 정체기여서 가치를 창출할 통로가 극히 제한적이 되었다.
지금은 ‘재난자본주의’의 시대로 일컬어진다. 지난 백년간의 성장의 대가가 한꺼번에 들이닥치고 있다. 신종바이러스 창궐은 그 일부일 뿐이다.
재난자본주의 시대에서 국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자본주의를 고수하는 한, 경제는 장기적인 불황과 극히 단기간의 반등만이 가능하다고 함이 옳다. 이런 때에 경제성장을 외치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관건은 장기간의 불황과 지구적 위기 상황에 어떻게 고꾸라지느냐이다. 머리부터 떨어지기와 두 다리로 안착하기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정책적으로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말하는 게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닐 수 있지만 결정적인 부분에서 둘의 차이가 심하게 드러난다. 바로 국민 안전이라는 국가의 기본적인 기능을 수행할 능력 여부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은 아직은 100% 드러났다고 할 수 없겠으나 어느 정도 드러난 윤곽을 종합해 요약하면 대충 이런 식이었을 것이다. 2014년 4월 16일은 수요일이었다. 박근혜는 맘대로 수요일을 노는 날로 정했다. 상사가 출근 안 한 사무실을 상상해보자. 세월호가 침몰하기 시작한 것은 오전 아홉시다. 열시쯤 안보실에서 전화를 걸었는데 박근혜는 자느라고 안 받았다. 박근혜 최측근들은 박근혜를 깨우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11시에는 전원이 구출되었다는 오보가 나와서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두시쯤 최순실이 청와대에 와서 박근혜는 비로소 상황보고를 받았다. 그리고 미용사를 불러 두 시간 정도 육영수 스타일 올림머리를 준비하고 중앙재난대책본부로 출발했다. 다섯 시쯤 도착해서 ‘구명조끼가 많은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박근혜 때 코로나19가 터졌으면 어떻게 됐을까? 박근혜를 옹립하고 그 밑에서 호가호위하던 정치인들 대부분이 여전히 미래통합당에 다수 남아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친박신당이 따로 있다고 미래통합당이 친박이 아닌 게 아니다. 혹은 이들이 박근혜를 버렸다고 해서 뭔가 달라지는 게 있는 것도 아니다. 완전히 함량 미달의 인물을 대선후보로 내세운 바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현 정부의 코로나19 대처가 전세계의 귀감이 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봉쇄하지 않고 셧다운도 하지 않은 채 행정력을 오버클럭하여 경제침체를 최소화하면서 위기상황에서 안착하는 중이다. 순전히 질병본부가 잘한 덕이라는 주장은 일고의 가치가 없다. 이 주장은 한국 외 대부분 나라들의 의료인들이 죄다 무능한 집단이라고 할 때만 말이 된다.
중국발 입국을 막지 않아서 일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는 주장은 이탈리아의 사례가 반증한다. 중국에서 감염되고 다른 나라에 있다가 한국에 오는 사람까지 막지 않는 이상, 즉 사실상 국경을 봉쇄하지 않는 이상 입국제한은 무의미하다.
문재인 정부가 중국 눈치를 본다는 주장은 반만 맞다. 중국에 아웃소싱하는 대기업 눈치를 본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계 안에서 친기업적 정책은 자국민을 등한시하고 외국만을 위하는 것으로 왜곡되어 보이게 된다.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을 펼친다는 점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대동소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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