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13일 월요일

한국은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있다. 미국은 지고 있다. 번역

워싱턴포스트 한국은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있다. 미국은 지고 있다.

South Korea is winning the fight against covid-19. The U.S. is failing.

https://www.washingtonpost.com/outlook/2020/04/10/south-korea-is-winning-fight-against-covid-19-us-is-failing/
Gregg A. Brazinsky. 2020.4.10.


코로나바이러스가 전세계적으로 퍼지면서 수천 명이 죽고 있으며 정부들은 그에 대응하는 데 허둥지둥하는 동안, 효율적인 대처를 보이며 끊임없이 찬사를 받는 한 나라가 있다. 바로 남한이다. 감염병 첫 사례가 나오는 즉시 한국 정부는 미국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수준으로 검사 속도를 끌어올렸다. 빠른 대응은 바이러스 확산 속도를 줄였고 수천의 생명을 살렸다. 48일까지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는 한국에서 200명이 나왔고(백만 명 당 1) 새로운 사망 사례가 나오는 속도는 계속 줄고 있다. 그동안 미국에서는 13,000명이 죽었고 (백만 명 당 39) 사망 사례가 나오는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많은 사람들에게는, 아시아에 있는 작은 나라가 세계 대부분 나라들이 실패를 겪는 가운데 그토록 잘 하고 있다는 것이 당혹스럽게 다가올 수 있다. 2015년에 메르스 사태를 거친 경험 이후 환골탈태를 한 것인가? 훌륭한 건강보험제도 덕분인가? 문화적 전통의 차이인가? 마스크를 잘 써서? 모두 어느 정도는 의심의 여지없이 한국의 신속한 검사와 효과적인 감염병 관리에 기여를 한 것들이다.
 
그러나 한국의 효율적인 대응이 가능했던 것은 또한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은 두 가지 요인에 기인한다: 국가와 민간 영역 간의 협력 관계, 그리고 공공의료의 강도 높은 개입과 간섭에 대한 한국 인민의 (거의 열정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의)관대함이 그것이다. 두 요인의 기원은 급속한 산업화와 냉전시기의 국가형성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120일 한국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왔을 때 정부는 지체 없는 포괄적 행동의 필요성을 인지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1월에 확진자가 네 명밖에 나오지 않았을 때 이미 보건복지부 관계자들은 의료 기업 간부들과 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보건부 관계자들은 기업 간부들에게 빠른 시간 안에 시험 장비를 마련할 것을 요구했고 질병관리본부의 신속한 승인을 약속했다.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정부는 코젠바이오텍에서 개발한 진단 키트를 승인했고 이후 다른 기업에서 나온 키트도 패스트트랙으로 승인했다.
 
노력은 아주 성공적인 결실을 낳아 3월이 되어서 47개 국가들은 한국으로부터 진단 키트를 수입하려 한다. 마스크와 호흡기 제작을 둘러싸고 3M사 및 GM사와 옥신각신하고 있는 트럼프와 비교하면, 한국에서 정부와 민간 영역의 협력은 아주 매끄러워 보인다. 기업들은 정부로부터 강한 지원을 받으면서 국가의 요구에 민첩하게 반응했다.
 
긴급한 국가의 부름에 응하는 민간 자본의 재빠른 움직임은 1960년대 박정희가 선구자 격으로 보여준 바 있는, 나라에 대한 사명 하의 국가-민간 동업관계의 전례를 따른다. 1961년 박정희가 군부쿠데타로 집권할 당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 중 하나였으며 당시 미국 당국이 쥐굴이라고 부를 정도로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박정희는 두 자릿수 성장률을 성취하고 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한 강한 결의를 갖고 움직였다.
 
박정희는 19년의 집권기동안 미국으로부터 많은 조언을 받으며 통치했지만 그의 발전모델은 미국식 자유 시장 자본주의를 모방한 것이 아니었다. 박정희의 발전모델은 대기업들을 국가의 지침을 잘 수행하면 특별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식으로 국가에 가까이 두었다. 60년대에 박정희는 경제성장을 위해 수출을 과감히 늘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박정희 정부는 옷감, 가발 등의 경공업 제품을 제작하여 수출하려 한 기업들에 저리대출을 허용했다. 성공적으로 사업을 해낸 기업에는 국가로부터 더 후한 인센티브가 주어졌다.
 
이 발전모델에는 물론 안 좋은 면도 있었다. 국가와 사업체의 정경유착은 부패를 만연케 했으며 박정희의 권력 집중이 강화되고 억압의 강도가 더해졌다. 다만 순수하게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분명 효과적이었다. 수출이 증가하고 한국 기업들이 국제 시장에서 차지하는 지분이 늘기 시작했으며 국민 소득이 증가했다.
 
박정희는 그의 군사적 뿌리로부터 벗어난 적이 결코 없다. 그가 군인으로서 배워왔던 관리감독 기술과 규율은 발전에의 접근에도 반영하였다. 당시 미국 원조 당국 관계자들은 그의 방식이 미국 군사 브리핑 매뉴얼을 직접 참고한 것 같다는 점에 큰 인상을 받았다. 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면서 민주주의적 통치로 옮겨왔지만 코로나19에 대한 한국의 신속한 반응은 박정희의 군사적 에토스의 잔향을 담고 있다. 한국의 한 감염병 전문가는 로이터에 우리는 군대처럼 움직였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냉전기의 국가형성은 국가주도 경제발전을 야기했을 뿐만 아니라 공공의료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정부 개입도 가능케 했다. 역사가 존 P. 디모이아가 설명하듯이 50년대에 한국인들은 여전히 서구의학에 익숙지 않았으며 공공의료 프로그램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것은 박정희의 통치 아래 바뀌기 시작했다. 박정희는 공공보건 캠페인을 개시하여 의학 직종과 그에 대한 대중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의료진에게 새로운 전문가적 기준이 요구되었고 대중에게는 신중한 자녀계획을 세우고 국가주도의 의료 개입에 협조하게끔 독려되거나 강제되었다.
 
코로나19에 대한 전국가적 신속대응 이전에 일찍이 한국에서 감염병에 대한 커다란 스케일의 국가적 전투가 이뤄진 바 있다. 디모이아에 따르면 60년대에 한국에서 가장 위협적인 보건 문제 중 하나가 기생충 감염이었다. 박정희 정부는 국민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국가적 진단 프로그램으로써 기생충 문제를 근절하는 데 주력했다. 거의 20년 동안 대변 검사는 한국 어린이들의 일상이 되었다. 7-80년대에 성장하며 정부의 기생충 검사를 억지로라도 받아들이도록 교육받은 어린이들은 현재 코로나바이러스 진단을 받기 위해 기꺼이 줄을 설 준비가 되어있는 성인들이다.
 
현재 문재인 정부의 바이러스 대응이 결함이나 비판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미디어는 바이러스가 빠르게 퍼질 때 빠르게 중국인 관광객 입국을 제한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역학조사에 있어서 고 수준의 국가적 감시에 대한 우려도 있다. 그러나 시민들의 스마트폰 기록과 신용카드 내역을 면밀히 들여다보지 못했으면 역학조사를 하는 데 훨씬 더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바로 여기에 한국의 과거 권위주의 체제의 또 다른 잔향이 있다. 군사정권에 의한 학생, 지식인, 반체제 인사 등에 대한 항시적 감시가 그것이다.
 
그러나 박정희의 비민주적 통치에 대항하는 운동을 하다 투옥된 바 있는 문재인은 그의 정책이 민주주의적 가치의 경계를 넘어가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왔다. 미국의 보수적 성향의 비평가들은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서 성공적이었다고 하는데 완전히 틀린 주장이다. 한국은 중국 공산당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동에 제한을 두거나 엄격한 록다운을 실행하지 않았다. 기술과 데이터를 이용함으로써 한국은 미국의 대다수 지역보다 훨씬 건강한 수준으로 상업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이 보여준 인상적인 바이러스 관리체계는 그렇지 않아도 K팝의 인기와 기생충의 성공 등으로 빠르게 커지고 있는 한국의 문화적 영향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는 악몽과 같이 제어가 안 되는 지구적 판데믹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능숙한 대처는 전세계 정책입안자들과 의료 전문가들에게 하나의 모범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전철을 밟지 말고 한국을 따르자상원의원 밋 롬니가 최근 미국의 바이러스 대처 관련한 논의에서 한 발언이다.
 
유감스럽게도 미국이 한국 모델을 모방하고 수천 건의 사망을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었다. 하지만 이로부터 배울 점은 있다. 필요한 의료 장비와 보호구를 만들기 위해 국가와 민간 영역이 협력하기, 미국인 대중에게 광범위한 진단을 포함한 공공보건 이니셔티브를 수용하기를 독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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