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15일 일요일

2020년을 위한 포퓰리스트의 가이드 개요 The Populist's Guide to 2020: A New Right and New Left are Rising



Krystal Ball & Saagar Enjeti. (2020). The Populist’s Guide to 2020 : A New Right and New Left are Rising. Washington, DC: Strong Arm Press

이 책의 저자는 미국의 언론사 The Hill에서 제작한 Rising이라는 유튜브 방송의 공동 진행자 크리스탈 볼Krystal Ball과 사가르 엔제티Saagar Enjeti이다. 크리스탈 볼은 2010년에 만 서른도 안 된 나이에 민주당 하원의원 후보로 출마하여 낙선한 바 있고 MSNBC에서 기자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버니 샌더스를 지지하는 좌파 성향 정치평론가 및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사가르 엔제티는 백악관 특파원 출신으로 트럼프를 지지하는 공화당원이다. 상반되는 정치적 성향을 갖지만 그럼에도 둘은 공동 진행자로서 아주 훌륭한 호흡을 보이며 많은 부분에서 서로 동의하고 공감한다.

현재 미국의 대선을 위한 민주당 경선은 조 바이든과 버니 샌더스의 양강 구도로 좁혀지고 있다. 흥미롭게도 둘은 당내 극단적으로 상이한 지지세력과 이데올로기, 방법론을 표상한다. 바이든은 보수에 가까운 중도주의자다. 그가 후원자들 앞에서 했던 연설에서 한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은 없을 것이다라는 발언으로 상징되는 중도주의 정치는 샌더스의 민주사회주의적 정책 공약들을 모두 부정한다. 바이든의 후원 세력은 주로 당내 기득권 및 경제 엘리트들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 샌더스의 후원 세력은 대부분 개인 소액 후원자들로 풀뿌리 민주주의 세력이며 기업과 로비스트 등의 후원은 일절 받지 않는다. 이 책은 같은 당내 경선임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극단적인 대립구도로 전개되는 이유와 그 과정을 추적한다. 미국 정치 일반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막연히 차기 대선에서 트럼프의 대항마가 될 사람이 누구일지 혹은 트럼프가 재임을 할지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재미있고 쉽게 읽힐 수 있다.

1년여의 경선이 진행되는 동안 여러 명의 후보들이 급부상하고 몰락했다. 바이든과 샌더스 못지않게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인물들은 카말라 해리스, 피트 부티지지, 베토 오루크, 마이크 블룸버그, 엘리자베스 워런, 털시 가버드, 앤드류 양이다. 앞의 네 명은 바이든과 비슷한 중도 성향이며 뒤의 두 명은 진보 성향에 당내 기반이 약한 아웃사이더 후보다. 엘리자베스 워런은 그 중간쯤에 위치하는데 경선 직전까지는 샌더스의 동료로 불리며 당내 좌파로 분류되었으나 현재는 다소 우경화된 행보를 보이며 샌더스의 민주사회주의와 거리를 두고 있다. 털시 가버드와 앤드류 양은 당내 기반이 허약하며 심지어 양은 정치 경험이 전무한 기업가이지만 해리스, 오루크, 카스트로, 라이언 등 기성 정치인 후보들을 제치고 7위권에 머무르다가 최근에야 사퇴했다. 기득권 엘리트 미디어는 의도적으로든 실수로든 앤드류 양을 계속해서 무시하거나 깎아내리며 심지어 털시 가버드는 노골적으로 이적 행위자로 몰아간다. 하지만 앤드류 양은 기본소득 의제, 가버드는 반전과 중상주의 외교 등의 확실한 메시지를 관철시키며 보통 사람들의 주류 미디어 언론에 대한 불신에 힘입어 풀뿌리 세력의 확고한 지지를 넓혀 왔다. 이 책은 당내 기득권과 주류 미디어가 어떤 후보를 추켜세우고 어떤 후보를 폄훼하는지를 추적하며 그 과정에서 보통 사람들로 구성된 풀뿌리 세력이 어떻게 저항하는지를 살펴본다. Rising 자체가 주류 미디어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던 다양한 목소리들이 중심부를 뚫고 관철될 수 있는 여러 플랫폼들의 발전에 토대를 두고 있는 만큼 이 책은 또한 뉴미디어와 선거보도의 관계에 관한 상당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로 엘리트, 기득권(establishment), 정치 전문가(pundit), 주류(mainstream), 중도(centrism), 현행유지(status quo) 등이 있다. 두 저자는 크게 상이한 정치적 성향을 갖지만 둘 모두 스스로를 포퓰리스트라 칭한다. 여기서 포퓰리스트라 함은 포퓰리즘의 지지자를 의미한다. 포퓰리즘의 정의는 여전히 학자들 사이에서 합의에 닿지 못하고 있지만 반기득권, 반엘리트주의, 반전문가주의 정서가 포퓰리즘의 핵심을 구성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카를 슈미트에 따르면 정치는 적과 아군의 구별에서 출발하지만 현재 미국 정치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사실상 거대한 하나의 정당의 두 분파임에 다름없는 데에 이르면서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 의미를 잃은 탈정치의 상태에 있다. 샹탈 무페가 표현한 대로 진보와 보수의 차이가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차이와 진배없게 되면서 적과 아군의 적대 전선이 새로운 구도로 재편되기 시작했는데 엘리트 세력 대 반엘리트 세력의 전선이 그것이다. 비기득권의 보통 사람들에게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차별점 없는 엘리트 세력으로 현재의 미국을 만든 장본인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엘리트 대 반엘리트의 전선을 미국 정치와 경선을 사고하는 프레임으로 취함으로써 기존의 좌우 스펙트럼 및 구태의 진영논리의 맹점에 위치해 있던 보통 사람들의 분출하는 요구사항이 경선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살펴본다.

빌 클린턴 이후 민주당은 공화당과 구별되는 뚜렷한 진보적 의제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음은 주지하는바 힐러리 클린턴이 트럼프와의 승부에서 그에 맞서 내세울 수 있는 의제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정체성 정치뿐이었다. 이렇듯 정체성 정치는 민주당 세력의 의제의 빈곤을 은폐하기 위한 보기 좋은 포장지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 경선 국면에서도 이러한 정체성 정치의 오용은 쉽게 목격된다. 많은 경우, 차별화되는 정책과 의제의 부재로 지지율을 끌어올리지 못하는 후보들의 핑계거리로 쓰인다. 코리 부커나 카말라 해리스와 같은 흑인 후보들이 자신이 흑인(여성)이기 때문에 고전한다고 공공연하게 발언하는 것과 피트 부티지지가 흑인들로부터 매우 낮은 지지를 받는 이유를 흑인들의 호모포비아적 성향 때문인 것으로 진단하는 것 등이 그 예이다. 이보다 더 적극적으로 정체성 정치를 이용하는 예로는 한 후보의 정책이나 이데올로기, 과거의 과오에 대한 문제 제기를 그 사람의 정체성(성별, 인종, 성적 지향성 등)에 대한 공격으로 몰아가며 여론을 호도하는 것이 있다. 힐러리 클린턴은 지금까지도 자신이 트럼프에게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본인의 성별에서 찾으면서 트럼프에게 투표한 사람들을 여성혐오자, 인종주의자로 비난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캠페인의 허술함과 정책 공약의 빈곤을 성찰하기보다 이편이 쉽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략은 다수 노동계급 유권자들이 이미 간파하고 있다. 엘리트 기득권 세력이 자신의 구미에만 맞는 방식으로 만지작거리는 정체성 정치는 노동계급 보통 사람들로 하여금 정체성 정치 일반에 대한 거부감만을 갖게 만든다.

이것은 한국의 상황과도 연결 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특히 한국의 20대 청년층 안에서 유달리 두드러지는 페미니즘, 정체성 정치 등에 대한 집단적 반발, 제노포비아적 언동은 현 정부와 여당에 대한 세대적인 비토여론과 결부되어 이른바 ‘20대 현상으로 문제화되고 있다. 대부분의 ‘20대 현상담론은 이들의 반자유주의적 언동만을 문제시하며 20대 현상을 혐오 정서의 문제로 축소하고 역사적 반동으로 일축한다. 정치권에서 20대 현상은 20대의 급격한 보수화로 문제를 진단한다. 상이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지만 두 진단 모두 문제의 구조적 원인에 시선이 닿지 못하는 한계를 노정하며 보수적 의제를 위한 알리바이로 기능한다. 보수화된 유권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당의 노선을 조금 더 오른쪽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에 근거를 더하고 혐오 문제에 있어 자유주의적 가치를 회복시키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 방안으로 논의가 종결되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들이 제시하는 포퓰리즘의 프레임으로 문제에 접근한다면 오늘날 한국사회 표피에서 드러나는 여러 유형의 혐오 문제들은 기실 지배 헤게모니의 붕괴의 소산임을 알 수 있다.

지배 헤게모니가 붕괴하는 때가 바로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의 저자 샹탈 무페가 말한 바의 포퓰리즘 계기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구호를 외치며 어떻게든 현 상태를 바꾸자고 주장한 트럼프와, 현행유지를 고수하며 이미 붕괴해 가는 자유주의 헤게모니를 붙들고 미국은 이미 위대하다”(America Is Already Great)라고 맞붙은 클린턴 사이에서 미국 기층민중의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저자들이 궁극적으로 던지고자 한 메시지가 바로 이것일 테다. 같은 행위를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광기이다. 바이든이 본선에 진출하면 필패다. 오직 샌더스와 그를 지지하는 좌익 포퓰리즘 운동만이 트럼프의 우익 포퓰리즘에 맞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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