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서 유운성 선생의 포스트시네마라는 강의를 들었다. 본문은 기말과제로 낸 글이다.
유운성은 내가 학부 다닐 때부터 학생들로부터 굉장한 인기를 끈 강사였는데 학부에서는 강의를 들을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대학원에서도 출강을 하길래, 영화 관련한 관심은 거의 완전히 없어진 상태였지만 뭐가 얼마나 그렇게 재미있는지 한 번 들어보기로 했다.
수업은 더럽게 어려웠다. 에세이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였다.
이상하게도 이 수업에서 3주나 걸쳐서 푸코의 <지식의 고고학> 세 챕터를 읽었다. 의도치 않게 이른바 문화연구를 하는 데 있어서 꽤 중요한 텍스트를 현대영화 강의에서 비로소 처음 읽게 되었는데 철학 비전공자가 가르치는 지식의 고고학은 어렵지만 재미있었다. 언표 개념과 담론 개념 간의 관계를 영화에 빗대어 설명한 것이 말이 되느냐 안 되느냐는 차치하고 담론, 담론구성체(책에서는 언설, 언설적 형성으로 번역된다) 개념에 대한 내 나름의 이해에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비판적 인문학, 사회학 전공 선무당들이 범하기 가장 쉬운 실수가 개념 오남용일 텐데 그 중에서도 제일 빈번하게 오용되는 게 담론이라는 말일 것이다. 담론이라는 게 무엇인지에 관하여는 다음 글에서 대충 정리되었기를 바란다. 통념이나 상식, 관념, 신화를 쓸 자리에 담론을 넣어서 도저히 진지하게 읽히지가 않는 글들을 많이 봤다. 이정우 선생의 <담론의 공간>(<가로지르기>라는 책과 묶여서 <객관적 선험철학 시론>이라는 제목의 개정판으로 나옴)을 강추한다. <지식의 고고학>의 명쾌한 해설서 이상이다.
담론구성체라는 것을 계속해서 반추해야 한다. 잘 정리해서 상술하기는 귀찮으니 이질적인 언표들을 연결하여 의미를 만들어내는 그물망 정도로 이해하면 될는지 모르겠다. 그물코보다 작은 언표들은 무의미해 맹목의 영역에 남는다. 말할 것도 없이 이 그물망은 삶의 궤적, 형편, 지위, 계급 등 사회적 관계에 따라 사람들마다 모양이 다르다. 담론이라는 말을 어디에든 갖다 붙이고 싶어서 안달난 문화연구 전공 학생이 속한 담론구성체와 담론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한 보통 사람들이 속한 담론구성체는 매우 다르다고 함이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이것은 연구자들이 아주 쉽게 간과하는 문제다.
대학교 진학 이전까지 알고 지냈던 지인들과 연락을 완전히 끊는 사람들도 있다. 대화가 안 통하는 야만인 취급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 정말 많이 봤다. 본인의 네트워크에만 고립된 채로 보통 사람들 훈계해봐야 무슨 영양가가 있을는지.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 같은 느낌이다. 임금님이 벌거벗은 줄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 내가 진실을 알려주지 하고 나서는 것 같다.
대학교 진학 이전까지 알고 지냈던 지인들과 연락을 완전히 끊는 사람들도 있다. 대화가 안 통하는 야만인 취급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 정말 많이 봤다. 본인의 네트워크에만 고립된 채로 보통 사람들 훈계해봐야 무슨 영양가가 있을는지.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 같은 느낌이다. 임금님이 벌거벗은 줄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 내가 진실을 알려주지 하고 나서는 것 같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덧붙이자면, 단톡방에서 선배 한 명이 본인 연구에서 인터뷰 대상을 찾는데 주변에 페미니즘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젊은 남성을 알고 있으면 연구 참여를 독려해달라는 글을 올렸다. 페미니즘에 거부감 없는 젊은 남성을 찾는 게 수백 배는 더 어려운 일일 텐데.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겠으나, 연구자가 윗 문단의 경우와 같은 사람이라면 이런 사람들은 페이스북 등등에 인터뷰 대상을 모집한다는 글을 올려봤자, 그 친구들이 몇 다리 건너서 수십 번 공유를 해봤자 그 게시물이 결코 고학력 프티부르주아 리버럴들의 네트워크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연구방법으로서 에세이와 <88/18>
지난 삼 개월 동안 에세이란 무엇인가에 관하여 루카치, 아도르노, 푸코 등의 사상가들의 글을 읽고 이른바 에세이 영화라는 것에 대한 영화이론가들의 글을 읽으며 공부했다. 16세기 인물인 미셸 드 몽테뉴에게로 기원이 거슬러 올라가지만 지금까지도 여전히 에세이/에세이 영화는 어떤 것이며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둘러싼 의견은 합일이 되지 않고 있는데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따라잡기에 바빴던, 현기증 날 정도로 어려운 강의가 아닐 수 없었다. 이제 종강을 앞두고서야 에세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관하여 지난 강의들을 반추하다가 닿게 된 생각은, 마치 문화연구에서 문화라는 용어의 개념규정이 단일한 합의점에 닿지 못하고 유동성을 띠고 있는데 문화개념을 개방적인 것으로 열어두는 것 자체를 어떤 본질로, “문화개념의 존재조건으로 파악”(심광현, 1998, 89)한 것처럼, 에세이도 그런 식으로 파악되어야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다만 에세이를 모종의 표현 양식이나 형식으로 이해하는 대신 방법으로서 사고한다면 에세이의 개념 규정을 명목론적인 것에 빠지지 않게 일말의 ‘상대적 고정성’을 갖는 것으로 틀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강의에서 배운 대로, 방법에는 그에 조응하는 대상이 있으며 따라서 에세이의 대상이 무엇인지에 관한 논의가 합의에 닿는다면 에세이 일반에 관하여 보다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여기서 에세이적 대상으로 상정된 것은 감각적 경험과 사변을 모두 요구하는 무엇이다.
나는 에세이적 대상에 대한 논의에서 전제된 감각과 사변의 이원론과 통합을 사회과학방법론의 맥락에서 검토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과학방법론의 토대를 이루는 과학철학은 크게 두 갈래로 이론이 발전되어 왔다. 감각 경험으로 축적한 데이터들로 실증적 검증이 가능하며 일체의 주관성이 배제된 객관적인 지식만이 확실한 지식이라고 보는 실증주의가 있고, 감각을 통해 경험된 사실들은 “인간이 발견하고 조합하고 만드는 것”(이기홍, 2014, 92)이기 때문에 과학적 진술이 독립적인 실재에 대한 참인 서술이 아니라 과학자의 구성물이라고 하며 실증주의를 비판하면서 제기된 협약주의가 있다. 현대 과학철학에 따르면 실증주의와 협약주의 모두 (주관적)이론과 (객관적)경험을 양분하는 그릇된 전제를 갖는 데서 한계가 있다.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요청되는 것으로, 양자를 절충한 중간 항에 불과한 것도 아니며 둘 모두를 거부하거나 마구잡이로 섞은 것이 아닌 제3 항의 대안적 입장으로서 로이 바스카가 주창한 실재론적 접근, 비판적 실재론이 있다.
비판적 실재론에서는 인간의 경험을 중심에 놓고 세계를 탐구하고 논하는 것의 불합리함을 ‘인간중심적 오류’라 일컫고, 존재론적인 문제를 인식론적으로 환원할 수 있다고 믿는 오판을 ‘인식론적 오류’라 일컫는다. 인간이 경험과 감각으로 알아낸 세계 이외에 그에 포획되지 않은, “인간의 이해나 지식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이기홍, 2017, 148)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로이 바스카는 전자를 ‘지식의 타동적 객체’, 후자를 ‘지식의 자동적 객체’라 표현한다. 협약주의는 자동적 객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류가 있다. 인간의 관찰, 추측, 직관, 가설, 사변 등으로 생산되는 타동적 객체는 자동적 객체의 부분집합 정도로 이해해도 무방할 듯한데, 과학은 역사적, 사회적으로 선행된 지식들에 의존해 그 부분을 넓히는 활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과학 탐구는 무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닌, 기존 지식을 원료 삼아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사회적 활동으로 봐야 한다.
전술했듯 세계에는 인간이 경험한 세계와 구분되는 실재가 있다. “그 실재들은 자체의 고유한 성질에 따라 운동하며 결과로서 ‘사건’을 산출한다.”(152) 말하자면 무질서(무수한 질서가 겹쳐 있고 중첩되어 있지만 인간의 눈으로는 무질서의 흐름으로만 인식되는)에서 질서가 스스로 나타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바스카는 무질서의 영역에 해당하는, 사건을 발생시키는 실재를 존재의 ‘실재적real 영역’, 질서에 해당하는 사건을 ‘현실적actual 영역’이라 일컫는다. 그리고 인간이 그 사건을 지각, 인식한 것이 ‘경험적empirical 영역’이다. 앞서 말했듯 인간은 사회적으로 확립된 지각의 틀로써 실재의 사건을 부분적으로나마 주관적으로 재구성하며 이러한 일련의 활동을 과학이라 총칭한다. 이러한 점에서 바스카는 주체 바깥의 사물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위치에서 선험적 능력으로써 능동적으로 사물의 윤곽을 그리는 위치로 주체를 옮긴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본인의 과학철학에 전유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비판적 실재론의 문제틀은 사실상 맑스에 의해 선취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일반적으로 맑스는 헤겔로 대표되는 관념론과 형이상학을 주요 비판 대상으로 삼았던 유물론자로만 알려져 있으나 실증주의에 대해서도 발본적인 비판을 가하여 양대 ‘이론적 전선’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폭로함으로써 “현대학문의 발전에 인식론적 단절을 가져다주고 새로운 장을 연”(손호철, 2002, 25) 인물로 평가 받는다. 그의 「정치경제학비판 서문」에서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라는 테제는 물론 관념론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으로 읽히지만 동시에 실증주의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으로도 읽힐 수 있다. 사회과학에서는 연구 주체가 연구 대상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른바 ‘객관적인 연구’ 역시 존재에 구속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27)
주체와 대상(객체) 사이의 관계는 단선적이지 않다. 특히 사회과학연구에서는 단일한 주체가 단일한 객체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주체는 어떤 언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또 다른 주체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움직이는 존재이다. 객체 역시 마찬가지로 여러 다른 객체들과 맺는 관계망 안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복수의 주체와 복수의 객체의 관계는 대칭적인 형상을 띤다. 또한 주체들과 객체들의 대화적 관계로 나타나는 한 현상의 물질적 조건도 검토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항들을 모두 반영한 주체-객체 모델은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Sayer, 1992/1999, 51)
거칠게나마 도식적으로 연결을 해보자면 S와 Os의 관계선은 존재의 경험적 영역이라 할 수 있으며 점선의 원 즉 언어공동체의 경계선은 현실적 영역, On은 실재적 영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도식에서 주체와 객체를 둘러싼 점선의 장이 언어공동체의 경계라 일컬어지는 것이다. 인간의 지각은 개념적으로 매개되며 전술했듯이 지각의 틀은 사회에서 통용되는 개념들로 구성된다. 인간은 무언가의 감각은 가질 수 있어도 개념이 없다면 지각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찰가능한 것과 관찰불가능한 것의 구별은 우리의 감각기관의 물리적 수용능력의 문제일 뿐 아니라 지각에 포함되어 있는 개념들을 우리가 얼마나 당연시하고 있으며 따라서 얼마나 잊고 있는가에 의해 강하게 영향을 받는다.”(86)
언어공동체 혹은 지각의 개념적 매개와 관련하여 푸코의 담론 개념을 참고할 수 있다. 푸코는 그의 담론 개념을 여러 저작들에서 다양한 변주로 제시했는데 그것들을 일반적인 것으로 기술한 저서가 『지식의 고고학』이다. 푸코의 담론을 검토하기 위해서 먼저 그것의 단위인 언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푸코 자신은 ‘언표의 정의’라는 절을 따로 두고 책의 한 부분을 할애했지만, ‘언표란 ~이 아닌 것’이라는 식의 부정적 정의 외에 명확한 정의는 명확히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며 다만 유추해볼 수 있을 따름이다. 언표는 명제와 다르다. 푸코가 예시하듯 <아무도 듣지 않았다>와 <아무도 듣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라는 명제는 논리학에서 동일한 명제로 간주된다. 반면 그것이 언표인 한에서는 둘이 등가적이지 않으며 환원 불가능하고 일반화할 수 없는 일회성, 특이성을 갖는 것이다.(Foucault, 1969/2017, 120) 따라서 “언표는 하나의 순수한 나타남, 우발적인 표현”(이정우, 2000, 24)이며 하나의 사건이다. 다만 사건을 사태(state of affairs)와는 구분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태는 의식 앞에 질서로서 나타나는 것으로, 경험적 영역에 해당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사건은(엄밀히는 ‘순수사건’이라는 의미에서) 물체들에 부대하는 빈위/부대물attribut이다.(이정우, 2011, 124) 이를테면 ‘죽다’라는 사건이 있는데 이것의 존재론적 위상은 감각으로 경험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죽은 사람은 시체이지, ‘죽다’라는 사건은 아니다) 실존하는 것은 아니지만 ‘논리적 가능성’ 혹은 ‘잠재성’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나의 과문함 때문에 논의를 세밀히 전개하기는 불가능하고 단지 다음과 같이 개괄할 수 있을 뿐이다. 말하자면 과학의 영역에서 한 단계 내려가면 지식의 영역 혹은 담론의 층위가 있고, 더 내려가면 언표의 장이 나온다.(133)
주의할 것은 언표와 담론, 지식, 과학의 관계를 단선적인 진보의 연속선에 놓인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들 사이에는 단절이 존재한다. “담론이나 지식은 과학이 마름질될 수 있는 가능성의 조건을 제공해줄 뿐이다. 그것은 하나의 자율적인 영역을 구성하는 것이다.”(이정우, 2000, 80) 언표와 담론의 관계도 비슷하게 말해질 수 있다. 담론은 독립적으로 그 자체로 탐구의 대상이 된다. 담론은 하나의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언표들이 형성한 초월론적 장 위에서 복수의 담론들, 언표들과 위상학적 관계를 맺는다. 그러한 역동적인 관계가 역사적으로 응고되는 순간들이 있는데 이것이 담론적 형성이며 푸코가 말한 고고학이란 담론 형성 작용을 탐구하는 작업이다. 담론의 분석, 즉 고고학적 작업에서 언표들에 대해 던지는 질문은 “언표들은 어떤 규칙에 따라 구성되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그러한 언표가 바로 그 자리에서 나타날 수 있는가?”(Foucault, 1969/2017, 53)가 되어야 한다. 이 문제는 앞서 말한 ‘관찰 가능한 것’과 ‘관찰 불가능한 것’의 문제와 연결된다. 어떤 언표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문제라면 다른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도 검토되어야 할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담론적 형성에 관한 문제는 곧 위의 도식에서 점선으로 그려진 원 즉 언어공동체의 경계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푸코의 고고학은 현대 사회과학과도 공명한다. 이제는 그것을 과연 어떻게 탐구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푸코 자신은 이데올로기라는 말이 너무 무거운 말이기 때문에 대신 담론적 형성을 다룬다고 하지만(67) 여기서는 나에게 그래도 상대적으로 익숙한 이데올로기에 빗대서 얘기하고자 한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를 허위의식이나 신념체계와 같이 관념적인 것에서 물질적인 실천으로 재정의했다. 허위의식과 신념과는 달리 실천 행위는 감각 가능하다. 그러나 실천들만을 데이터로 축적하는 것으로는 얼마나 많이 관찰했는지와는 상관없이 이데올로기를 드러내기는 힘든 일이다. 이데올로기는 단순히 실천들의 합이 아니라 그 이상이기 때문에 그 남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변이 요구된다. 즉 담론적 형성은 에세이적 대상인 것이다.
다음으로 어떤 사변이 요구되는가, 무엇에 대한 사변인가라는 의문이 남는데 나는 이에 대하여 푸코가 『지식의 고고학』의 서론에서 페르낭 브로델의 역사학을 암시한 데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역사가들의 관심이 특히 장기적인 기간에 돌려진 지도 이제 몇십 년이 지났다...정치적 동성으로부터 <물질문명>에 고유한 완만함들로 분석의 수준들이 복수화되었다: 각 수준들은 각자에 특이한 비약들을 가지며 각자에게만 속하는 마름질을 지닌다.”(17~18) 복수화된 분석 수준이란 역사학의 분석 층위를 단선적인 시간대에서 다층적이고 중층적인 시간대로 옮긴 것을 가리킨다. 브로델은 역사학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의 방법에도 이러한 연구범위의 확대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기 지속으로 관심을 옮김으로써 베버 류의 ‘방법론적 개인주의’에 치우치는 것을 경계할 수 있지만 장기 지속에만 천착하면 기계적 구조주의에 치우칠 위험도 있다. 브로델은 단기적 시간대와 장기 지속 외에 콩종크튀르(국면)을 제안한다. 국면사는 단순히 단기적 시간과 장기 지속 사이에 있는 중간항이 아니며 완전히 별개의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건과 구조, 혹은 행위와 구조의 변증법으로 일정한 지속성과 순환성을 담지한다.
<88/18>은 한국사에서 하나의 굵직한 ‘이벤트’로서의 88올림픽과 그것을 둘러싼 담론적 형성을 대상으로 하여 관찰과 사변으로써 국면사적 차원에서 해체하고 재구성한 것을 영화화한 다큐멘터리이다. 88올림픽과 그 당시의 사회사적 맥락과 문화사적 맥락, 그 배후에서 작동했던 경제사적 구조 등의 장기 지속의 역사에까지 시선을 확장하여 ‘심층적 역사’를 파고 들어가는 영화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또한 당시 각자의 분야에서 특정한 역할을 했던 개인들의 인터뷰와 대중문화 푸티지들을 병치함으로써 88올림픽의 ‘국면사적 분석’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이렇듯 <88/18>이 다루는 주제는 관찰과 사변 모두를 요구하는 것으로 에세이적 대상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88/18>이 과연 에세이 영화가 되느냐라는 문제는 논쟁의 여지가 많다. 하지만 최소한 <88/18>에서 읽어낼 수 있는, 88올림픽에 대한 연구방법은 이른바 에세이적 방법이라 일컫는 것과 공명한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눈에 띄는 건 제5 공화국 언론통폐합 청문회에서 전두환 정부의 실세였던 3허씨 중 허화평이 증인석에 있는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병치되는 것이다. 청문회에서 증인석에 있는 다소 추레한 모습과 비교해 현재의 허화평은 마치 마이클 더글라스를 연상케 하는 세련되고 중후하고 당당한 얼굴과 몸가짐을 하고 있으며 카메라는 그러한 분위기를 화면에 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는 영화 후반부에 나오는 김동원 감독의 인터뷰와 대조적이다. 그는 이른바 영화운동, 액티비즘 영화의 효시를 이룬 감독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이며 수많은 현역 PD, 감독들과 지망생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아닐 수 없으나 허화평 인터뷰가 서재에서 촬영된 것과는 다르게 김동원 인터뷰는 어디서 촬영되었는지 불분명하여 전자가 인터뷰이의 일말의 지적인 전문성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면 후자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 이러한 대비는 가치판단의 균형추를 바로잡는 기능을 한다. 주지하듯 제5 공화국의 1980년대는 독재정권의 시기였으며 축적체제의 위기를 독점자본에 대한 특혜 지원과 노동운동 탄압, 노동법 개악 등으로 모순을 민중에 전가한 민중 수탈 심화의 시기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세계 경제 상황과 맞물린 3저호황으로 박정희 정권 이후 한국의 경제사에 몇 없는 호시절을 구가하기도 했다. 이렇듯 80년대를 회고하는 사람들의 판단은 양가적인데 <88/18>은 이러한 양가성을 두 명의 상징적 인물로 표상하면서 균형을 유지했다.
영화에서 활용된 여러 푸티지들 중 특히 뉴스 보도 영상들은 당시의 정치 경제적 조건들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허화평 인터뷰 직후에 나오는 광주민주항쟁은 전두환 정권의 정통성 시비의 아킬레스건이면서 동시에 72체제의 국가동원체제의 모순이 폭발했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 1979년부터 발생한 축적체제의 균열과 경제위기는 중화학공업에 대한 무분별한 과잉중복투자확대가 초래한 위기였으며 오일쇼크까지 겹쳐 불황이 가속화되었다.(김진업, 2001, 167) 이에 대해 국가 권력은 세제 개편으로 조세 수탈을 확대하는 것으로 대응했는데 얼마 뒤 일어난 12⦁12사태와 5⦁17비상계엄은 축적체제의 모순과 지역 불균등, 반호남 감정의 피해를 입으며 불만으로 들끓던 광주 민중에게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김창진⦁이광일, 2002, 324) 그 뒤에 병치되는 대중 방송프로그램에서 그려지는 밝은 미래는 앞선 푸티지와 충돌하여 낯설게 보인다. 전두환 정권은 정통성 문제와 경제 불황을 타개하고 시민들의 관심을 정치 바깥으로 돌리게 만들고자 무리하면서까지 올림픽 유치를 준비했다. 허화평이 회고하듯 재벌기업들의 후원을 동원하고자 기업총수들 앞에서 농담처럼 했다던 ‘후원한 종목이 메달 많이 받으면 세무조사 안 하겠다’는 말은 당시의 정경유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조치들은 3저호황과 더불어 교통, 스포츠, 문화 예술과 광케이블 등의 기술영역에 비약적인 발전을 야기했다. 또한 올림픽 유치로 인해 세계의 관심을 받게 된 탓에, ‘올림픽 체제’에 억압되었던 갈등들이 87년항쟁으로 폭발했음에도 80년처럼 폭력을 동원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결국 호헌조치를 철폐해야만 했다. <88/18>은 정치와 경제와 문화 각 영역에서 푸티지를 추출하여 상호 충돌하거나 근거를 더해주는 논리에 맞게 재배열하는 것만으로, 간혹 나오는 아주 간단한 자막을 제외하면 일체의 내레이션이 없이 88올림픽의 역사의 아이러니를 재현했다.
<88/18>의 푸티지의 활용에서 볼 수 있듯 한 장면을 그 맥락에서 추출해내어 낯설게 만드는 작업은 사회과학에서 추상화라는 방법으로 통용된다. 비판적 실재론은 추상화 작업을 이론 구성에 있어서 중요한 사유능력으로 지적한다. “우리는 개방체계에서 일어난 경험적 현상은 여러 인과기제들(우리 자신도 인과기제들 중 하나이다)의 결합과 간섭의 결과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이론 구성 작업은 먼저 상호작용하는 다양한 인과기제들을 사유 속에서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사유를 실험실에서 물질화하여) 분리하여 각각의 작용을 추론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런 분리를 추상화라고 부른다.”(이기홍, 2017, 182) 생각하건대 이러한 추상화라는 작업에 대하여 발터 벤야민이 일찍이 혜안을 보인 바 있다. 벤야민은 『인식비판적 서론』이라는 글에서 <사실-인식-개념>과 <진리-통찰-이념>의 짝패를 관념적으로 대별하였는데, 그에 따르면 연구자, 즉 과학자는 개념적 분류로써 현상을 대상화한다. “개념적 추상화”(182)로 파편화된 단자적 이미지들을 이념세계의 이미지로 구제하는 것이 예술가의 사명이라면 철학자의 사명은 예술가와 연구자의 그것을 모두 띠는 것이다.(Benjamin, 1925/2010, 154쪽) 현상의 개념적 분석의 하강 운동에서 이념세계의 이미지로의 도약을 다음과 같은 다이어그램으로 제시할 수 있다.(심광현, 2014년, 109쪽)
비판적 실재론에서 말해지는 과학은 연구자, 예술가, 철학자가 행하는 일 모두를 망라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인과기제들이 과잉결정 되어있는 어떤 현상을 분해하고 그 요소들을 다시 추론과 이론으로써 모자이크처럼 접착, 성좌적 이미지를 제시함으로써 진리로 접근하는 일련의 과정을 과학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88/18>의 성취는 앞서 말했듯 정치, 경제, 문화의 각 영역에 상응하는 푸티지들을 추상화하고 추출하여 전혀 다른 맥락에 일견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과 병치시켜 성좌적 이미지를 만들어냄으로써 88올림픽의 담론적 형성을 제시(Darstellung)한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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